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숙의 Deep Read - 호남 반도체 입지 선정

 

전력·용수·인재수급 등 시장질서·산업생태계와 미스매칭… 규모의경제·집적경제 위배

호남 강점은 재생에너지 생산능력… 정부 개입 줄이며 데이터센터·AI산업 집중 필요

여성가족부 장관 시절 현장에서 만난 지방 청년들의 목소리는 어디서나 비슷했다. “사는 곳이 수도권이 아니라 집값 부담은 덜한데, 좋은 일자리와 병원, 문화시설이 부족해요. 아이를 믿고 키울 만한 교육환경도 마땅치 않고 지역 중소기업 여건상 일과 가정을 함께 지키기 어려운 분위기예요.”

청년이 지역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양질의 일터는 물론 의료·문화·교육 인프라가 어우러지는 든든한 정주 여건, 그리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환경도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이 세 가지가 결핍될 때 청년은 결국 수도권으로 떠나고 지역은 활력을 잃고 늙어간다.

호남 반도체 입지 선정의 기본 논리는 지방소멸을 막고 청년을 머무르게 하는 지역균형발전을 기한다는 것이다. 그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방법이 틀렸다.

◇정교한 생존전략 부재

정부가 호남에 구상 중인 800조 원 규모의 대형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는 시장의 질서와 산업 생태계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계획이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명분이 오히려 호남의 미래를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 호남에 필요한 것은 눈앞의 신기루가 아니라 정교한 생존전략이다.

당장 입지 조건부터 장벽이다. 호남은 전력과 물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반도체 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전력의 총량이 아니라 ‘단 1초도 끊기지 않는 안정적인 공급(firm capacity)’이다. 호남의 전력 자립도는 200%에 달하지만, 발전설비의 절반이 재생에너지라 설비 비중과 달리 실제 발전량 비중은 21.5%에 불과하다. 해가 지면 발전이 멈추는 태양광 재생에너지 특유의 간헐성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은 365일 24시간 내내 일정한 안정적 전력이 상시 공급돼야 하는데 호남의 전력 공급은 태양광 때문에 낮과 봄·가을에 몰렸다가 밤과 겨울에는 급감하는 구조를 가진다. 24시간 풀 가동이 생명인 반도체 공정에 이는 매우 취약한 에너지원이다.

게다가 지역의 유일한 기저 전원인 한빛원전마저 쇠퇴해가고 있다. 1호기는 이미 수명이 다해 멈춘 상태이고, 2호기 역시 곧 운영이 중지된다. 여기에 쌓여가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마저 2030년에는 포화상태가 되지만 영구처분장 건설 논의는 표류 중이다. 겉보기에는 태양광 때문에 한빛원전을 감발할 정도로 전력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여도, 반도체 공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상시전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첨단산업 시대의 입지

용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자원 총량은 얼추 있다고 해도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다. 최근에도 가뭄철에 인근 댐의 농업용수와 공업용수까지 무리하게 끌어다 쓰며 지역 내 갈등을 빚은 사례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미세한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초순수’를 하루에 천문학적인 양으로 소비하는 반도체 공정이 들어서는 것은 지역 수자원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 일반 물을 초순수로 정제하는 여과 과정 자체에도 수많은 펌프와 장비가 필요하며 이는 또다시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게 된다. 물 부족 리스크가 전력공급 부족 리스크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구조다.

또 다른 핵심 장벽은 인재의 수급 문제다. 반도체는 고도의 지식집약적 산업으로 석·박사급 연구인력과 숙련된 엔지니어의 확보가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일부 낙관론자들은 인프라를 깔고 반도체 앵커 기업만 유치하면 인재 생태계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 믿지만, 이는 과거 굴뚝 산업시대라면 통했을지 모를 공급주의적 발상이다.

지식집약적 첨단산업에서는 기업이 인재를 찾아 이동(Talent-led-location)하지, 인재가 공장을 찾아 움직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반도체 인재 생태계가 기흥·화성라인을 넘어 평택·용인이라는 수도권 남부 한계선에 묶여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클러스터 부지로 예정된 광주 군 공항을 이전하는 데만 최소 6~7년이 걸린다. 반도체 공장은 2030년 양산을 목표로 달리는데 핵심 인프라와 정주 여건은 한참 뒤에나 완공되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시차적 엇박자다.

◇호남의 진짜 강점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산업의 본질에 있다. 앨프리드 마셜은 기업 내부의 ‘규모의경제’와 기업이 한데 모여 시너지를 내는 ‘집적경제’를 제안했다. 반도체는 이 두 가지 원리가 모두 작동하는 산업이다.

규모의경제는 막대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을 대량생산을 통해 분산함으로써 생산을 할수록 평균단가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소규모 분산형 공장이 불리하다. 미국 정부로부터 엄청난 보조금을 받고도 수익성이 급감한 TSMC 애리조나 공장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집적경제는 숙련된 인재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그리고 지식이 한곳에 모일 때 생기는 비용절감 효과다. 집적의 규모가 두 배로 커지면 생산성이 2~8% 향상된다는 것은 도시경제학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반도체 생산의 대부분이 수도권과 충청에 몰려 있는 것도, 대만이 신주과학단지에 생태계를 압축해 제조업 부가가치의 절반 이상을 뽑아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럼 호남에 대안은 있는가. 호남의 진짜 강점은 재생에너지 생산능력이다. 글로벌 RE100 달성이 시급해 전국의 재생에너지를 찾아 헤매는 데이터센터와 AI 산업은 반도체보다 전력 수급 면에서 훨씬 유연하다.

대규모 전력과 초고압 변전소, 전용용수관 같은 인프라가 필요한 반도체와 달리 데이터센터는 ㎿ 단위로 모듈식 분산 유치가 가능해 전력망 부담이 훨씬 덜하다. 낮 동안의 태양광 과잉전력을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수소 수전해 시설과 연계해 흡수하는 완충지대 역할도 가능하다. 현대자동차가 새만금에 데이터센터와 태양광, 수전해 시설을 연계해 그린에너지 허브를 구축하는 시도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호남의 ‘반도체 신기루’

정부의 과도한 정치적 개입으로 비칠 수 있는 ‘반도체 신기루’ 대신, 호남의 진짜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데 집중하는 ‘정직하고 철저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무리한 정책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는 호남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지역균형발전을 이끌 진짜 승부수다.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에너지스쿨 주임교수, 전 여성가족부 장관

■ 용어설명

‘모듈식’이란 구성요소(모듈)를 조합해가며 완성하는 설계·생산·구조. ‘모듈식 유치’란 공장을 처음부터 크게 짓지 않고 독립된 기능으로 쪼개어 시장 수요에 맞게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것.

반도체‘초순수’는 웨이퍼와 생산 설비를 세정하는 고순도 공업용수를 말함. 반도체 공정에서 이온·유기물·미세입자를 극미량까지 제거해 불량을 ‘제로화’하고 수율을 높이는 핵심 자원.

■ 세줄 요약

정교한 생존전략 부재: 정부가 호남에 구상 중인 대형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는 시장의 질서와 산업 생태계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계획. 호남의 미래를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반도체 신기루’임.

첨단산업 시대의 입지: 호남 반도체 입지 선정은 전력·용수·인재 수급 등 문제를 일으켜. 첨단산업 시대의 입지 선정에는 기업 내부의 ‘규모의경제’와 기업이 한데 모여 시너지를 내는 ‘집적경제’ 원리가 모두 작동해야.

호남의 진짜 강점: 호남의 진짜 강점은 재생에너지 생산능력이며, 데이터센터나 AI 산업 등 유치가 효과적. 정부의 과도한 정치적 개입을 줄이고 호남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데 집중하는 ‘정직하고 철저한 현실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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