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과 예술의 빛나는 동행
- (5)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윤영달 한국메세나협회장 <끝>
“공공재원에만 의존하는 생태계 ‘온실 속 화초’
예술적 독립성 유지 위해서라도 민간지원 필수
문화예술후원이 회사 자산되는 모델 확대돼야
후원 기업에 세제 혜택 등 파격 인센티브 필요”
K컬처의 세계적 성공은 갑자기 찾아온 선물이 아니다. 눈부신 성과 뒤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기초예술의 토양이 있었다. 문제는 미래의 씨앗이 될 기초예술 생태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단기적인 흥행과 수익 중심의 평가 속에서 기초예술이 지닌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평균 연소득이 1055만 원(2024 예술인 실태 조사)에 불과한 예술인들의 생계형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기초예술의 토양을 다지기 위해 공공과 민간의 재원을 활용한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기초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두 기관의 수장이 지난 6월 30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마주 앉았다. 지난 4월 취임한 이범헌(6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기업 후원 활동에 적극 힘써 온 윤영달(81) 한국메세나협회 회장(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다. 이 위원장은 “기초예술 지원은 글로벌 지식재산권(IP)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지켜 내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라면서 공공뿐 아니라 민간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K콘텐츠의 ‘다음 10년’을 위해서라도 기초예술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공공의 영역을 보완하는 민간의 지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하 이 위원장)= 공공 재원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예술 생태계는 ‘온실 속 화초’와 같다. 보호받는 동안은 안전해도 정책 환경이 급변하는 순간 스스로 버틸 힘을 잃게 된다. 기초예술 분야의 마중물 역할을 해 오던 문예진흥기금이 모금제 폐지로 고갈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20년간 기금 적립금은 약 1/12 수준으로 급감했는데, 사업비는 오히려 3.6배 이상 폭증했다. 이제는 ‘국가 전입금 중심의 수동적 예술’에서 ‘민간과 동반 성장하는 능동적 예술’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윤영달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이하 윤 회장)= 예술가들의 예술적 독립과 과감한 실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민간의 지원이 중요하다. 게다가 민간이 기초예술을 지원할 때 예술이 가진 힘이 다시 기업 운용의 활력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 예술의 가치가 기업의 브랜드 자산·임직원 자긍심·고객 관계 확대로 연결되는 거다.
―민간의 관심과 재원을 끌어오기 위해 위원회와 협회는 그간 어떤 활동을 해 왔나.
△윤 회장= 두 기관은 2005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업과 예술의 만남’ 사업을 함께 운영해 오고 있다. 특히 기업이 예술단체에 후원하는 것과 비례해 위원회에서 문예진흥기금을 추가 지원해 주는 ‘예술지원 매칭펀드’는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초기 후원금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매칭펀드의 이점을 잘 활용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 3300건의 기업-예술단체 매칭을 성사시켜 128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예술계로 유입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문화재단을 통한 기업 후원도 지난 10년(2014∼2023년)간 2.86배 증가했다.
△이 위원장= 기업들의 호응 때문에 위원회는 올해 매칭펀드 예산을 전년(25억4000만 원) 대비 30억 원 증액한 55억6000만 원으로 확대했다. 내년에는 매칭펀드 형태도 다각화할 계획이다. ‘지역재원투입형 매칭펀드’ 트랙을 신설하는 게 핵심이다. 지역 문화재단 지원금 등 지역비를 투입할 수 있는 곳의 경우 이에 상응해 문예진흥기금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윤 회장의 경우 20년 이상 기업을 통해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해 온 대표적 기업인인데, 후원의 가치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윤 회장= 크라운해태제과는 국악, 조각, 시 분야를 집중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우리는 국악을 ‘한음(한국 음악)’이라고 부르는데 꿈나무들을 발굴하기 위한 ‘영재한음회’를 300회 넘게 개최했고, 명창들과 임직원들이 함께하는 공연 ‘창신제’도 2004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이들 공연에 지역 점주들과 영업사원, 주요 고객들을 초청하니 매대 확장과 공동 프로모션 참여가 활발해지는 등 기업 마케팅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을 경험했다. 조각에도 애정을 갖고 지원해 왔는데, 조각가들이 제안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임직원들이 경영에 반영한 결과, 보다 차별화된 제품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기초예술 지원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기업에 후원의 ‘가치’를 어떻게 알릴 수 있다고 보나.
△이 위원장= 크라운해태제과처럼 문화예술 후원이 임직원들의 자긍심을 끌어올리고 회사의 자산이 되는 모델이 확산해야 한다. 다만 이에서 그치지 않고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정도와 효과를 지수화해서 보여 준다면 기업의 효능감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위원회는 기업문화재단을 통한 문화예술 후원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 ‘기업문화재단 기여도 평가’를 도입해 2024년 그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한 단계 나아가 기업 자체의 문화적 역량과 후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국경영학회와 함께 ‘기업 문화력 지수’도 개발했다. 올해 초 실증 분석 결과를 처음으로 발표했는데, 앞으로는 지수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체계와 연계할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 등과 협의 채널을 마련하려고 한다. 기업들이 강점을 지닌 부분을 파악하고 다음 후원 전략을 설계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도권·대기업 중심 후원을 넘어 중소기업 및 지역기업의 예술단체 후원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윤 회장= 지역기업과 문화예술 단체 간의 협력이 활성화되면, 문화예술의 지역 균형 발전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위원회와 협회는 2020년부터 메세나 단체들을 기반으로 지역기업의 예술 후원을 활성화하는 ‘메세나 전국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세종, 부산, 경북, 대구, 충남 지역에 6개 메세나 단체가 신규 설립됐다. 현재 광역 단위 기준으로 전국에서 9개 메세나협회가 활동하며 지역기업과 예술단체의 매칭을 돕고 있다.
―후원 기업들을 위한 정부의 세제 혜택 등도 뒷받침돼야 하지 않나.
△이 위원장=문화예술 후원은 일반적인 기업 투자와는 성격이 다른 만큼, 특수성을 고려한 ‘획기적이고 전략적인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 한 예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과거 민간이 예술품을 사서 국가 박물관·미술관에 기증할 경우, 자금 출처를 묻지 않거나 큰 폭의 세제 혜택을 준 적이 있다. 앞으로 위원회와 협회 실무진이 상시로 만나는 정기 협의체를 신설해 세제 혜택 확대 건의 등을 포함한 여러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기업이 문화예술 단체와 장기 결연할 경우 적용할 수 있는 세제 인센티브 신설도 재정경제부에 건의할 생각이다.
△윤 회장= 프랑스에서는 기업 예술 기부금의 60%를 세액 공제해 주는 법이 시행된 이후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금이 3배 이상 증가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세제는 현재 예술 기부금 ‘손금산입’에 머물러 있을 뿐 ‘세액 공제’를 위한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의 관심과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
△1963년 출생 △선화예고 미술과·홍익대 동양화과·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 △제28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제24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 △책 ‘예술인 복지에서 삶의 향유로’ ‘예술과 생활’ 등 집필
■ 윤영달 한국메세나협회장
△1945년 출생 △서울고·연세대 물리학과·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춘향제전 위원장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조직위원장 △서울오픈아트페어 조직위원장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조직위원장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 △영동세계국악엑스포 공동조직위원장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인지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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