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시티피케이션

코리 닥터로 지음┃박희원 옮김┃흐름출판

 

지식·사람 연결하던 혁신의 장

알고리즘 콘텐츠 등 앞세우며

이용자 편익보다 수익 우선시

 

디지털 권리운동 코리 닥터로

“테크노동자 힘·연대 사라지고

플랫폼간 이동·경쟁도 무력화”

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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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메신저와 SNS를 켜면, 주변 소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대화창이나 피드 사이에 끼어드는 알고리즘 추천 콘텐츠들이다. 검색 포털에 접속해보니, 원하는 정보는 보이지 않고 기업 이름이 포함된 연관 검색어들만 시야를 파고든다. 쇼핑몰에는 내가 찾는 것보다 광고 상품이 더 많다. 모든 게 플랫폼 저편의 판매자만 배 불리는 일일까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각종 플랫폼이 판매자에게 물리는 수수료가 수십 배 급등했다는 뉴스들이 눈에 띈다. 중소 판매자들이 폐업하고, 배달·운송 노동자들이 파업한다는 소식도 꼬리를 문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플랫폼은 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불편하고, 더 탐욕스러운 존재로 변해가고 있을까.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 디지털 권리 운동가이자 작가인 코리 닥터로가 이러한 현상에 붙인 이름이다. ‘똥’ ‘쓰레기’라는 의미의 ‘shit’을 사용한 것은, 온라인 플랫폼이 ‘배설물처럼’ 부패해간다는 의미에서다. 디지털 인권 개념을 창안한 전자프런티어재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이 단어를 2022년 처음 고안했다. 이후 이 말은 2023년 미국방언학회와 2024년 호주 맥쿼리 사전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당신만 느끼는 불쾌감이 아니라는 의미다.

저자는 엔시티피케이션을 네 단계로 설명했다. 처음엔 플랫폼이 사용자의 편익을 위한 혁신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사용자들이 많아져 네트워크 효과가 만들어지면, 판매자와 광고주 등 사업자에 혜택을 몰아준다. 플랫폼의 독점 구조가 공고해지고, 사업자가 플랫폼에 의존하는 ‘록인(Lock-in·잠김)’ 상태가 되면 사업자조차 쥐어짜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 결국 플랫폼은 이용자와 사업자 모두에 ‘거대한 배설물 더미’가 된다.

책에서 언급된 아마존의 예를 보자. 신속하고 효율적인 배송을 내걸며 빠르게 성장한 아마존은 많은 상품을 원가 이하로 판매하고 무료 반품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이용자들이 몰려들자 아마존은 이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내놨다. 고객이 1년치 배송비를 미리 결제하게 하는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과, 이들이 디지털 상품을 이용하려 할 경우 아마존 앱을 사용하도록 한 암호화 기술 ‘디지털권리관리(DRM)’다.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자 판매자들의 입점이 이어졌는데, 아마존은 이들에게 점점 더 높은 폭의 할인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판매자가 상품을 직접 보관·포장·배송하지 않고, 아마존에 맡기는 ‘풀필먼트 바이 아마존’도 악재였다. 아마존은 판매 수수료뿐만 아니라, 물류 등에 대해 더 많은 비용을 징수할 수 있게 됐다. “아마존에서 파는 가격이 다른 플랫폼보다 높으면 안 된다”는 ‘최혜국 대우’ 조항은 어떤가. 판매자는 아마존에서 가격을 인상하면 다른 모든 판매처에서도 가격을 올려야 한다. 책은 이러한 사례가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우버, 어도비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플랫폼 부패 뒤에 일부 기업 경영진의 무능이나 독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책이 보다 주목하는 것은 이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안겨 준 시장의 ‘구조’다.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막대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며 경쟁이 사실상 사라졌고, 그 결과 이용자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도 거리낌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지미 카터 행정부 이후 반독점법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돼 정부 규제로 플랫폼의 독주를 막기 어려워졌다. 과거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이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독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기업이 천문학적인 기금을 투입해 재판을 지연시킨 탓에 별다른 결실을 얻지 못했다. 디지털 콘텐츠와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이 이용자에게서 플랫폼 기업으로 넘어간 점도 이용자들의 저항을 어렵게 했다. 한때 플랫폼 경영진의 탈선을 저지했던 테크 노동자들의 힘과 연대는 2023년부터 불어온 수십만 명의 대량 해고 바람 속에서 취약해졌다.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플랫폼’을 위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와 시민사회 압력, 테크 노동자들 간 연대는 이를 가능하게 할 열쇠 중 하나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24년 디지털 시장법을 발효하고 빅테크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등 반독점 움직임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플랫폼이 가진 권력을 견제하는 것, 오늘날의 엔시티피케이션에 종언을 고할 방법이다. 456쪽, 2만4000원.

■ 용어 설명 - 엔시티피케이션

‘똥’ ‘쓰레기’라는 의미의 비속어 ‘shit’의 앞뒤로 접두사 ‘en(∼이 되게 하다)’, 접미사 ‘ify(∼화하다)’를 붙인 후 명사형으로 만든 단어다. 플랫폼의 부패, 쓰레기화를 가리키는 신조어.

인지현 기자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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