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사회부 차장

수도권 지방법원 형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판사는 최근 사석에서 “공소장을 보자마자 무죄 심증이 드는 사건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형사 재판 경력이 풍부한 그는 검·경 수사권 조정 후 나타난 부작용 중 하나로 수사 결과의 질적 저하를 들었다. 법리 적용이 잘못됐거나 혐의를 입증하는 논리 구성이 제대로 되지 못한 채 기소한 사건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앞으로 더 늘어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대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검사의 보완수사권마저 사라진다면 무죄를 선고하는 사건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형사사법 제도 개편을 걱정스럽게 보는 건 이 판사만이 아니다. 재심 사건 전문이자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을 지낸 박준영 변호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보완수사권 폐지 등이 가져올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계속 올리고 있다. 일례로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 경찰관들을 위증 혐의로 기소할 수 있었던 것은 검찰의 보완수사 덕분이다.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22일 앞두고 무혐의 판단했다. 만약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수 없고 보완수사요구만 할 수 있었다면 기소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박 변호사의 판단이다. 광주에서 여고생 이모 양을 성폭행하려다가 실패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장윤기 사건은 경찰을 통제 밖에 둔다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 장윤기가 계획적인 범행을 했다는 점은 검찰 추가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여기에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아버지가 증거인멸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점, 수사팀장의 증거인멸 정황 등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개선책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소법 개정안, 조국혁신당 의원들이 발의한 형소법 개정안은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검찰에 수사권을 남기면 안 된다는 여권 강경파의 ‘신념’은 바뀌지 않았다. 경찰 통제 장치라고 내놓은 제도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국민의 기본권을 두텁게 보호하려 한다고 강변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형소법 개정 심사에 들어가면 두 개정안은 논의의 기초가 된다. 정부가 개정안을 내놓지 않아서다.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민주당 태스크포스에서 별도 법안을 만든다고 하나 기대감은 생기지 않는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6일 “보완수사권 폐지는 다시 하나 마나를 논의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김예원 변호사가 겪은 일화는 마냥 웃어넘기기 어렵다. 김 변호사는 네덜란드 라이덴대 행사에서 각국의 법률가 등에게 형소법 개정 상황을 설명했다. 중국에서 온 참가자까지 경악한 가운데 폴란드 변호사가 한 농담이 압권이다. 그는 “독재국가 클럽에 온 걸 환영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의 모국은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각국의 사법권 독립 침해에 관한 연구’에 핵심 사례로 등장한다. 폴란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해준 여권에 감사해야 할까.

조성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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