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는 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 많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대작은 단연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1808년 5월 3일’이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마드리드 침공 후 자신의 동생을 스페인 왕좌에 앉히자 봉기가 일어나는데,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담았다. 프랑스군의 총구 앞에서도 의연한 흰색 셔츠의 청년은 마드리드 시민의 저항을 상징한다.
18세기 중반 스페인 아라곤 지방에서 태어난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카를로스 3세와 카를로스 4세 및 가족의 초상화를 많이 남겼는데 ‘1808년 5월 3일’은 그의 사상적 지향을 분명히 드러낸 작품이다. 프라도미술관의 이 작품이 외세의 침략에 맞선 시민들의 애국심을 그렸다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판화 연작 ‘카프리초스(변덕)’는 스페인 사회의 참혹한 실태를 고발한 작품들이다. 프랑스와의 6년 전쟁 후 평화 시대가 열렸지만, 스페인은 왕실의 무능과 귀족들의 부패, 종교인의 타락과 미신 숭배로 지옥 상태가 됐음을 느낄 수 있다.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는 작품은 전시회의 제목이자 80점 중의 대표작인데, 잠이 든 남자의 머리 위로 박쥐 형상의 괴물이 엄습하는 모습이다. 총체적 광기에 빠진 스페인 사회에 대한 고야의 질타로 보인다. 고야는 콜레라 후유증으로 청각이 상실된 상태에서 이 연작을 그려 1799년 발표했는데 200여 년 전 작품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이성이 무너진 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자들의 괴물적 추태가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졌다. 고야의 통찰에 대한 공감 덕분인지 지난 주말 전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눈 딱 감고 검찰을 폐지하는 데 이어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까지 몰아붙이고 있다. 유권무죄(有權無罪)의 범죄자 천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대로 광주 광산 경찰이 광주 여고생 살인범의 부친인 현직 경감과 범죄 혐의 축소를 시도한 사실이 광주지검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났는데도 집권층은 막무가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탈레반적 반법치 광기는 고야 시대 스페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 권력이란 이름의 괴물을 잠재우기 위해 시민들이 눈을 부릅떠야 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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