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김영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1971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제정은 단순한 예산 배분이 아니라 국가가 나아갈 길에 대한 선언이었다. 산업화로 경제를 일으켜야 했던 그 시대의 공장이 요구한 것은 읽고 쓰고 셈할 줄 아는 초·중등 교육을 마친 인력이었고, 국가는 가난한 살림에도 내국세의 11.8%를 떼어 그곳에 쏟았다. 문맹을 없애고 모두에게 기초 교육을 보장하는 일, 그것이 그 시대가 선택한 국가경쟁력 전략이었다.
주목할 것은 그 결단이 홀로 서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70년에 경부고속도로가 놓였고 이듬해에 교부금법이 제정됐다. 국가는 길을 놓으면서, 그 길 위를 달릴 사람을 기르는 법을 함께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길러진 인력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과 맞물려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그 이후는 어떠한가. 대학에 가는 이가 열에 셋뿐이고 산업이 초·중등 수준의 인력을 원하던 시절, 그 집중은 절대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지금은 열에 일곱이 대학에 가고 AI와 첨단 기술이 주도하는 신산업이 고도 전문 인력을 요구하는 시대이며, 교육정책의 무게중심은 이미 오래전에 ‘초·중등 집중’에서 ‘초·중등과 고등의 균형’으로 옮겨갔어야 했다. 그럼에도 인구와 산업과 진학률이 모두 뒤집히는 동안 교육재정의 골격만은 그대로 남았다. 2025년 출생아가 1971년의 4분의 1로 줄어드는 사이 11.8%였던 교부율은 거꾸로 올라 20.79%에 이르렀고, 초·중등 교부금은 72조 원으로 불어나 수십조 원이 기금으로 쌓이는 반면 고등교육에는 그 재원을 보장하는 법적 근거조차 없다. 대학의 예산은 해마다 심사대에 오르고, 2030년 일몰이 걸린 한시 특별회계에 기대어 연명한다. 초·중등 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세계 최상위권에 이르는 동안 고등교육은 OECD 평균의 60%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지금, 국가는 다시 한번 거대한 결단을 내렸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와 피지컬 AI와 AI 데이터센터에 국가의 명운을 걸겠다는 선언이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놓던 그 시절의 결단보다 크다고 정부 스스로 말했으니, 그 규모와 각오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잠재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은 지금 국가가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판단은 옳다. 다만 그 발표문을 끝까지 읽고 나면 한 가지 물음이 남는다.
그 안에서 일할 사람은 누가 기르는가. 발표문에서 인력 양성 관련 말은 세 번 등장한다. “인력 생태계 구축”, “전문인력 1만 명 양성”, 그리고 총력지원체계를 이루는 “기업, 대학,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전부다. 기업은 자기 자본을 투입해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정부는 확정된 예산으로 전력과 부지와 인허가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름만 얹힌 대학은 다음 해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이 명단에 올라 있다. 책임은 셋에게 맡겼으나, 재원은 둘에게만 있다.
더구나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인력이 어느 층위인지 들여다보면 문제는 한층 선명해진다. 회로를 설계하는 연구 인력과 공정을 설계하는 엔지니어 위에만 산업이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설비를 세우고 돌리고 고치는 현장 기술인력과 라인의 수율을 지키는 생산관리 인력이 제조 현장 인력의 절대 다수를 이루며, 그들이 없으면 아무리 거대한 공장도 한 시간을 돌지 못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그 다수를 배출해온 곳은 전문대학이다. 그럼에도 발표문 어디에도 그 이름은 없다.
정부는 5년 안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설비를 두 배로 늘리는 일과 그것을 다룰 사람을 두 배로 기르는 일은 같지 않다. 국가가 5년 뒤의 생산을 계획하는 동안, 그 인력을 길러낼 대학은 4년 뒤 사라질 한시 특별회계에 기대어 이듬해조차 확정하지 못한다.
여기에 우리의 모순이 있다. 가난하던 1971년의 국가는 미래를 보고 교육에 투자했으나, 세계 10위권 경제국이 된 지금의 국가는 그러지 않는다. 산업은 신산업으로 갔고 아이들은 대학으로 향하는데, 교육재정의 골격만은 1971년 그날에 박제된 채 멈춰 서 있는 것이다.
답은 명확하다. 초·중등 재정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으로 안정적으로 보장되듯, 고등교육에도 법정 재원의 토대를 놓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야 한다. 17대부터 20대 국회까지 10건이 발의됐다가 번번이 폐기된 교육계의 숙원이며, 그 조문에는 직업교육 재원의 산정 근거가 반드시 명시되어야 한다. 법이 생기더라도 배분이 상층으로만 흐른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초·중등의 몫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묻는 것은 왜 저기에 많은가가 아니라 왜 여기에는 법이 없는가이며, 초·중등이 길러낸 아이들의 다음 단계를 국가가 함께 책임지고 시대에 맞게 균형을 다시 맞추자는 것이다. 초·중등 재정이 안정적인 까닭은 액수가 커서가 아니라 법이 지키기 때문이고, 고등교육이 불안정한 까닭 또한 액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법이 없기 때문이다.
1971년의 결단은 그 시대를 살린 생명이었다. 그러나 생명도 시대가 끝나면 박제가 된다. 1970년의 국가는 길을 놓으면서 사람을 기르는 법을 함께 만들었고, 2026년의 국가는 그보다 크다는 사업을 선포했다. 이제 사람을 기르는 법을 만들 차례다. 다음 세대의 미래를 지금 법으로 보장할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 방치할 것인가.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