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19세기 조선 화가 성협의 ‘성협 풍속화첩’에 실린 ‘야연(野宴)’은 조선의 음식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겨울날, 나무 아래 다섯 남자가 둘러앉아 화로 위 ‘벙거짓골’에 고기를 구우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벙거지(전립)를 엎어놓은 모양의 무쇠 냄비의 챙에는 양념한 고기를 굽고 가운데 고인 육즙에 채소를 익혀 먹으니, 오늘날 불고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이런 겨울 회식은 ‘난로회(煖爐會)’로 불렸다. ‘동국세시기’는 한양 사람들이 소고기를 기름·간장·달걀·파·고춧가루로 양념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구워 먹었다고 전하고, ‘홍재전서’에는 정조가 난로회를 즐긴 기록이 있다. K바비큐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협의 ‘야연’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우리들의 밥상’ 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는 우리 식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한 대규모 첫 기획전으로 보물 5건을 포함해 유물 684점이 선보인다. K푸드의 기원, 그 힘과 비밀은 다름 아닌 우리가 매일 마주해온 평범한 밥상에 있음을 알려준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K푸드+’ 수출액은 70억5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라면, 과자, 김치 등이 수출 증가를 이끌며 상반기에만 10억 달러어치가 판매됐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선정한 ‘2026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00곳’에 한식당 7곳이 포함됐다. 또,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은 기념품 대신 편의점 라면과 광장시장 떡볶이를 먹는 ‘스낵패킹’을 최고의 여행 트렌드로 꼽고 있다.

음식은 문턱이 낮은 문화다. 별다른 설명이나 번역 없이, 맛보는 순간 이해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입맛만큼 보수적인 것도 없다. 낯선 음식을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음식 네오포비아(food neophobia)’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낯선 맛의 수용은 그 문화를 향한 심리적 개방을 뜻한다. 외국인이 젓갈 든 김치를 즐기고, 떡볶이의 쫀득한 식감을 받아들이는 것은 문화 수용의 새로운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우리들의 밥상’ 전이 말하듯 무엇을 먹어왔는가는 곧 우리가 누구인가를 말해준다. 성협의 그림 속 난로회가 이제 세계인이 즐기는 자리가 됐으니, K문화의 인기는 K팝 등 세부 장르를 넘어 역사와 일상,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단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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