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교육제도는 시대의 변화와 전장 환경에 따라 개혁할 수 있다. 합동성을 강화하고 드론과 위성, 인공지능(AI)이 결합된 미래전에 대비하는 교육체계를 마련하는 것 역시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다. 기존 제도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변화를 거부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관학교 통합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이미 정해진 정책’처럼 밀어붙이는 것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장교 양성체계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함께 이어질 장교단의 전문성과 지휘문화, 궁극적으로는 군의 전투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 안보의 백년대계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와 여당 책임자들의 발언은 통합의 군사적 타당성을 떠나,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다루는 절차와 태도가 과연 적절한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의견을 듣겠다면서 결론과 시간표는 이미 정했는가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개혁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공청회와 정책설명회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당연하고도 필요한 약속이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여당 소속 진성준 국회 국방위원장의 발언은 장관의 설명과 쉽게 조화되지 않는다. 진 위원장은 라디오 방송에서 당정이 올해 말까지 입법을 완료하고, 2028년 3월부터 통합사관학교의 학기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합사관학교의 소재지도 대전을 전제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입법 시한과 개교 일정, 소재지까지 제시된 상황에서 앞으로 열릴 공청회와 정책설명회에서는 무엇을 논의한다는 것인가. 국민과 군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통합 방식과 일정만이 아니라 통합 여부 자체도 재검토될 수 있는가?
의견 수렴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제시된 의견이 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통합 자체는 이미 확정해 놓고 세부 시행방안만 논의하려는 것이라면 정부는 그 사실을 국민에게 솔직히 밝혀야 한다. 반대로 통합 여부까지 열어 놓은 공론화라면 연내 입법과 2028년 개교가 확정된 일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결론을 바꿀 가능성이 없는 공청회는 진정한 의견 수렴이라기보다 이미 마련된 정책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과 군을 공론화의 들러리로 세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반대 의견을 ‘심정적 저항’으로 낮춰 보지 말라
진성준 위원장은 사관학교 통합에 대한 반대의 배경을 두고, 사관학교에 청춘과 명예가 응축돼 있고 그 공간이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심정적 저항이 아니겠느냐는 취지로 설명했다.
모교의 형태가 바뀌는 데 대한 아쉬움과 정서적 애착이 반대 여론에 일부 작용할 수는 있다. 사관학교 출신자들도 전통과 명예만을 앞세워 제도 개혁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군의 미래 전투력보다 모교의 존속을 앞세운다면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제기되는 반대와 우려를 모두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심리로 설명할 수도 없다. 통합사관학교가 기존 체제보다 우수한 장교를 양성할 수 있는지, 생도들을 한 캠퍼스에서 교육하는 것이 실제 합동작전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부터 입증해야 한다. 각 군 고유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보장하고, 임관 후 보수교육과 합동직위 근무, 연합·합동훈련과는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도 검토해야 한다.
육군3사관학교와 학생군사교육단(ROTC), 학사장교 등 다른 장교 양성과정과의 형평성도 따져야 한다. 통합 캠퍼스 조성에 필요한 비용과 기존 시설의 활용, 우수 교수진 확보 대책 역시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것은 사관학교 출신자들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과 군의 전투력에 관한 문제다.
이러한 안보적·교육적 우려를 충분히 검토하기 전에 반대의 배경을 ‘심정적 저항’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반대 의견을 경청하기보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정치권이 대신 규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이 정말 의견을 들으려 한다면 반대론자들의 마음을 추측하기보다 그들이 제기하는 논거에 먼저 답해야 한다.
“쪼개버려야지”라는 말이 드러낸 것
이번 논란에서 정책 못지않게 유감스러운 대목은 국방위원장의 언어다. 진 위원장은 사관학교 통합이 육사를 겨냥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만약에 보복 차원이라고 한다면 육사를 쪼개버려야지 육·해·공을 통합하냐”고 말했다.
문맥상 이 발언은 통합이 육사에 대한 보복이라면 육사만 없애거나 해체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가정법적 반박이다. 그 취지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발언의 취지를 이해하는 것과 그 표현이 적절했는지를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욱이 이 발언은 사적인 대화가 아니라 국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공개 방송에서 국회 국방위원장의 입을 통해 나왔다.
국방위원장은 국방정책과 관련 법안을 심의하고 정부의 국방정책을 견제·감독하는 국회 국방위원회의 책임자다. 그의 말은 개인적인 수사에 그치지 않고, 국회의 국방 분야 책임자가 군과 사관학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공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관학교는 국가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장교 교육체계와 역사, 전통이 담긴 국가의 교육기관이다. 생도들은 그곳에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는 신조를 되새기며 군인의 길을 준비한다. 그런 기관을 두고 국회 국방위원장이 공개 방송에서 “쪼개버려야지”라고 말한 것은, 발언의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사안과 직책의 무게에 어울리지 않는다.
국가의 정예장교 양성기관을 설명하면서 국회 국방위원장이 선택해야 할 언어가 과연 이것이었는가. 그 표현에 사관학교와 군을 대하는 정치권의 인식이 지나치게 가볍게 드러난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의 언어는 단순한 말투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국방을 책임 있게 다뤄야 할 사람의 언어에는 군과 장병에 대한 인식, 국가 안보를 대하는 태도가 담긴다. 공적인 자리에서 나온 가벼운 언어가 국가 안보를 대하는 가벼운 인식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관학교는 정치적 소유물이 아니다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한 각 군 사관학교는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도, 해당 학교 출신자들만의 소유물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여당이 미리 정한 일정에 맞춰 쉽게 해체하거나 급하게 재편할 수 있는 조직도 아니다.
일부 군인의 잘못된 행동과 사관학교 제도 전체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오랜 전통과 명예만을 앞세워 시대 변화에 따른 개혁 요구 자체를 거부해서도 안 된다.
사관학교는 어떠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성역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쉽게 합치고 쪼갤 수 있는 조직도 아니다. 사관학교의 주인은 특정 출신 집단도, 어느 한 정권도 아닌 국민이다. 따라서 통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기존 조직의 보존이나 정치적 성과가 아니라, 어느 제도가 국민의 부담을 줄이면서 더 강한 군과 더 유능한 장교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둬야 한다.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책임을 보일 때다
사관학교 제도는 필요하다면 바꿀 수 있고 시대의 요구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결론과 시간표를 먼저 제시한 뒤 국민의 의견을 듣는 형식만 갖춰서는 안 된다. 반대 의견을 정서적 저항으로 낮춰 보아서도 안 되며, 국가의 장교 양성기관을 ‘쪼개버릴’ 수 있는 대상으로 가볍게 말해서도 안 된다.
정부와 국회가 지금 보여줘야 할 것은 통합을 서두르는 속도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미래를 다루는 책임과 절제다. 정부와 여당은 연내 입법과 2028년 개교 일정이 공론화 결과와 관계없이 확정된 것인지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 통합 여부를 포함한 복수의 대안을 공개적으로 비교하고, 현역 실무 장교와 생도, 교수진과 교육 전문가, 다양한 장교 양성과정 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야 한다. 예상 비용과 교육 효과, 각 군의 전문성을 보장할 구체적인 방안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사관학교의 미래를 결정하기 전에, 국가 안보를 다루는 정치의 절차와 언어부터 돌아봐야 한다.
이기식 前 병무청장·해군작전사령관
정충신 선임기자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