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용 전국부장

이재명 정부가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인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떠올리게 한다. 한미 FTA는 노 전 대통령의 대표적 실용주의 정책이자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좌파 진영에서 오랫동안 금기시해왔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친기업이라는 선을 과감하게 넘어섰다. 핵심 지지층인 노동계 등을 비판 세력으로 돌리며 정치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그는 더 큰 미래를 얻었다. 한미 FTA를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는 비약적으로 확장돼 10년 이상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오직 국익과 글로벌 경쟁력만 생각했던 지도자의 고독한 결단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출발의 결은 다소 다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진보·좌파 진영이 신앙처럼 고수해온 금도(禁度)들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한미 FTA와 흡사하다. 첫째, ‘탈원전’ 도그마의 극복이다. 초미세 공정을 다루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시설(팹)은 24시간 내내 전기 공급이 흔들려선 안 된다. 따라서 호남권에 추가적인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탈원전주의자’였던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조차 “신규 원전과 소형 모듈 원자로(SMR) 도입 여부를 전문가 의견과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4대강 반대·댐 건설 반대·보 해체 등으로 대표되는 ‘하천 복원주의’ 탈피다. 반도체 공정은 전기를 먹는 하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양의 물을 소비하는 하마다. 첨단 팹 하나를 가동하는 데 하루 수만 톤 이상의 깨끗한 공업용수가 필수적이다. 가뭄이 잦고 농업용수조차 넉넉하지 않은 호남의 현실을 고려할 때, 댐 건설은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전략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SNS에 “발전소를 짓고, 송전망을 연결하고, 용수를 확보하는 일은 결국 합의의 문제”라며 댐 건설의 당위성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셋째, ‘낙수효과’ 인정이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이 대통령 자신도 대기업 투자가 가져오는 낙수효과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하거나 부인해왔다. 그랬던 이재명 정부와 집권 여당이 호남 반도체의 성공을 위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대기업을 향해 투자를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다소 어리둥절한 모순적 풍경이지만 이번 메가프로젝트를 계기 삼아 그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대기업 투자의 낙수효과를 행동으로 인정한 것은 용기 있는 방향 전환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진보·좌파 세력들은 자기 진영의 정치적 셈법과 표 계산 때문에 보편적 상식과 과학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곤 했다. 이제 이 대통령은 과거 지지층의 반발을 뚫고 오로지 국익만을 앞세웠던 노 전 대통령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낡은 이념의 굴레와 도그마를 벗어던지고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성공한다면, 역사와 국민은, 이 대통령 역시 이념에 갇히지 않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반도체 산업 역사를 새로 쓴 실용주의 대통령으로 뚜렷하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다.

김만용 전국부장
김만용 전국부장
김만용 기자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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