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보완수사권 전면폐지
檢 보완수사로 강간목적살인 규명… 보수전폐해 ‘탁 치니 억’ 사례들 나오면 민심 폭발
친청, 노무현 비극서사로 당심 잡기… 검수완박 창당신화 내세우며 대통령과 차별화
여고생 강간목적살해 혐의를 받는 장윤기 사건이 검찰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보수전폐)를 추진 중인 집권 더불어민주당을 들쑤셔놓았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장윤기의 강간목적살인은 밝혀질 수 없었다. 하마터면 그가 30대 초반의 한창 젊은 나이에 출소해 거리를 활보했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당권 주자인 정청래 등강경파는 ‘보수전폐’를 밀어붙이는 중이다.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 경찰 수사에서의 ‘탁 치니 억’ 같은 사례가 축적되면 민심이 폭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깊어진다.
◇ 보완수사의 힘
장윤기는 사건 직후 우발적 사건임을 강조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범행 동기와 범행 양태 등을 중심으로 만든 기준에 따르면 살인은 ①참작동기 살인 ②보통동기 살인 ③비난동기 살인 ④중대범죄 결합 살인 ⑤극단적 인명 경시 살인 등 5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강간목적살인은 중대범죄 결합 살인의 대표 유형이다. 범죄의 성격이 바뀌면, 권고형량의 출발점과 최고치가 달라진다. 보완수사로 바뀐 장윤기의 범행은 중대범죄 결합 살인에 해당한다. 비난동기 살인의 기본 권고형량은 징역 15~20년, 중대범죄 결합 살인은 ‘징역 20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이다.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장윤기의 범행은 비난동기 살인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강간목적살인을 입증하는 스모킹 건은 케이블타이다. 남성이 여성을 결박하려는 것은 성범죄 의도를 나타낸다. 이것이 가해자의 아버지와 한솥밥을 먹은 광주광산경찰서 수사팀장이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이유이다. 사건 당시 경찰서장이 장윤기에 대한 강간살인죄 적용을 막았다는 진술도 있다고 한다.
단순살인죄로 묻힐 뻔했던 사건이 강간목적살인으로 밝혀진 것은, 민주당 강경파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아직 작동했기에 가능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올해 23세의 장윤기는 30대 중후반이면 출소해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반성문 쓰고 모범수로 복역하면 더 젊은 나이에 나올 수도 있다. 보완수사권이 없는 세상에서 피해자와 가족이 피눈물 흘릴 사례들이 속출할 것이다. 이게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외치는 민주당이 꿈꾸는 세상일까.
◇ 경찰 수사종결권 문제
검찰의 기소권은 법률에 규정돼 있다(형사소송법 제246조). 이른바 기소독점주의 조항이다. 기소권한은 거꾸로 보면 불기소권한이기도 하다. 만약 수사종결권을 갖는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검찰의 기소권 자체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불기소권한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건을 공소기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기소 가능성을 차단하는 불기소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기소 분리를 위한 제도설계에서는 가족·지인 경찰관이나 토호세력과의 연계 가능성 혹은 은폐와 유착의 위험을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오류나 부패가 가능하므로 서로 다른 조직이 사건을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의 존재가 중요하다. 현행 수사준칙은 송치사건에 대해 검사가 보완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보완수사권은 다른 수사기관이 다른 경험과 시각으로 기록과 증거를 검증하는 장치다.
보완수사가 사라짐으로써 발생하는 피해의 폭발성은 충분히 개연성 있다. ‘딸을 잃은 부모가 경찰에 호소했지만 단순사고로 종결됐다. 검사는 이상하게 여겼지만 보완수사권한이 없어 불기소 처분했다. 뒤늦게 가해자와 경찰의 유착과 증거 누락이 밝혀졌다.’ 이런 사건이 쌓이면 국가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신뢰 붕괴→피해자와 유족의 집단행동→중대 사건을 계기로 한 대규모 저항→정권 심판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수사기관에 대한 분노는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는다. 피해 사례가 축적되면 여권의 핵심 지지층까지 이탈과 항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친명(친이재명) 수도권 중진 A 의원은 “보완수사 폐지의 부작용은, 마치 물이 끓어오르다 100도가 되는 순간 기화하듯, 사건이 누적되면서 임계점이 되는 순간 폭발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 강경파 ‘보수전폐’ 왜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보수전폐’에 따른 부작용과 국회에서의 숙의를 거듭 거론한 뒤에도 “닥치고 폐지”라며 선명성을 강조했다. 유튜버 김어준은 “장윤기 사건이 1년에 몇 건씩 있는데… 보완수사권 폐지 안 된다고 여론몰이한다”고 정 전 대표를 거들었다.
강경파들이 보수전폐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이 이슈가 8·17 전당대회를 앞둔 당권투쟁에서 당심 충성도 시험지가 되기 때문이다.
여러 층위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강경파는 검찰개혁의 최종 성과를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검찰개혁이란 저작권을 청와대에서 당과 강성 지지층으로 빼앗아오겠다는 것이다. 강경파에게 검찰개혁은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해온 창당 신화이자, 정치적 정체성과 진영 정당성의 원천이다.
둘째, ‘보수전폐’는 대통령을 거역하지 않는 형식으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의 환호를 받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을 공격하지 않고 ‘대통령의 검찰개혁을 더 철저히 완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친청(친정청래)과 친명을 구별하는 가장 손쉬운 차별화 수단이다. 보완수사권 이슈는 당이 정부를 통제할 것인가, 정부가 당을 이끌 것인가를 가리는 주도권 투쟁의 성격도 갖는다.
셋째, ‘정책 시장’이 아닌 ‘진영 시장’에서 경쟁하기 때문이다. 보수전폐의 주요 소비자는 강성 당원과 강성 지지층, 친여 성향의 유튜브 시청자와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층이다. 이 시장에서는 복잡한 제도설계보다 선명한 구호가 유리하다. 넷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기억이다. 이는 언제든 검찰에 다시 당할 수 있다는 친노·친문의 공포와 통한다.
◇ 정치적 국경선
민주당 강경파들이 검찰이라는 외부의 적이 현저히 약해진 뒤에도, 심지어는 장윤기 사건을 거치면서도 ‘보수전폐’를 밀어붙이는 것은, 주군의 비극적 죽음을 기억하는 친노·친문 지지층 결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수전폐는 최소한의 검찰 수사권을 통치수단으로 남겨 놓기를 원하는 대통령과 이를 당권투쟁의 도구로 동원하려는 정청래 등 강경파를 가르는 정치적 국경선이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탁 치니 억’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던 경찰의 허위 해명. 이후 검찰이 보완수사로 고문 사망을 규명하면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됨.
‘보수전폐’,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만 하도록 하는 것.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 강경파의 정치 구호.
■ 세줄 요약
보완수사의 힘: 검찰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장윤기의 범행은 우발적 살인에 그쳤을 것. 검찰이 그의 강간목적 살인을 규명함으로써 ‘중대범죄 결합 살인’을 입증. 하마터면 그가 30대에 출소해 거리를 활보했을 수도.
경찰 수사종결권 문제: 경찰의 수사종결권은 사실상의 불기소권. 한 기관이 수사 기능을 독점하는 건 잘못된 제도설계. ‘탁 치니 억’ 같은 피해 사례가 축적되면 여권 지지층까지 항의 대열에 합류하고 민심이 폭발할 것.
강경파 ‘보수전폐’ 왜: 민주당 강경파들이 보수전폐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이것이 당권투쟁에서 당심 충성도의 시험지가 되기 때문. 노무현의 비극을 기억하는 친노·친문 지지층을 결집해 당권을 잡으려는 노림수.
허민 전임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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