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강군 건설’이나 ‘싸워서 이기는 군대’ 등은 어느 정부에서나 들어오던 귀에 익은 구호들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이 구호들이 생뚱맞게 들린 적은 없다. 국군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북·중·러 북방삼각의 군사적 결속, 북한의 핵 증강과 재래군사력 현대화, 유엔의 무력화, 세계 핵질서의 붕괴, 지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 등으로 나라 밖의 안보 환경은 살얼음판이며, 대만해협과 한반도는 여전히 차기 전장(戰場)이 될 후보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우리 국방은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만연한 국방 포퓰리즘, 희미해진 국민의 안보의식, 흔들리는 한미동맹, 전쟁억제 장치인 전시 작전통제권 체제의 해체 움직임, 비전문가 정치권에 의한 군 흔들기 등이 국방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주적(主敵) 개념 증발, 군의 행정조직화, 정치군인 양산, 과도한 인건비와 국방예산의 불건전성, 만성화한 중간간부 부족, 군기 이완 등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총기 아닌 삼단봉으로 위병소 근무, 전방 초소의 기관총 미장전, 아군 및 미군 정찰기 오인 요격 위기, 해병 간부의 무단 총기 반출 등은 ‘강군 건설’ 구호에 가려 있던 부끄러운 속살이다.
그런데 정부는 육·해·공 3군 사관학교를 통폐합해 대전 자운대(紫雲臺)로 옮기고 태릉의 화랑대를 해체하는 계획을 강행한다. 국방부는 사관학교를 합치면 합동성을 강화해 다영역 미래전에 대비하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으며, 시설·인력·교과과정 등의 중복을 피하고 경제성과 효율성도 높이겠다고 설파한다. 하지만 매우 혼란스러운 주장이다.
예를 들어, 전장의 다영역화에 대비하기 위해 합동성 강화가 시급하므로 사관학교를 통폐합한다는 주장은, 바른 진단을 내려놓고 엉뚱한 약을 처방하는 격이다. 오케스트라는 여러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한 악기를 확실히 잘 다루는 음악가들로 구성되며,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를 최상으로 조합하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다. 결국, 합동성이란 ‘2개 이상 군종의 전문성을 통합해 승리를 위한 승수효과를 최대화하는 역량’이다. 그래서 미국은 ‘골드워터-니컬러스법’(1986)과 후속 ‘스켈턴 보고서’를 통해 사관학교에서 각 군의 전문성을 함양한 후 영관급 이후 합동성 훈련을 시작한다. 사관학교 통합은 하향 평준화를 초래해 군별 전문성을 희석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합동성 강화를 위해 사관학교를 통폐합한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관학교 이전이 경제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이나, 입학 생도들의 자질을 높여야 한다면서 육사를 지방으로 보낸다는 말도 난해하다. 기존 시설들이 낭비되고 군 교육기관들이 연쇄 이전해야 하는데, 큰돈을 쓰면서 푼돈을 아끼겠다는 말로 들린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 전력을 상실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화랑대를 없애는 것은 군맥(軍脈)을 끊고 군의 영성을 흔드는 일이며, 사관학교 통폐합은 80여 년간 축적된 각 군 사관학교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관학교 통폐합 구상을 꺼내게 된 속내가 뭔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런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보다는 강군 건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었인지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