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홍한별 옮김│엘리
“그렇게 그들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일찌감치 거짓말로 판명 났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저마다의 구원 서사에 밀어 넣곤 한다. 삶이 사랑과 결혼만으로 구축될 수 없다는 걸 진작 깨쳤지만, ‘사랑’이 삶의 방식을 좌우하고, 무언가를 바꾸는 힘이 있다고 아직 믿는 것 같다. 우리 시대 가장 예리한 비평가인 비비언 고닉은 30여 년 전에 쓰인 이 책에서 이미 사랑의 신화에 종언을 고했다. 단순히 사랑 없는 시대라는 말이 아니다. 20세기 문학작품에서 ‘사랑의 문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탐구하며 고닉은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복잡한 인간사를 사랑으로 쉽게 퉁치지 말라’고.
책은 버지니아 울프, 이디스 워튼,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한나 아렌트와 같은 실존 인물들의 삶과 연애를 탐색하며, 한때 그토록 소중했던 사랑이 얼마나 사소해질 수 있는지 포착한다. 울프와 워튼의 여성 인물들은 결혼 이후의 자신을 ‘상상’하다 스스로 분열한다. 아렌트는 나치에 복무한 하이데거를 향한 욕망과 숭배 사이에서 고통받는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진짜 삶이 뭔지 잘 모른 채 사랑을 찾아 방황하고, 사랑을 원한다면서 연인을 구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고, 있지도 않은 남녀 관계의 노스탤지어를 그리워하며 공허해 한다. 이를 통해 고닉은 “사랑의 서사는 더 이상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즉, 사랑 말고도 중요한 게 많아진 시대, 그렇다면 이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결국 중요한 건 사랑 앞에서 녹아내리고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의 내면이다. 고닉의 비평은 삶과 문학이 그것을 성찰하는 관계임을 확인하게 한다. 그리고 책에 등장한 ‘연애 소설’들이 몹시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고닉의 말대로, 사랑이 물을 포도주로 바꿔주지 못하지만, 정말로 한 시대가 끝나버린 듯 쓸쓸해지지만. 우리는 여전히 ‘나’와 ‘너’를 알고 싶고, 그것은 사랑만으론 안 되지만 사랑이 없어서도 안 되는 것이니까. 208쪽, 1만8000원.
박동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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