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호르무즈發 ‘항행의 자유’ 논쟁
17세기 네덜란드 ‘자유해론’ 근거
1958년 제네바 공해협약 명문화
유엔, 영해내 ‘無害통항’만 허용
군사 훈련·어로 행위 등은 금지
호르무즈는 대체불가 ‘국제해협’
선박통항·항공기 비행까지 보장
글로벌교역량 80%가 해상운송
항행제한땐 특정국이 물류 독점
최근 중동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전투가 다시 격화하고 결국 해협이 재차 봉쇄되는 수순에 이르면서 전쟁 내내 핵심 논쟁거리였던 ‘항행의 자유’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항행의 자유 논란은 앞서 이란이 미·이스라엘군 공습에 대응해 해협을 봉쇄하고 해당 지역을 통행하는 민간 선박들에 ‘통행료’를 징수하겠다고 고집하며 처음 불거졌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협에 대해 특정 국가가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초 이 같은 이란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막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돌연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을 대상으로 선적 화물의 20%에 해당하는 통행료를 미국이 징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항행의 자유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동맹국 등의 우려에 하루 만에 통행료 징수 계획을 철회했으나, 이후로도 항행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1. ‘항행의 자유’란
항행의 자유는 ‘모든 나라의 배는 다른 나라 영해 밖 바다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고, 연안국은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개념이다. 뒤집어 말하면 어떤 연안국도 영해가 아닌 바다를 자신의 것이라고 선언해 다른 국가의 선박을 막을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영해 밖 해상의 선박은 게양하고 있는 국기에 해당하는 나라의 관할만 받게 되며, 연안국 등 다른 나라 군함이 함부로 승선·나포할 수 없다. 다만 해적, 노예 수송, 무국적선 등은 예외로 인정된다. 외국기를 게양했으나 실제로는 군함으로 의심되는 선박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를 받는 선박도 항행의 자유가 일부 제한된다. 또 항행의 자유가 적용되더라도 해양 오염 방지, 안전 항행, 충돌 예방에 관한 국제 규칙 준수 의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2. 국제법적 근거는
항행의 자유의 법적 기원은 17세기 네덜란드 법학자 휘호 흐로티위스의 ‘자유해론(Mare Liberum)’이다. 자유해론은 바다는 육지처럼 물리적으로 점유할 수 없고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기 때문에 특정 국가가 소유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출발했다. 교역이 만민법(모든 인류 사회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법·ius gentium)상 보장된 자연권이므로 어느 국가도 타국의 통항과 통상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해당 이론의 근거가 됐다. 이후 1958년 제네바 공해협약에서 항행의 자유가 처음 조약으로 명문화됐고, 현재는 1982년 채택·19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87조가 이를 확대·계승하고 있다. 동시에 항행의 자유는 UNCLOS 협약 비준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국가를 구속하는 관습국제법으로 인정된다.
3. 특정 국가 영해에도 항행의 자유가 적용되나
UNCLOS에 따라, 기선(Baseline)에서 12해리 이내인 영해에서 적용되는 것은 항행의 자유가 아니고 ‘무해(無害)통항권(Right of Innocent Passage)’이다. 무해한 통항만 허용되므로 무력 행사, 군사 훈련, 정보 수집 활동, 조사·측량 활동, 항공기 이·착함, 어로 행위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배를 멈출 수 없고 신속히 통항해야 한다. 잠수함의 경우 수면 위로 올라와 국기를 게양하고 통항해야 한다. 항공기의 상공 비행도 허용되지 않는다. 항행의 자유가 적용되는 곳은 영해를 넘어서부터 200해리까지인 ‘배타적경제수역(EEZ)’이다. EEZ에서는 타국이 항행과 상공 비행, 해저 전선 부설의 자유를 누린다. 연안국 권리는 어업·광물 등 자원에 국한되고, 통항 자체를 통제할 권한은 없다. EEZ마저 벗어나면 공해이므로 ‘공해의 자유’가 보장된다. 공해에서는 어느 국가도 주권을 주장할 수 없고, 모든 국가에 항행·상공 비행·과학 조사 등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다.
4. 호르무즈 해협은 왜 특별한가
호르무즈 해협은 해협 전체가 영해에 해당한다.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약 33㎞라 항로 전체가 이란과 오만 영해에 포함되는 것. 이에 무해통항권 적용 대상일 것 같지만, 호르무즈 해협 같은 ‘국제해협’의 경우 특정 연안국 영해에 속할지라도 무해통항권이 아닌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이 적용되는 게 특징이다. UNCLOS 제37∼44조에 따른 통과통항권은 선박의 통항과 항공기의 상공 비행까지 보장한다. 연안국은 이를 정지시킬 수 없다. EEZ에 적용되는 항행의 자유와 사실상 같은 수준의 통항권이 보장되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첨예한 이유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안 항로가 없는 ‘병목’이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의 경우 희망봉, 파나마 운하의 경우 마젤란 해협, 믈라카 해협의 경우 롬복·순다 해협이라는 대안 항로가 있지만 폐쇄해(enclosed sea)인 페르시아만의 출구는 호르무즈 해협이 유일하다. 유일한 우회로인 육지를 통해 원유 등을 옮길 수 있는 기반 시설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5. 이란은 무슨 근거로 호르무즈 통행료 부과 주장을 펴나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 자국 영해라는 점을 내세워 해협의 안전 확보와 통항 관리에 일정한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국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통항국 선박에 추가 비용이나 제재성 부담을 요구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압돌레자 라흐마니 파즐리 이란 주중 대사는 “호르무즈 해협이 영해의 일부인 국가로서 우리는 반드시 서비스 수수료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제해협에서는 통과통항권이 적용되기 때문에 해협을 지난다는 이유만으로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은 국제법 질서와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란의 통행료 주장은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도 국제 항행 해협에 통행료를 부과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6. 항행의 자유는 군함에도 적용되나
UNCLOS 제17조는 ‘모든 선박(all ships)이 무해통항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축함, 항공모함 등도 타국 영해 내 무해통항권이 있는 셈이다. 따라서 EEZ에서 항행의 자유도 당연히 갖는다. 다만 영해 무해통항 시 연안국에 미리 알리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미국, 영국 등은 해당 조항을 근거로 통고 의무가 없다고 본다. 반면 중국은 국내법(중화인민공화국 영해 및 접속수역법)을 통해 군함의 무해통항에 대해 사전 허가를 받게 한다. 한국은 영해 및 접속수역법에 따라 사전 통고를 요구하지만, 허가제는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 같은 국제 해협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통과통항권 규정에 따라 잠수함 잠항은 허용되지만, 항공모함의 항공기 이·착함에 대해선 분명한 규정이 없다. ‘통상적 방식(normal mode)에 따른 계속적이고 신속한 통과를 위한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가 보장되는데, 미국은 항공기 이·착함이 항공모함의 통상적 통항 방식에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이란은 이에 반대한다.
7. 전쟁 중에도 항행의 자유는 유지되나
전시의 경우 교전국들 상호 간에는 해전법(law of naval warfare)이 특별법(lex specialis)으로 우선 적용된다. 무력분쟁 상황에서 바다 위 군사행동을 규율하는 국제법인 해전법은 교전국의 봉쇄·임검·수색·포획·기뢰 부설·교전 수역 설정 등을 허용한다. 반면 병원선·조난자 공격이나 항복한 선박 공격, 무해화 장치 없는 기뢰 부설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다만 해전법은 교전국들에만 적용된다. 중립국들의 경우 전시에도 선박들의 국제해협 통과통행이 강제로 정지돼선 안 된다는 UNCLOS 제38조와 제44조의 영향 아래 있다. 즉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교전국인 이란·미국뿐 아니라 중동과 전 세계의 중립국들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전시니까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주장보다 ‘전시에도 중립국 통항은 막을 수 없다’는 국제법 해석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8. 통행료 부과하는 예외 지역은
통행료 부과가 예외적으로 가능한 곳은 대표적으로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 그리고 파나마 운하가 있다. 해당 지역은 별도의 제도와 관행이 확립된 지역으로 국가가 통항 관리와 수수료 체계를 운영하는 곳이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은 1936년 몽트뢰 협약(Montreux Convention)에 근거해 튀르키예가 통항 관리 및 서비스 요금 부과 권한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즉 조약 체제 안에서 연안국이 관리 권한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파나마 운하는 자연 해협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건설된 운하로 1977년 토리호스-카터 조약에 따라 통행료를 징수해 왔다. 이후 1999년 관리권이 미국에서 파나마로 이양된 이후 파나마운하청(ACP)이 시설 소유·운영자로서 통행료를 징수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수에즈 운하도 마찬가지다.
9. 항행의 자유 논란이 있는 다른 지역은
가장 대표적인 곳은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이다. 남중국해는 미·중 간 영유권 충돌이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중국은 영유권과 군사적 통제 논리를 앞세워 인공섬 등을 만들고 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국제법에 따라 모든 나라는 공해를 항행할 자유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주기적으로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을 실시하고 있다. 대만 해협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를 자국의 핵심 안보 해역으로 보고 통제를 강화하려는 반면, 미국과 일부 우방국은 국제 항로로서의 자유로운 통항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이 해역은 단순한 해상 교통로가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방위 전략 개편까지 대만 해협 긴장과 엮이며 대만 해협의 긴장은 더 고조되고 있다.
10. 항행의 자유 사라질 경우 여파는
항행의 자유가 중요한 것은 세계 교역 물동량의 80% 이상, 국제 원유 거래의 96%가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 통항의 안정성이 무너질 경우 글로벌 경제 전반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해로 불안정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 해상 원유의 25%, LNG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수송로에 차질이 생기면 운임과 보험료가 급등한다. 실제로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석유 제품 가격이 반등하고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두 배 가까이 오르는 등 물류비 부담이 가중된 바 있다. 항행의 자유가 위축될 경우 특정 연안국이 에너지 등 핵심 교역품의 흐름을 독점 통제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강대국은 해군력 동원이나 우회 인프라 구축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반면, 해상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과 도서국은 마땅한 대비책이 없어 피해가 집중되는 ‘불평등’ 문제도 제기된다.
박상훈 기자, 김선영 기자, 김성훈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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