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문화부 차장
‘일베 논란’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방송가에서 촉발된 후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마치 사상 검증 논란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혐오나 조롱의 의미를 내포한 부적절한 표현에 대한 질타는 타당하다. 하지만 말과 화자의 ‘맥락’을 따지지 않은 채 불순한 ‘의도’를 갖고 ‘일베몰이’에 몰두하는 이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일베’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의 약자다. 이 사이트 사용자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이나 이미지를 사용하고 유포하는 행위는 꽤 오래전부터 사회적 흉기였다. 방송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지난 2013년, MBC ‘기분 좋은 날’은 화가 밥 로스 자료화면을 사용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일베 사진을 내보내 물의를 빚었고, 2024년 2월에는 SBS의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가 ‘일베’라는 단어가 삽입된 조작된 부산대 로고 이미지를 송출했다. 각 방송사는 외부 이미지 사용을 제한하고 내부 거름망을 구축하는 등 재발 방지에 나섰지만, 독버섯처럼 번진 일베 논란은 반복되는 모양새다.
이번에는 걸그룹 리센느의 리더 원이가 타깃이 됐다. 그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리센느의 또 다른 멤버 미나미의 고향집 방문 영상을 공개했다. 미나미가 그의 동생 방을 소개하는 과정 중, 촬영 PD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며 원이에게 먼저 “무섭노”라고 물었고, 원이 역시 “무섭노”라고 답했다.
‘맥락’을 보면, 여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원이의 고향이 경상도이기 때문이다. 거제도 출신인 그는 최근 “거제 야호”라는 유행어를 낳는 등 사투리를 자주 구사해왔다. “뭐라카노?” “와 이리 좋노?” 등 ‘노’로 문장을 맺는 표현은 경상도에서 일상적으로 쓰인다. 조회수가 533만 회가 넘지만 별다른 문제 제기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의도’가 삽입됐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연출한 김현지 MBC경남 PD가 지난 1일 SNS에 해당 발언에 대해 “호평받는 유튜브 클립 하나 봤는데 여성 아이돌과 PD가 사이좋게 ‘노노’ 주고받고 있어 무척 속상했다”는 글을 남기며 이 대화를 일베 논란으로 끌고 왔다. 일베 이용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말끝마다 ‘노’를 붙이는데, 원이가 이 대화를 통해 일베 이용자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식의 자의적 해석이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기름을 부었다. 5일 SNS에 ‘부산 사람의 구별법’이라는 콘텐츠를 인용해 “일베는 표준말 뒤에 기계적으로 ‘노’를 붙여 사용한다”고 주장하며 김 PD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에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SNS를 통해 “(조 전 대표가) 말끝 하나로 사상을 검증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일베는 모욕과 조롱의 언어를 쓴다.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 이용자들이나 이런 논란을 모르는 이들이 무분별하게 일베 표현을 쓰는 것을 경계하고 계도하는 건 타당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일베’라 분류되는 것의 무게감을 안다면, 누군가를 “너 일베”라고 함부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도 알아야 한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이념적 성향을 이유로 누군가를 희생양 삼으려는 이들의 행태는 일베식 낙인찍기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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