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작법 모두 독학한 에릭 오
첫 소설집 ‘천사의 위스키’ 펴내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에릭 오(42·사진)에게 이 질문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로 이어진다. 유화를 그리다 독학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픽사에서 7년간 애니메이터로 일했으며,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첫 소설집 ‘천사의 위스키’(민음사)를 내며 소설가가 됐다. 최근 미국에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매체를 옮겨 다니는 이유에 대해 ‘언어’로 설명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선명해요. 그걸 훼손하지 않고 전달할 방법을 탐구하다 보니 애니메이션도, 그림도, 소설도 하게 된 거죠. 새 언어를 하나 더 배운 기분입니다.” 책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9편이 담겼다. 모든 사람이 등에 껍질을 지고 사는 세계(‘등껍질’), 난임 치료에 지쳐가는 부부(‘바늘의 끝’), 주인의 장례식장에서 곤경에 빠진 강아지(‘무주, 숲속의 생활’), 영화계에서 밀려난 50대 감독(‘천사의 위스키’)까지. 환상적 설정 위에서도 소설이라는 새로운 언어는 지금 여기의 불안과 상처를 파고든다.
애니메이터가 배우라면, 지금의 활동들은 연출가에 가깝다.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가 정해지면 애니메이터는 움직임과 성품을 넣어 완성하는, 영화로 치면 연기자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죠.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연출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 길로 픽사를 박차고 나와서 감독이 됐고, 연출을 거듭할수록 ‘나는 스토리텔러’라는 확신이 뾰족해졌다. 이야기의 원천인 글에 집중해보자는 마음이 소설로 이어졌다.
소설 작법 수업은 들은 적이 없다. 그림도 애니메이션도 독학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1년간 아홉 편을 썼다. 초기작은 첫 원고를 부수고 대여섯 번씩 고쳤고, 출간 계약도 없이 다섯 편을 먼저 완성했다. “이걸 못 깨면 내 다음 5년, 10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실함으로 썼어요.”
그가 소설로 붙잡으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혼란스럽죠. 그 무의미의 낭떠러지 끝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를 계속 묻고 싶어요. 인간은 하찮으면서도 그만큼 아름다우니까요.” 9월엔 프리즈 서울에 맞춰 한국을 찾고, 장편 애니메이션도 준비 중이다. 새롭게 생긴 소설이라는 무기도 계속해서 갈고 닦으려 한다. “소설가라는 호칭은 아직 벅차고 부끄럽지만, 시간만 허락한다면 계속 쓰고 싶습니다.”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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