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소설집 ‘인생의 단맛을…’ 출간한 김영민 교수
본보 실린 작품 ‘변기…’ 등 엮어
칼럼같은 위트있는 문체 돋보여
“사상연구는 ‘생각’ 파악하는 일
자연스럽게 문학 등 관심 갖게돼
항상 ‘학생과 상호작용’ 중요시
‘독자는 학생이다’ 여기고 집필”
“세상은 사실 비장한 비극이나 권선징악보다는 블랙코미디에 가깝지 않나요.”
‘칼럼계 아이돌’로 불려 온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첫 소설집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를 냈다. 2018년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명절 밥상의 질문법을 바꿔 놓은 이래, 김 교수는 죽음과 공부와 허무를 주제로 한 산문집을 잇달아 펴내며 대중적 독자를 넓혀 왔다. 이번에는 소설이다. 낮 기온이 37.2도까지 오른 지난 3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정치사상사 학자가 어떻게 허구의 세계로 나아갔는지 묻고 들었다.
“사상 연구는 생각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관심사가 철학, 문학, 예술로 자연스럽게 넓어졌습니다.” 정치사상 연구의 절반이 과거를 이해하고 해설하는 일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학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 방식이 논문에서 칼럼, 에세이, 대중 철학서, 소설로 넓어졌다는 설명이다.
소설의 아이디어가 언제 처음 떠올랐는지는 기억하기 어렵다고 했다. 떠오르는 대로 적어 두었다가 계기가 생기면 썼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2023년 문화일보 ‘소설, 한국을 말하다’ 시리즈에 실린 ‘변기가 질주하오’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발표한 작품이 함께 묶였다.
정치학자의 글 치고 언어유희가 두드러진다. 너무 기교와 장난에 치우친 것 아니냐고 묻자 “굉장히 진지한 관심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정색했다. 소설을 쓰게 된 더 깊은 동기를 그는 ‘재현(representation)의 위기’라는 말로 설명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여러 위기를 말하지만, 근본에는 재현의 위기가 있다고 봅니다. 소설이나 예술이 현실을 그려 내는 것도 재현이고, 국민의 뜻을 대신 담아내는 정치적 대표도 재현입니다.” 무엇이 현실인지 인식하고 묘사하는 단계에서 이미 실패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는데, 분열의 원인 가운데 현상을 왜곡해서 보는 몫이 큽니다. 현실을 풍요롭게 포착하고 재현하는 일이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수록작에는 어디선가 봤을 법한, 전해 들었을 법한 인물이 극적이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작가 자신의 그림자도 비친다. ‘죽창 대신 죽순을 드는 내향인’(‘내향인 매니페스토’), ‘쁘띠 뾰르주아지라고 장길산을 놀린 화자’(‘사람을 찾습니다’), ‘인문학을 하기 위해 유학을 가서 가산을 탕진한 뒤 학계에서 ‘무엇인가’ 공격을 난사한 동어’(‘동어 스님전’) 등이 작가의 페르소나인지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면서도 내향성만큼은 분명히 인정했다. “내향인에 대한 공감이 큰 편”이라며 예컨대 “내향인이 하는 시국선언은 외향인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가 교수라는 직업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학생과의 상호작용이다. “‘공부란 무엇인가’를 쓸 때도 그랬고, 소설을 쓸 때도 가상 독자를 학생으로 놓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남성 교수라는 직함이 주는 딱딱한 이미지를 뒤집는 재기 넘치는 문장도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정치사상사를 공부하던 1998년 영화 평론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력이 있는 그는 정치 평론뿐 아니라 예술 평론도 한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홈페이지에 있는 프로필 마지막 줄에는 “예술비평에도 종사한다”고 소개돼 있다.
창작과 비평이라는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도 내향인인 그가 정면 사진만은 끝내 피하는 것은 자신만의 ‘중도’를 찾기 위해서다. “믿기 어렵게도 CF 출연 요청도 있었지만 고사했습니다.” 일상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택시 호출 앱에 이름과 행선지가 뜨자 기사가 알아봐 깜짝 놀란 적도 있다고 했다. 다만 내향인다운 자기표현은 장편소설이든 사진전이든 여러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박세영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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