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국교위 10월 개편 로드맵 발표
정권 바뀌면 뒤집힌 교육정책
내년 중1부터 서술·논술 시험
대입 내신 선다형은 한국 유일
AI시대 문제해결형 인재상을
대학 자율 선발권서 출발해야
5지선다 답 맞히기 교육을 끝낼 수 있을 까. 10년 단위 중장기 교육정책을 세우는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가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치를 203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서술·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대입제도 개편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 초교 6학년생은 내년 중학교 진학과 함께 서술·논술형 위주 시험을 6년간 치른 뒤 새로운 수능을 보게 한다는 단계적 로드맵 구상이다. 국교위는 10월에 ‘2028∼2037년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방향은 옳다. 선다형 시험(multiple-choice)은 1914년 미국에서 신병 지능검사 등 집단시험을 신속히 치르기 위해 개발돼 1930년대 자동 채점기 발명으로 채점 속도가 빨라지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20세기 산업화 시대 방식인 것이다. 우리는 1961년 학사 자격고사와 대학입학시험을 국가 차원에서 사지선다형으로 실시하면서 도입된 뒤 세부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큰 틀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한국처럼 대입과 내신을 모두 객관식 중심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드물다. 미국·일본·중국도 대입시험에 선다형이 있지만, 학교 성적은 객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평가 방식을 쓴다. 평가 시스템은 결국 사고의 과정과 방식을 결정한다. 하나의 정답만 인정하는 객관식 질문으론 창의적 사고를 기를 수 없다.
흥미롭게도, 국교위의 서술·논술형 평가 검토 계획이 언론에 보도된 3일, 오픈AI가 차세대 모델 ‘아스트라(Astra)’로 인간이 10년 이상 풀지 못한 수학·컴퓨터과학 난제 10개를 해결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아직 학계의 공식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신중론도 있지만, AI가 보조 도구를 넘어 독자적 연구 성과를 내는 ‘AI 연구원’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섭게 진화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정답을 외우고 빠르게 찾는 사고가 얼마나 뒤떨어지고 위험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해진 답을 찾는 능력에서 AI가 인간을 앞선다면 인간에게 남겨진 질문은 명확하다. 진정한 인간의 능력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게다가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불과 4년 만에 사람들이 AI에 판단을 위임하면서 생각하는 능력은 물론 관계 맺기까지 전인적 능력이 잠식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 AI가 내놓은 해답 중 진위를 가려내 책임지고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바로 교육이 맡아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방향이 옳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만 해도 1995년 김영삼 정부가 고교 내신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교육개혁을 시도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제자리다. 뿌리 깊은 학벌·경쟁 사회에서 변별력에 대한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은 채 정책이 정치적 타이밍에 서둘러 발표되고, 부작용이 불거지면 다음 정권이 뒤집는 일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변별력 문제의 경우, 절대평가는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모두 같은 등급이 되기에 대학은 별도 전형요소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학부모는 불안해지고 그 틈에 사교육 시장이 치고 들어온다. 교육정책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 자본은 제로를 지나 마이너스 인 상태다. 악순환이다.
이번에 국교위의 서술·논술형 수능 도입 논의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도 “수십만 명이 치르는 시험을 누가 어떻게 공정하게 채점하느냐”였다. ‘AI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고 하는데 AI 시대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평가 체제를 바꾸면서 채점을 AI에 맡기겠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단 정부는 대학과 수험생 전체를 관장하겠다는 발상을 포기해야 한다. 이 역시 20세기 모델이다. AI 시대, 지식과 기술이 격변하는 시대에 어떤 지식이 중요하고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를 정부가 일괄적으로 정해선 안 되고, 정할 수도 없다. 대학 자율성이 훼손되면 연구도 교육도 위축된다. 대학에 학생 선발권과 교육과정 설계 자율성을 돌려주고 투명성·공정성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이를 시작으로 단단한 재설계가 마련될 때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 평가 방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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