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석 정치부 부장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호남권에 4개 반도체 팹(공장) 건설 등 반도체·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등에 4755조 원을 투자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개최했다. “숫자가 너무 커 낯설 것”이라던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예고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천문학적 투자 발표였다. 이 대통령은 이튿날 800조 원 투자가 발표된 전남광주를 찾아 “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게 좋게 말하면 유도, 좀 심하게 얘기하면 유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2일 충남 아산, 3일 경남 진주를 잇달아 찾아 각각 392조 원, 312조 원 규모의 투자 발표를 하는 등 호남·충청·영남에 걸쳐 미래산업 생태계 구축을 공언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정부 안에 완공을 목표로 도전할 것”이라며 ‘4년’ 시간표도 제시했다. 6·3 지방선거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이 대통령 지지율은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이후 반등했다.

대통령 스스로 정치적 결정임을 시인했지만, 과감한 투자로 1%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지역균형발전 전기를 마련한다는 전략은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이제 말의 성찬에서 눈을 돌려 냉정하게 실행 여부를 들여다볼 시점이다. 최대 과제인 반도체 팹은 생산입지 조건 ‘전수토인’(전기·물·땅·인재) 가운데 땅을 빼고는 난관이다. 먼저, 전력은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6.3GW(기가와트)가 필요하다. 호남에 풍부한 신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춤추는데 전기 생산과 안정적 공급은 전혀 다른 문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3일 “영광에 원전 2기를 지을 땅이 있다”며 원전 건설을 시사했지만, 주민·환경단체 등의 반발을 넘어 기한 내 완공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용수도 난제다. 4개 반도체 팹에 필요한 초순수(불순물 없는 물)만 매일 65만t이다. 정부는 다목적댐·대체수자원을 활용하면 문제없다지만, 불과 4년 전 광주는 50년래 최악의 가뭄으로 식수 공급마저 위협받았다. 더 큰 난제는 인적자원 확보다. 기업형 첨단도시 조성 등을 대책으로 발표했지만, 현실은 인구 절벽과 지방 기피다. 이공계 인재들이 미국·중국 등으로 이탈하는 상황에서 최고 수준 엔지니어들이 지방 근무를 택할 확률은 희박하다. 당장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호남 반도체 팹 건설 관련 노사정협의회 개최를 제시했다.

대규모 투자 실패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인텔은 미국 반도체 부활을 외치며 오하이오·애리조나에 수백억 달러 규모 팹 건설을 추진했지만 인프라 문제, 숙련 엔지니어 확보 실패로 구조조정 위기까지 맞았다. TSMC 역시 애리조나 팹 건설 과정에서 전력·용수 인프라 비용 폭등으로 가동이 밀리며 막대한 손실을 냈다. 멀리 갈 것 없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지방자치단체 갈등과 토지 보상, 송전선로 반대 시위 등에 막혀 6년 만에야 첫 삽을 떴다. 정책 성패는 화려한 숫자나 비전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실행에 달려 있다. 단군 이래 최대라는 이번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정권의 명운뿐 아니라 한국 경제 생존마저 위협받는다. 장밋빛 청사진 발표는 끝났다.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실행만 남았다. 이재명 정부가 진짜 ‘일잘러(일 잘하는) 정부’인지 시험대에 섰다.

김남석 정치부 부장
김남석 정치부 부장
김남석 기자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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