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장윤기 사건으로 본 ‘친족특례제도’
전통적 가족관·윤리적 의무 고려
친족 간 ‘자연스러운 보호’ 인정
범죄자 은닉 ‘민법 8촌이내’ 혈족
국가 형벌권 제한 형사처벌 면제
장윤기 부친, 현직경찰 신분 악용
증거없애도 ‘혈육’ 이유 처벌제외
美선 허위 진술땐 사법방해 처벌
日은 면책범위 법원 재량에 맡겨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의 부친이 현직 경찰관 신분을 이용해 아들의 범행 증거를 인멸하고도 처벌을 피하게 돼 논란이 크다. 현행 형법은 가족의 범죄를 숨기거나 도주를 돕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친족특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특히 현직 경찰관이 적극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작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이어져 온 친족특례제도를 손볼 때가 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1. 친족특례제도란 무엇인가
형법 제151조 제2항은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도주를 돕거나 숨겨준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155조 제4항 역시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을 위해 증거를 인멸하거나 은닉·위조·변조한 경우에도 처벌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친족은 민법상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다. 즉 친족특례제도는 가족이나 친족을 보호하기 위해 범인의 도피를 돕거나 증거를 없애는 행위를 했더라도, 이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제 또는 감경하는 제도다. 한국은 죄를 면제하고 있다.
2. 언제 왜 도입됐나
친족특례제도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되면서 범죄은닉죄와 증거인멸죄에 포함됐다. 가족 간의 인적 유대와 윤리적 의무를 고려해 국가 형벌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취지다. 범죄를 저지른 가족을 보호하려는 행위를 일반 범죄와 동일하게 처벌할 경우 가족 관계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전통적 가족주의에 기반했다. 가족 간 상호 보호 의무가 강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친족이 범인을 숨겨주거나 증거를 없애는 행위를 국가 형벌권으로 강제 처벌하기보다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보호 행위, 즉 천륜으로 본 것이다.
3. 친족상도례와는 어떻게 다른가
친족특례제도와 친족상도례는 모두 ‘친족 관계’를 이유로 형사책임을 제한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적용 대상 등은 다르다. 친족상도례는 재산범죄에 적용되는데, 친족 간 절도·사기·횡령 등 특정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처벌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이는 방송인 박수홍 씨의 친형 부부가 박 씨의 출연료 약 6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박 씨의 부친은 횡령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경우 현행 형법상 처벌이 어려운 구조라는 점에서 제도 악용 논란이 제기됐다. 반면 친족특례제도는 범인도피·증거인멸 등 사법방해 범죄에 적용되는 제도다.
4. ‘장윤기 사건’에서 왜 문제가 됐나
장윤기의 부친은 현직 경찰관이다. 경찰관이라는 신분과 경험을 자식의 범죄를 숨기는 데 악용했다. 장윤기의 부친은 살인 사건 발생 사흘 후인 지난 5월 8일 장윤기 거주지에 있던 물건을 모두 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가슴·목 부위가 집중적으로 훼손된 성인용품 리얼돌도 해체해 폐기했다. 아들이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사용한 구형 일반 휴대전화 여러 대도 소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의 혐의를 단순 살인으로 바꾸려 한 행위라는 의심을 받는다. 검찰은 부친이 사건의 주요 증거물을 인멸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5. 현직 경찰 등 공직자가 친족특례를 악용할 때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친족특례는 공직자가 직무상 권한과 정보를 이용해 가족의 범죄를 감추는 방패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특히 수사기관 소속 공무원은 친족의 증거인멸이나 범인 도피 행위를 보다 치밀하게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2013년 20대 남성이 부모와 형을 살해한 전주 일가족 살인사건이 있다. 당시 경찰관이던 외삼촌은 “조카가 자살할까 걱정됐다”며 범행 차량 세차를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에 관여했지만, 그 역시 친족특례로 면죄부를 받았다.
공직자가 친족특례를 통해 죄를 면하게 되면서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윤기 부친의 범죄가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났듯이 이를 파헤치기도 쉽지 않다. 공직자에게는 친족특례가 사실상 면책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의 평등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6. 해외 주요국에서는 친족의 증거인멸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
해외 주요국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친족의 증거인멸에 대한 면책 범위를 제한하는 경향이 강하다. 법원 재량에 맡기거나 공무원을 특례 대상에서 제외하는 나라도 있고, 아예 친족특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본은 형법 제105조에서 친족이 범인을 숨기거나 증거를 인멸한 경우 ‘형을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면책 여부는 법원이 사건의 성격과 죄질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따라서 살인이나 성범죄 등 중대 사건에서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한 경우에는 처벌할 수도 있다. 독일은 친족에 대한 면책 규정을 두면서도 경찰, 검사 등 수사나 재판에 관여하는 공무원은 특례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들이 친족의 범죄를 은폐하거나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는 일반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한다.
미국은 이보다 더 엄격하다. 연방법에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인 은닉이나 증거인멸을 면책해 주는 규정이 없다. 친족이라도 범인을 숨겨주거나 증거를 없애고 수사기관에 허위 진술을 하면 사법방해 등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7. 친족특례제도 도입 당시와 비교했을 때, 현재 국민들의 법감정과 ‘가족’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한국복지패널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질문에 2007년 첫 조사 당시에는 52.6%가 동의했고, 반대는 24.3%에 불과했다. 그 격차가 점점 줄면서 지난해 조사에서는 부모를 모실 책임이 전적으로 자식에게 있다는 견해에 동의한 응답자 비율은 20.6%에 그친 반면, 반대한다는 응답률은 47.6%였다. 농경 사회에 기반한 가족상이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사다. 친족특례제도에서 규정한 친족의 범위가 8촌 이내의 혈족이라는 것도 현시점에서는 범위가 너무 넓다. 이는 민법의 혈족 범위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8. 헌법재판소의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결정이 이번 ‘증거인멸 친족특례’ 개정 논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헌법재판소는 2024년 6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형법 제328조 1항, 즉 친족 간 재산범죄를 일률적으로 형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가족 간 재산범죄 피해자가 적절한 형벌권 행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의 핵심 논리는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책임을 일률적으로 면제하는 것은 피해자 보호에 반한다’는 것이다. 재산범죄뿐 아니라 증거인멸·범인은닉 같은 다른 친족특례 조항에도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9. 국회 등 정치권에서 발의되거나 논의 중인 형법 개정안은
국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족 간 특례 규정을 폐지하는 형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달 2일 관련 개정안을 가장 먼저 제출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형법 제151·155조의 친족특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으로 법안을 발의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과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친족특례 조항은 남겨두되, 현직 검사·사법경찰이거나 형사사법 업무에 종사했던 사람인 경우 이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친족 간 증거 인멸을 재량적 규정으로 전환하는 내용으로, 같은 당 권향엽 의원은 친족특례에 형량 감경의 근거를 신설해 처벌 가능성을 열어두는 내용으로 법안을 발의했다.
10.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어떤 입장인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친족특례제도가 논란이 되자 “지난해 12월 유사한 취지로 가족 간 절도, 사기 등 재산범죄의 처벌을 면제해주던 ‘친족상도례’ 규정도 시대적 흐름에 맞춰 폐지한 만큼, 이 특례 역시 개선돼야 할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중대범죄에 대한 증거인멸까지 무조건 면책하는 현행 방식은 시대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개선·재검토에 방점을 찍었다. 특례 조항을 남겨두되 가족 관계나 범행 등을 고려해 처벌 여부를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제도를 완전히 폐지해 버리면 북한처럼 가족끼리 감시하는 통제사회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일부 나온다.
최영서 기자, 노민수 기자, 이현욱 기자, 김지현 기자, 성윤정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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