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리뷰 - 영화 ‘호프’

 

스릴러·액션·코미디·SF 뒤섞여

외계인 모습 드러내면서 긴박감

블랙코미디 의외의 웃음도 터져

 

나홍진 감독 전작 ‘곡성’ 연장선

속편 암시한 결말도 하나의 서사

 

칸 상영때 혹평받은 CG 개선돼

러닝타임 4분 줄어 156분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 후 화제가 됐던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오는 15일 개봉한다.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여름시장에서 ‘호프’가 한국 영화의 부활을 견인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 후 화제가 됐던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오는 15일 개봉한다.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여름시장에서 ‘호프’가 한국 영화의 부활을 견인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침내 실전이다.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는 신작 ‘호프’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고부터 두 달 만에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나 감독 스스로 “테크니컬 리허설”이라고 표현한 칸에서의 상영 이후, 당초 160분이었던 러닝타임은 완성본에서 4분 줄었다. 외신들의 혹평을 받았던 컴퓨터그래픽(CG)도 어느 정도 개선됐다. 얄궂은 운명이다. ‘호프’는 위기의 한국 영화계에서 제목 그대로 ‘희망’이 돼야 하는 영화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희망이라곤 없을 것 같은 이야기다. 칸에서는 “내가 무엇을 본 건지 모르겠다”는 외신 반응으로 화제가 됐다. 스릴러로 시작해 액션과 코미디, SF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온갖 장르가 혼재돼 그럴 수밖에 없다. 하나 확실한 건, 러닝타임 내내 정신없이 질주하는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

배경은 1980년대 비무장지대(DMZ) 인근 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 논밭 사잇길 한복판에 소가 죽어 있다. 정체 모를 존재에게 찢긴 상처가 선명하다.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와 순경 성애(정호연), 총을 든 마을 사람들은 추격에 나선다. 처음엔 호랑이인 줄만 알았던 존재는 ‘괴물’로 불리고, 마침내 ‘외계인’으로 밝혀진다. 대낮부터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외계인과 호포항 사람들은 맞서 싸우려 하지만 실은 발버둥에 가깝다. 영화가 시작되고 50분 무렵까지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외계인은 영화의 초반 서스펜스를 담당한다.

외계인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영화는 블록버스터 추격극으로 장르를 바꾼다. ‘호프’에서 외계인이 무서운 이유는 ‘속도’에 있다.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 강했다면, 3∼4m 크기의 괴물이 차와 맞먹는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하고부터는 쫓기는 데서 오는 긴박함이 있다. 그래서 인물들은 영화 내내 달린다. 초반부엔 범석이 마을 곳곳을 두 발로, 중반부에는 성애가 차를 타고, 후반부엔 성기가 말을 타고 달린다.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외계인의 존재는 섬뜩하면서 기이하다.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외계인의 존재는 섬뜩하면서 기이하다.

숨 쉴 틈 없는 상황에서 코미디는 시골 사람들 몫이다. 임현식, 이상희 등 최근 스크린에서 보기 어려웠던 배우들이 허무맹랑한 농담을 던지는데 ‘웃음 타율’이 꽤 높다. 우려를 모았던 외계인 CG는 아쉬움이 남지만 ‘왕과 사는 남자’의 ‘CG 호랑이’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진 않는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액션영화로 포장돼 있지만, ‘호프’는 결국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나 감독은 이전에도 그랬다. ‘호프’는 전작 ‘곡성’과 거울상 같은 영화다. ‘곡성’은 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망사건 현장에서 시작한다. ‘호프’는 길 한복판에서 죽은 소로 시작한다. 러닝타임도 두 영화 모두 156분이다. ‘곡성’의 무대가 밤이라면, ‘호프’는 낮이다. ‘곡성’은 ‘말’로 현혹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게 했다. ‘호프’는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아는 것 자체를 차단한다. 외계인이 인간을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디서 그렇게 많은 총이 나왔는지, 성기는 왜 말을 잘 타는지. 궁금해질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말을 자른다. 그리고 총을 들이민다.

극 중 주인공 범석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
극 중 주인공 범석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

1980년대라는 극 중 시대상과도 맞물린다. 호포항 주변은 지뢰밭이 둘러싸고 있고 곳곳에 ‘멸공훈련’ ‘간첩신고’ 홍보물이 나부낀다. 이데올로기 전쟁의 시대였다. 적으로 간주되면 말보다 행동이 앞섰고 총부터 꺼내 들기 십상이다. 성기가 외계인과 대면하는 장면이 그렇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외계인 ‘마베이요’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자 성기는 “지구인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게”라며 총부터 꺼내 든다.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부는 사실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다. 영화 내용과 무관한 독립된 서사처럼 보이지만, 외계인들의 사연은 우리가 보지 못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나 감독은 “할 얘기를 충분히 다했고, 더 이야기한다면 중언이 될 것”이라며 “완결성은 분명히 갖고 있다”고 했다. 영화의 후반부 대사는 히브리서 11장 1절을 차용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나홍진이 말하려는 ‘희망’이 여기에 있다. 보이는 것만 쫓을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호프’가 한국 영화의 희망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럴 수 있는 영화다. 15세 관람가. 15일 개봉.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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