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딥 유토피아

닉 보스트롬 지음┃김의석 옮김┃까치

지난 2014년 ‘슈퍼인텔리전스’로 전 세계에 인공지능(AI) 경고음을 울렸던 닉 보스트롬이 이번에는 정반대 방향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초지능이 인간의 통제 아래 안전하게 작동하고, 질병과 빈곤과 노동이 사라진 ‘해결된 세계’가 도래했다고 치자. 그때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얕은 잉여’는 시작에 불과하다. 기술이 충분히 성숙하면 노력 자체가 불필요해진다. 운동하지 않아도 알약으로 건강해지고, 배우지 않아도 지식을 주입받을 수 있는 세계에서 목표를 향한 노력이라는 인간 삶의 기본 구조가 무너진다. 저자는 이를 ‘철학적 입자가속기’라고 부른다. 극한 조건을 상정해야 비로소 인간 가치의 기본 입자들, 즉 쾌락·목적·흥미·성취가 각각 무엇인지 드러난다는 것이다.

책의 형식은 파격적이다. ‘초록색 묘약’을 먹고 100세도 훌쩍 넘겼지만 젊은 체력을 가진 가상의 ‘닉 보스트롬’이 옥스퍼드대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강의를 하는 가상의 강의록과 학생들의 대화, 우화와 유인물이 뒤섞인 실험적 구성이다. 저자는 유토피아의 층위를 물질적 결핍이 사라진 ‘탈희소성’, 노동이 필요 없어진 ‘탈노동’ 단계를 지나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활동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탈도구적’ 단계로 나눠 상정한다. 여기에 기분과 욕망, 기억까지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는 ‘자기전능성’이 더해진다. 지루하면 지루함을 느끼는 회로를 꺼버리면 되는 존재에게, 남는 문제는 무엇인가.

저자는 골프를 힌트로 제시한다. 구멍에 공을 넣으려면 손으로 집어넣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만, 인간은 굳이 막대기로 먼 거리에서 치는 비효율을 규칙으로 만들어 골프를 즐긴다. 목적이 사라진 자리에 스스로 제약을 발명해 ‘인공적 목적’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과 취미로 채운 삶은 과연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것일까. 전지전능한 ‘포스트휴먼’이 되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 한시라도 더 빨리 선택하는 것과 늦게 선택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나은가. 저자는 ‘목적과 이를 위한 노력이 사라지면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591쪽, 2만8000원.

박세영 기자
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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