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덕현의 덕업일지 - 나홍진 감독 영화 ‘호프’
어느 평범해 보이는 한국의 시골 마을. 경찰복을 입은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과 저마다 엽총 하나씩을 든 성기(조인성)를 비롯한 그 시골의 사냥꾼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길 위에 널브러진 황소 한 마리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그 황소를 자세히 살펴보니 몸에 난 상처 자국이 예사롭지 않다. 한 사냥꾼이 시베리아에서 북한을 거쳐 내려온 호랑이가 한 짓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사실 범석을 놀리려고 하는 말이다. 그 괴이한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범석은 마을로, 성기와 사냥꾼들은 산으로 향하고 156분간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액션이 펼쳐진다.
나홍진 감독의 새 영화 ‘호프’는 이미 방영 전부터 세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은 불발됐지만 좋은 반응들이 터졌고, 국내에서도 나 감독 특유의 놀라운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돌았다. 그런 기대는 마치 영화 속 ‘호랑이 이야기’처럼 그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범석과 성기가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추적극을 벌이듯, 관객들은 첫날부터 극장을 찾았다. 사전예매 티켓만 60만 장을 돌파한 이유다.
그 기대 위에서 ‘호프’는 한마디로 말해 거의 모든 도파민 액션들을 하나로 끌어모아 끝까지 달려나가는 영화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초토화된 마을에서 범석은 벌벌 떨면서도 본분인 경찰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곳곳을 뛰어다니고, 성기는 산에서 괴생명체의 흔적들을 추적한다. 초토화된 마을에서 주민들이 어디서 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총들로 무장하고 트럭을 몰고 다니는 장면은 어딘가 민주화 운동 시절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차가 날아다니고 집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린 광경들은 이 영화의 장르가 호랑이 잡는 사냥꾼들의 이야기나, 갑자기 터진 난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가늠하게 한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서스펜스 위에서 영화는 엄청난 속도감을 제공한다. 범석은 마을에서 뛰고 또 뛰어다니다가, 성애(정호연)와 함께 마을에서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고, 성기는 사냥꾼들처럼 산속으로 들어가다 충격적인 사건의 실체를 발견하고 자신들이 오히려 사냥감이 되어버린 채 사투를 벌이게 된다. 총격 신이 이어지는데, 자동차와 말을 타고 달리며 총을 쏘는 장면들이 관객들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롤러코스터 위에 앉아 있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이미 ‘곡성’ 같은 오컬트 장르에서조차 서서히 끌어올린 서스펜스를 하나로 모아 엄청난 에너지의 액션으로 풀어냈던 바 있는 나 감독이다. ‘호프’ 역시 그 액션의 에너지가 하나로 뭉쳐지는 순간들이 펼쳐지는데, 거기에는 나 감독 특유의 유머도 담겨 있다. 때론 픽픽 터지는 웃음과 더불어 에너지가 느껴지는 액션 속에서 관객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굿판에 넋을 빼앗긴 사람처럼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놀라운 건 이 다양한 장르적 결을 가진 작품에 토속적인 색채까지 얹어져 독특한 한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시골 마을의 정경과 사람들은 너무나 한국적이지만, 범석과 성기는 어딘가 서구 영화의 한 장면에서 봤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범석이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 보안관 같은 느낌을 준다면, 성기와 사냥꾼들은 마치 미시시피강을 따라 추격전을 벌이는 현상금 추적자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은 어딘가 현대화된 서부극 같은 착시를 일으키고, 끝내 정체를 드러낸 괴생명체는 단숨에 이런 장르적 착시들을 깨고 또 다른 장르로 뛰어넘게 만든다.
이건 어딘지 한국사회를 연상시킨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엄청난 속도와 도파민으로 끝없이 변화해가는 한국사회. 다양한 것들이 들어와 하나로 결합되어 독특한 형태의 문화들을 만들어내고, 도파민이 터지는 새로운 것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먼저 올라타 보는 한국 특유의 문화들이 괴상하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 영화를 빼닮았다. 궁금하다면 찾아볼 수밖에 없다. 지금의 K콘텐츠에 빠져들다 한국까지 찾는 세계인들처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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