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계에서는 대체로 자본주의 경제에는 ‘호황(boom)’과 ‘불황(bust)’의 주기(週期)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다. 특히, 금융 분야의 호황과 불황 사이클은 가끔 극적인 형태로 전개되기도 한다. 주식시장에서는 시장 참가자들이 특정 테마 주식의 호황을 일부러 만드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래야 주식시장 관련자들도 활황의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현재 주식시장을 포함한 세계 경제의 최대 테마는 인공지능(AI)이고, 실속은 천문학적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AI 기업보다 반도체 기업이 더 많이 챙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AI·반도체 호황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주요 메모리 반도체 업체(삼성전자 DS부문,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75∼80%라고 한다. 영업이익률은 매출액에 견준 영업이익의 비율인데, 영업이익률이 80% 안팎이라는 얘기는 쉽게 말해 ‘노다지’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치열한 공급 늘리기 경쟁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현재 반도체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나 국가뿐만 아니라 참여하지 않고 있는 기업이나 국가까지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29일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재명 정부와 함께 각각 2655조 원, 2100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흐름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SK텔레콤, GS, 네이버 등이 2035년까지 투자하겠다고 밝힌 1000조 원(AI 데이터센터 구축)까지 합치면 앞으로 우리나라 AI·반도체 관련 투자 규모는 5000조 원이 훌쩍 넘게 된다.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 4일 일본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공장에서 신규 생산 설비(팹) 기공식을 열고, 총 1조5000억 엔(약 14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028년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생산한다고 한다. 이 밖에도 대만, 미국, 일본, 독일, 중국 등의 여러 기업이 기존 반도체 생산 설비나 신규 생산 설비를 늘리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 설비 규모가 증가하면 영업이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공급 과잉’이 발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아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 중 하나도 반도체 공급 과잉 가능성일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경제전망(2026년 5월)을 통해 올해 성장률은 2.6%로 높였지만,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8만 명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원래 반도체 업종은 취업유발계수가 낮아 체감경기 개선에 큰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반도체 업종의 취업유발계수(2023년 기준)는 생산 10억 원당 2.4명에 불과해 전체 산업 평균(8.2명)의 3분의 1도 안 된다. 음식점 및 숙박서비스업, 도소매서비스,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 등의 취업유발계수가 대략 20명 안팎인 점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반도체 업종은 호황이지만, 자영업자 형편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는 통계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종 호황에 가린 한국 경제의 이면(裏面)을 살피는 것이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