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타이, 압수 및 언급 막아…강간 살인 주장에 “몰아가지 말라”
차량 뒷문 열렸다는 보고서도 수정
윗선 규명도 과제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23) 사건을 수사한 경찰 내부에서 성범죄 가능성과 주요 증거 확보 필요성을 제기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당시 수사팀장의 지시로 잇따라 배제되거나 축소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장윤기 사건 진상규명’ 특별수사단은 15일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별수사단에 따르면 사건 당시 광주 광산경찰서 형사과 강력팀장이었던 박모 경감은 팀원들에게 “성적으로 몰아가지 말라”고 지시하며 수사 방향을 제한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강간살인 혐의를 검토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성적 범행 동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과학수사 분야의 면담 보고서 역시 수사 기록에서 제외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장윤기가 피해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차량 뒷문이 열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보고서에 대해서도 박 경감이 “불분명하다”는 취지로 내용을 수정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별수사단은 장윤기가 과거 아르바이트 동료를 상대로 저질렀던 스토킹 범죄 관련 보고서에서도 일부 내용을 삭제하도록 지시가 내려졌으며, 다른 분석 자료를 첨부할 때도 ‘성적 목적’과 관련된 내용은 배제하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증거물 확보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확인됐다. 사건 당일 차량 감식 현장에서 박 경감은 결박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제기된 케이블타이를 직접 확인하고도 팀원들에게 “압수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관련 내용에 대한 언급 자체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단은 이 과정이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부친이 케이블타이와 리얼돌 등 주요 증거물을 인멸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경찰은 케이블타이 등 실물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발생 하루 또는 사흘 만에 차량과 자취방 등을 가족에게 인계하거나 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봐주기 수사’ 논란이 확산하던 지난 2일에는 누락된 수사보고서를 검찰에 추가 송치하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지만, 박 경감은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오히려 같은 날 케이블타이가 촬영된 현장 감식 영상을 삭제하라고 팀원에게 지시한 정황도 확인됐다.
특별수사단은 이 같은 행위를 근거로 박 경감에게 증거인멸, 직무유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해 이날 검찰에 송치했다.
박 경감은 조사에서 “케이블타이, 리얼돌 등 증거가 살인의 주요 증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장윤기의 스토킹 전력과 살인 사건을 연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단은 이에 따라 당시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 등 박 경감의 직속 상관들 역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입건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수사 정보 유출 의혹도 제기됐다.
박 경감이 지휘하던 강력팀 소속 A 경사는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A 경사는 장윤기의 부친에게 압수수색과 구속 계획 등 수사 기밀을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특별수사단은 일반적으로 보호자에게 고지하지 않는 수사상 비밀 정보가 장윤기 부친에게 전달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A 경사와 장윤기의 부친은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6개월 동안 일선 지구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수사단은 장윤기 부친이 증거인멸이나 수사 개입을 교사하거나 청탁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피의자로 입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특별수사단은 장윤기가 범행 이전부터 피해 여학생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새롭게 확인했다. 장윤기는 그동안 수사기관 조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여학생인 줄 몰랐다”며 피해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범행 이후 압수된 스마트폰 공기계에서 이를 뒤집는 자료가 발견됐으며, 특별수사단은 당시 광산경찰서 수사팀이 이 같은 내용을 초기에 인지하고도 추가 조사를 하지 않은 경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오동욱 특별수사단장(경무관)은 브리핑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할 수사 담당자가 도리어 범행의 증거물을 은닉함으로써 유가족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드렸다”며 공개 사과했다.
특별수사단은 향후 부실 수사 과정에서 금전 거래나 외부 청탁, 상부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계속 수사할 계획이다.
아울러 장윤기에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한 결정이 어느 단계에서 이뤄졌는지, 또 범행 직전 발생한 여러 성범죄 의혹이 왜 여성청소년과 수사와 살인 사건 수사로 분리됐는지에 대해서도 진상을 규명할 방침이다.
김무연 기자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