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서울 외환시장이 지난 6일부터 평일 24시간 열리고 있다. 이로써 원화가 국제통화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은 달성됐지만, 아무리 바람직한 제도라도 시기가 맞고 여건이 조성돼야 성공한다.

우리나라는 1988년 올림픽으로 경제발전의 성과를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8조국’(가맹국 중 IMF협정 제8조 규정에 따라 국제수지상의 이유로 환(換)제한을 철폐한 국가) 이행을 완료함으로써 대외채권국 지위를 다졌다. 1990년 환율제도를 시장평균환율제도로 바꾸고 외환시장의 선진화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외형적 모습과는 달리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실제 당국은 외환 포지션 관리와 협력 외국환은행과의 거래를 통해 환율 급변동을 관리했다.

김영삼 정부는 급진적 노동운동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었지만, 여건보다 명분에 집착했다. 대외 경쟁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금리자유화와 외국인 주식투자 규제를 풀고 1996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김영삼 정부의 외환정책 실패에 기인한 것이었다. 당시 정부의 정책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시기와 여건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 실행력의 부재가 위기를 키웠다.

지금은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중이다. 미·중 갈등은 아직 해소되지 못했고, 미국·이란 전쟁이 재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한다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공고해지겠지만, 민주당이 이기면 노선 갈등으로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은 커진다. 이재명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었고, 한미 통화스와프는 기대 난망이다.

지난 1년간 원·달러 환율이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는데도 환율이 오르는 것은, 경쟁력이 상실되고 정책 실패가 있거나 정치적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앞장서서 향후 10년간 반도체 기업들의 4700조 원 투자를 발표하는 것을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정책 리스크로 해석한다. 2025년 명목 총저축이 950조 원이고, 총투자가 949조 원인 상황에서 초대형 투자가 추가되면 경상수지가 적자로 바뀌어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이 슈퍼 301조를 발동해 무역 갈등이 악화하거나 현 정부의 대미 투자 약속이 가시화하면 외환시장은 요동을 친다. 정부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24시간 거래제에서 외환시장의 인위적인 개입은 더 어려워진다. 이른바 종가 관리는 의미가 없어진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대고객 거래와 외환 거래를 연계하므로 환율의 급변동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돈을 풀면서 물가가 낮아지고 환율이 떨어지길 기대하는 정부가 과연 시장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을까. 정치권력이 ‘정부를 이기는 시장(市場)은 없다’고 호통을 칠 때, 시장은 국민에게 대가를 치르게 한다. 24시간 거래제는 동전의 양면을 가지고 있어 정부의 대응 능력이 요구된다.

24시간 거래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시장원리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정책으로 시장을 활용해야 한다. 시장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한다. 정부가 정치적 이해득실에 매달리지 말고 시장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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