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전 주유엔 대사

 

세계적 관심 영화 ‘오디세이’

국가 지도층 어리석음 일깨워

비생산적 방안에 집단적 관여

 

국익·전략·전술 우선순위 중요

뒤집히면 결국엔 국익 치명상

북한도 반도체도 냉철히 봐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내일 한국에 상륙한다.

2800년 전 쓴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중 잘 알려진 대목이 트로이전쟁의 막바지에 그리스군의 오디세우스가 짜낸 목마 계략이다. 여기서, 아테나 신에게 바친다는 글이 새겨진 성문 밖 목마를 보고 트로이 원로들 간에 격렬한 논란을 벌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를 성안의 아테나 신전에 바쳐서 긴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자는 찬성파와, 원래 그리스인들은 믿을 바가 못 되며 여기엔 필경 속임수가 있을 것이니 성 밖에서 태워 없애든지 부숴서 안을 들여다보든지 하자는 신중파 간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신들의 개입과 그리스군의 스파이 계략에 빠진 왕의 결정으로 이를 성안으로 끌어들였고, 결국 한밤중에 목마 속에서 빠져나온 병사들이 성문을 열어 트로이는 무참히 함락됐다.

미국 역사학자 바버라 터크먼은 저서 ‘어리석음의 행진’(The March of Folly, 1984)에서 국민의 이익을 위해야 할 정부가 그에 반하는 실정(misgovernment)을 범하는 이유 중 하나로 집권층의 어리석음을 들었고(나머지 이유로는 폭정, 과도한 야망, 무능과 퇴폐를 들었다), 그 일례로 성안에 목마를 들여 멸망한 트로이를 지적했다. 그리고 실정의 기준으로서, 그 결정이 후대가 아닌 당대에도 비생산적이라는 인식이 있고, 더 나은 정책 대안이 있으며, 개인뿐만이 아닌 집권층이 집단으로 관여된다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란과의 전쟁에 빠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조목조목 질타하는 듯하다. 하루가 멀게 전쟁 승리를 외치고, 수도 없이 정전 합의 달성을 자랑하더니 이젠 좌절감 속에 공습과 무차별 초토화를 협박하는 모습에서, 핵미사일 개발 불가나 정권교체라는 당초 목표 달성은커녕 결과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봉쇄되고 이란의 핵 개발 의지는 꺾지 못한 채 전쟁 장기화에 속수무책인 미국의 옹색한 처지를 본다.

그로 인한 유가 폭등, 공급망 교란, 동맹 불안 등 돈으로 환산이 어려운 피해는 세계가 힘들게 떠안고 있다. 정책 결정 과정이 전도됐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논지의 하나다. 미국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국익-정책-전략-전술의 순으로 정의돼야 할 정책 결정 우선순위가 거꾸로 돼 공습이라는 하위의 전술이 충동적으로 선행됨으로써, 그 결과 상위 가치인 국익이 흔들리는 현상을 지적했다.

눈을 국내로 돌려보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선정 문제가 국민의 관심과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미래 핵심 산업으로서 기본적으로 민간사업 성격인 만큼 우선 기업이 전력-물-인재의 산업 생태계와 교통과 정주 등 산업적 합리성 위에서 입지를 선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정부가 효과적 지원을 위한 행정력을 최대한 동원하는 역할을 하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련의 상황은 마치 앞서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도된 정책 결정 과정을 보는 듯하다. 기업이 먼저 호남을 입지로 선택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번 선정은 정부가 호남 홀대론, 국토 균형 발전 등 정치적 차원에서 결정을 내리고, 산업적 기준을 거기에 짜 맞춰 합리화한 뒤,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4700조 원 규모의 3대 메가프로젝트는 ‘대체 불가한 핵심국가’라는 비전 실현을 목표로 한다는데, 입지 선정을 터크먼이 제시한 실정의 세 가지 기준에 대입해 보면, 문제가 많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들끓고, 대안이 있는데도, 집권층이 집단으로 강행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성공해도 망하고, 실패해도 망할 것이라는 어느 교수의 냉소적 역설이 아프게 다가온다.

나라마다 트로이 목마가 있다. 트럼프에겐 이란, 블라디미르 푸틴에겐 우크라이나, 시진핑에겐 대만이 있다. 우리에겐 북한이라는 목마가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다. 또 하나, 반도체 클러스터는 방금 도착했다. 자칫 어리석음으로(또는 과도한 야망과 섞여서) 이것들을 섣불리 성안에 들인다면, 결정한 지도자와 집단의 정책 오판을 넘어 나라의 진운(進運)에 치명상을 안겼다는 낙인이 될 것이다.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면 품어야 할 화두 아니겠는가.

김숙 전 주유엔 대사
김숙 전 주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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