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경제부 차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허용에 대해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두고 “이례적”이고 “솔직했다”는 반응도 있지만, 이른바 “유체이탈화법”처럼 들린다는 비아냥도 적지 않다. 요동치는 코스피를 보고 있자면 고위 당국자가 정책 실패를 남의 후일담처럼,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적절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13일 20개 자산운용사 대표들과 연 간담회 자리에서도 그는 “구조적인 문제로 명확한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시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품이 코스피 전체를 흔들며 피해자가 속출하는데 수습이 아닌 방관자 같은 태도, 혹은 해법이 없다는 식의 답변에 시장의 불만은 임계치에 다다른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해 금감원 실무자들이 보인 반응을 보면 이 원장의 화법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유추할 수 있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의 위험성에 대해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고, 허가를 내주는 것에 대해 반대했지만 결국 이 상품 출시 허가가 났다. 한 금감원 실무자는 금감원장의 발언 후 이 상품에 대한 당국의 조치를 묻는 기자에게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메시지를 남길 정도였다. 금융위원회, 차관회의, 국무회의 회의록 등엔 해당 상품의 위험성과 우려도 제기됐다. 본인은 적극 반대했지만, 지방선거 승리가 더 급한 ‘윗선’의 결정으로 출시가 됐고, 문제가 발생하자 반대했던 본인이 도리어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매우 불쾌했으리라 짐작된다. 실무자의 신중한 경계가 윗선의 정치적 결정에 묵살된 사례를 자주 봐온 터라 새롭지도 않다. 실무자에게 ‘드러누워서라도 막아야 했다’고 비판해봐야 무엇하겠는가?

금감원 실무자의 말 못할 억울함이야 이해하지만, 그들이 업계를 대하는 엄혹함을 생각하면 그런 일말의 동정은 사라진다. 몇 년 전 홍콩 항셍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불완전판매에 대해 책임을 물을 때, 이들의 회초리는 매서웠다. 당시 상품의 위험성을 나이 든 고객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실적을 추구했던 금융회사들 탓에 수조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기에 엄청난 과징금 철퇴는 당연했다. 금융회사들의 잘못에는 서릿발처럼 굴면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선 봄바람 같냐는 지적에 금융 당국 입장에선 불완전판매와 정책 실패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떠밀려 시행한 정책의 실패에 과징금을 물릴 순 없겠지만 “내 책임이고 서둘러 개선책을 내놓겠다”는 당국자의 모습이 없다는 게 아쉽다.

희생양을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다.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도 남 일처럼 쉬쉬하며 대책을 미루는 금융 당국의 태도는 개선돼야 한다. 실무자에게 사안마다 직을 걸라는 요구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대목에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정책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뒤 수습하긴 어렵다. 금감원이든, 금융위원회든, 청와대든 국민은 남 일이 아닌 내 일처럼 책임지는 당국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박정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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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기자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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