다양한 품종의 토마토와 치즈를 곁들인 플래터. 토마토는 과일과 채소의 경계를 넘어 취향과 문화를 담아내는 식재료가 되었다. ⓒ정주영
일본에서 온천에 간다고 하자, 현지 친구가 토마토 주스와 레몬 음료를 챙겨 가 꼭 한번 마셔 보라고 추천했다. 요즘 온천이나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토마토 레모네이드’가 인기라며. 반신반의했지만, 땀을 흘린 뒤 마시는 새콤한 토마토의 맛은 놀랄 만큼 잘 어울렸다. 토마토 주스를 마시는 일은 한국에서도 흔하지만, 이처럼 사우나 문화와 결합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한국에도 머지않아 이런 방식으로 즐기는 문화가 생겨나지 않을까?
궁금한 마음에 토마토 관련 상품을 찾아보니, 토마토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탕, 빙수, 아이스크림, 화장품, 문구, 인테리어 소품에 토마토를 소재로 한 시와 소설까지 등장했다. 토마토는 이제 먹는 것을 넘어 경험과 취향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토마토는 오랫동안 과일처럼 먹는 식품이었다. 그래서 품종 역시 대저 토마토나 스테비아 토마토처럼 단맛을 강조한 제품들이 인기가 높은 편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토마토를 과일처럼 단독으로 먹기보다 파스타 소스나 절임처럼 식재료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달콤한 후식처럼 즐기는 방식은 오히려 낯설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유럽에서 만난 토마토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토마토를 익혀 먹는 모습은 우리가 사과나 감을 삶아 먹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는 낯설었다. 천천히 구워 풍미를 끌어올리고, 오래 끓여 소스를 만들고, 수프와 스튜에 넣어 감칠맛을 더하는 만능 식재료였다. 한 알의 토마토는 피자와 파스타의 시작이 되고, 지역마다 수십 가지 요리로 변주됐다. 토마토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물이 귀하고 건조한 중동에서도 토마토는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수분과 산미를 더해 음식의 맛을 살리고, 영양까지 보태기 때문이다. 달걀을 넣어 뭉근히 졸인 북아프리카 지역의 샥슈카, 고기와 채소를 함께 쪄내듯 푹 익힌 모로코의 타진처럼 토마토는 부재료가 아니라 음식의 중심이 되었다. 토마토는 특별한 건강식이라기보다 일상 식탁을 채우는 가장 친숙한 음식이었다.
오늘날 어디서나 사랑받는 토마토도 처음부터 환영받은 식재료는 아니었다. 16세기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건너왔을 당시에는 가짓과 식물이라는 이유로 독성이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산성이 강한 토마토가 납 성분이 들어간 식기와 반응해 중독을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당시 사람들은 접시가 아니라 토마토를 의심했다. 한동안 토마토는 ‘독사과’라는 오명을 쓴 채 관상용 식물로 취급받았다. 지금은 건강식의 대명사인 토마토가 한동안 경계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토마토는 변하지 않았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토마토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독초로 오해받던 식물이 이탈리아에서는 국민 식재료가 되었고, 스페인에서는 라 토마티나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형편없는 공연에 던지던 썩은 토마토에서 유래한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가 되었고, 이제는 웰니스를 상징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아이콘이 되었다.
식재료의 가치는 영양 성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토마토를 먹는 것뿐 아니라, 시대가 토마토에 덧입힌 의미까지 함께 소비한다. 같은 식재료라도 어느 사회에서는 과일이 되고, 어느 사회에서는 소스가 되며, 어느 시대에는 축제가 되고, 또 어느 시대에는 취향이 된다. 문화는 거창한 예술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우나 뒤에 마시는 한 잔의 토마토 레모네이드도 그렇게 하나의 문화가 된다.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 한 스푼 더 - 토마토는 채소? 과일?
식물학적으로 토마토는 씨를 품고 열매를 맺기 때문에 과일이다. 그러나 요리에서는 샐러드와 소스, 수프 등에 주로 쓰여 채소로 취급된다. 미국에서는 1893년 연방대법원이 수입 관세를 매기기 위해 토마토를 ‘채소’로 판결한 적이 있다. 식물학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먹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결국 토마토의 정체성은 자연이 아니라 문화에 좌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