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일기자의 여행

때묻지 않은 ‘파워 스폿’ 가득… 경북 영양

 

동천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곳

선바위·자금병 마주보는 ‘석문’

안팎에 다른 세상 있다고 여겨

 

조선 선비 정영방 조성 ‘서석지’

연꽃 가득 연못에 이상향 그려

담장 바깥도 산수화 같은 풍경

 

벽돌 모양 돌 깎아 쌓은 모전탑

현존 13개중 국보 1·보물 1 보유

소박하지만 단단한 미감 돋보여

 

척금대 등 협곡벼랑 풍경 줄줄이

31번 국도 드라이브 코스 일품

박하향 품은 자작나무숲도 추천

경북 영양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남이포의 전경. 동천과 반변천이 Y자로 합류하는 자리에 자금병이라 부르는 조각 케이크 모양의 삼각형 절벽이 있고 그 아래 정자 남이정이 있다.
경북 영양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남이포의 전경. 동천과 반변천이 Y자로 합류하는 자리에 자금병이라 부르는 조각 케이크 모양의 삼각형 절벽이 있고 그 아래 정자 남이정이 있다.

영양=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영양의 파워 스폿, 선바위

여행지 중에는 이른바 ‘스피리추얼 스폿(spiritual spot)’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여행자가 자연의 힘을, 그 영적이고 신비한 기운을 느낀다는 자리다. 그래서 ‘파워 스폿’이라고도 한다. 유독 일본인들이 이런 곳을 좋아하는데, 한때 유행한 일본의 TV 토크쇼가 개념을 퍼뜨린 영향이 크다.

과학적 근거? 없다. 그래도 크게 시비 걸 일은 아니다. 삶을 바꿔 준다거나 없던 능력을 준다는 혹세무민의 자리가 아니라, 과중한 업무와 사람에 치인 일상의 피로를 잠시 부려 놓는 공간쯤으로 여기면 그만이다. 거기까지 과학을 들이댈 필요는 없겠다.

파워 스폿 이야기로 영양 여행을 시작하는 건, 이 고장의 선바위와 남이포, 그리고 서석지에 깃든 기운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비단 이 세 곳만이 아니다. ‘오지 중의 오지’로 꼽는 영양은 어디든 아직 사람의 손을 덜 탔다. 굳이 파워 스폿을 찾아 헤맬 것도 없이, 영양에 가는 것 자체가 지친 몸에 맑은 기운을 불어넣는 일이 된다.

영양의 대표 명소인 선바위라는 이름엔 뜻이 두 가지다. ‘선’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갈린다. ‘서 있는’으로 새기면 ‘일어선 바위(立岩·입암)’요, 신선의 선(仙)으로 읽으면 ‘신선의 바위(仙岩·선암)’다. 벼랑 끝에 툭 갈라져 촛대처럼 솟은 바위를 보면 두 이름이 다 그럴듯하다. 신선이 내려앉은 것 같기도, 땅에서 우뚝 일어선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이 바위가 선 행정지명이 입암면(立岩面)이니, 고장 사람들은 진작 ‘일어선 바위’ 쪽으로 마음을 정한 모양이다.

담장 바깥에서 본 서석지와 중심 건물인 정자 경정.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석지에는 지금 연꽃과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담장 바깥에서 본 서석지와 중심 건물인 정자 경정.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석지에는 지금 연꽃과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 선바위와 자금병, 돌로 세운 문

선바위는 반변천(半邊川) 가에 섰다. 동천이 반변천과 합류하며 물길이 ‘Y 자’를 그리는 자리다. Y 자의 왼쪽 갈래에 선바위가 있고, Y 자의 아래 기둥을 떼고 남은 V 자 뾰족한 삼각의 땅 끄트머리쯤에 정자 남이정(南怡亭)이 앉았다. 남이정이 딛고 선 지형이 영락없는 조각 케이크다. 그 케이크 단면 같은 수직 절벽을 자금병(紫錦屛)이라 불렀다. ‘붉은 단애(斷崖)로 두른 병풍’이라는 뜻이다.

선바위와 자금병이 마주 보며 빚어낸 기이한 절경을, 마을 사람들은 석문(石門)이라 불렀다. 촛대처럼 솟은 선바위를 왼쪽 문기둥으로, 깎아지른 자금병을 오른쪽 문기둥으로 삼은 것이다. 문이란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다. 굳이 이 벼랑과 바위를 문으로 본 것은, 그 안쪽에 여느 곳과 다른 세상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석문 안쪽 임천마을에는 별세계처럼 연못 하나가 숨어 있다. 조선의 대표적인 민가 정원으로 꼽히는 서석지(瑞石池)다. 은행나무 그늘 아래 연꽃이 피고 배롱나무 붉게 물드는 정원이지만, 담양 소쇄원처럼 ‘동산 원(園)’을 쓰지 않고 ‘못 지(池)’를 쓴다. 정원이 아니라 연못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서석지를 짓고 누린 이는 450년 전의 선비 정영방(鄭榮邦)이다. 성균관 입학 자격을 주는 진사시에 올랐으나, 광해군의 실정과 당파 싸움에 환멸을 느껴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책을 놓은 것은 아니어서 퇴계학파의 맥을 이으며 꾸준히 학문을 닦았다. 그가 이 깊은 산골 마을 임천에 뿌리내린 건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서였다. 이미 예순을 바라보던 나이. 반변천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 그는, 선바위와 자금병이 이룬 석문의 절경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다. 석문을 자신의 호로 삼았던 그는 문 안쪽에다 연못 서석지를 파고 평생 궁구한 학문의 이상을 자연에 새겼다.

# 연못을 가꾼 나이가 중요한 까닭

정영방이 서석지 연못을 조성한 게 서른일곱 살 때라고 알려졌는데, 최근에야 그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 찾아낸 손주의 상량문에서 ‘을유년에 이 못을 파고 서석지라 이름 붙였다’는 기록이 나온 것. 그 을유년이 1645년, 그러니까 정영방이 예순을 훌쩍 넘겨 칠순을 바라보던 해다.

연못을 조성한 때가 몇 살이었는가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연못을 둘러싼 조경과 배치가 정영방의 학문적 시선과 사상, 그리고 시적 세계관을 모두 다 담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담장의 경계를 허물어 바깥 경관을 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마당을 비워 바람과 소리까지 받아들이는 경지에서 느끼게 되는 건, 30대의 나이로는 구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노련함과 원숙함이다.

서석지는 별서(別墅) 정원이다. 별서는 지금의 별장과는 좀 다르다. 별장이 ‘노는 공간’이라면, 별서는 자연을 통해 성리학적 이상 세계를 구현하는 도학적 장소에 가깝다. 별서 정원 곳곳에 자연 경관 감상을 뛰어넘는 의미와 상징을 새겨 놓았는데, 그걸 하나씩 찾아내서 읽는 것이 서석지를 관람하는 재미다.

서석지의 중심 건물은 경정(敬亭)이다. 긴 누마루를 두른 정자가 이름 삼은 ‘경(敬)’은 퇴계학파가 끌어안았던 중심 사상이다. 경의 본래 뜻은 공경, 삼가, 조심이다. 더 나아가면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한곳에 집중해 경건하게 다스리는 수양의 태도’로 확장된다.

연못을 가운데 두고 경정과 ㄱ 자를 이루며 앉은 건물이 서석지의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다. 오로지 한 가지에 집중해 마음을 밖으로 흩뜨리지 않는다는 뜻의 ‘주일무적(主一無適)’의 결의를 담아낸 이름이다.

삼지리의 세 개 연못 중 하나인 연지. 연못에는 토종 연 품종인 법수홍련을 심어 놓았는데 지금 꽃이 한창이다. 수면 위에 나무 덱을 설치해 연꽃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삼지리의 세 개 연못 중 하나인 연지. 연못에는 토종 연 품종인 법수홍련을 심어 놓았는데 지금 꽃이 한창이다. 수면 위에 나무 덱을 설치해 연꽃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 풍경과 의미에 이름을 매달다

서석지의 연꽃 가득 피어 있는 연못으로 물이 들어오는 도랑을 일러 ‘읍청거(揖淸渠·맑고 깨끗함을 받아들인다)’라 했고, 물이 나가는 도랑을 ‘토예거(吐穢渠·탁하고 더러운 것을 뱉어낸다)’라 했다. 마음에 들여놓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려야 한다는 뜻을 도랑을 빌려 담고자 한 것이다.

서석지 연못은 가로세로 11∼13m쯤의 크기인데, 연못에는 돌이 있다. 바위라고 부르기에는 작고 돌이라 하기에는 좀 크다. 돌은 가져온 게 아니라 본래 연못 아래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이다. 돌은 60개쯤 되는데, 정영방은 연못의 돌 중에서 물 밖으로 드러난 돌 19개에다 각각 이름을 붙였다. 물이 도는 모양을 닮았다 해서 수륜석(水輪石)이고, 갓끈을 씻는 바위라 탁영석(濯纓石)이며, 노니는 나비를 닮아서 희접암(戱蝶巖)이다.

담장 안쪽은 물론이고, 서석지는 낮은 담장 너머 바깥세상까지도 다 제가 가진 산수처럼 거느린다. 안팎의 지형 경관과 자연 현상, 목석초화(木石草花)에다 각각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었다. 정영방은 담장 안의 자연을 다룬 시 32수와 담장 바깥 풍경을 다룬 시 16수를 남겼다. 그에게 ‘담장 바깥’이란 저 멀리 동네 바깥의 석문이나 물 건너편 산자락까지도 포함됐다.

서석지 입구와 경정 안에는 돌에 붙인 이름, 안팎의 명소 소개, 경관을 담은 시 등을 적어 두었다. 안내판에는 명소를 겹쳐 표시한 주변 지도가 그려져 있다. 지도를 보며 시로 읊은 담장 바깥 풍경 열여섯 곳 목록을 살펴봤다. 태양이 숨어들면 달빛이 아름답게 빛난다는 나월엄(蘿月엄), 연꽃 모양의 산봉우리와 동서로 뻗은 가지가 마치 봉황이 날갯짓하는 형상을 닮았다는 부용봉(芙蓉峰), 달빛에 비친 풍경이 마치 신선을 맞이하는 장소처럼 보인다는 초선도(超僊島)…. 이런 식으로 열여섯 곳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모두 다 가 보고 싶어졌다. 보면 볼수록 더 보아야 할 게 많아진다.

# 옛 정자와 요즘 카페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석지 주변의 경관은 사실 정영방이 지은 멋진 이름만큼 근사하진 않다. 두 가지 경우가 있겠다. 지형이 변했거나 정영방의 눈이 유독 밝았거나. 기대했던 것만큼의 자극이나 감탄은 없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천변이나 논둑길을 산책하며 느긋하게 자연을 완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서석지가 워낙 압도적이긴 하지만, 인근 반변천 주변에 근사한 정자가 많다. 그중 하나가 남경대(攬景臺)다. 정영방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용담 권지가 처음 지은 정자로, 아들이 이어받아 별서로 썼고, 손주는 후학을 가르치는 강학 공간으로 삼았다. 아들과 손자 역시 퇴계 학통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일원이었다. 전통 정원의 격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마당에다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꽝꽝나무를 심어 조경에도 제법 신경을 쓴 듯하다. 못 보고 지나치기 쉬운 천변 언덕 위에 있는데, 일부러 찾아가 볼 만하다.

이번엔 좀 다른 곳. 서석지 가까운 곳에 연당림(蓮塘林)이 있다. 귀촌한 청년 창업자가 5년 전쯤 문을 연 한옥 카페다. 쇠락해 가는 한옥을 일으켜 잔디마당이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연당은 서석지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지명. 마을에서 빈집 9채를 마을 도서관과 박물관, 한옥게스트하우스, 해설사의 집 등으로 리모델링했는데, 카페가 그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다.

카페 이름에다 ‘수풀 림(林)’을 쓴 건 진짜 숲이 있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의미한단다. 사람이 나무이고, 사람이 모여 숲을 이뤘으면 하는 꿈을 상호에 담았다. 카페는 잘 꾸민 한옥과 조용한 마당에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을 갖추고 커피와 함께 지역 특산물로 만든 디저트를 판다. 고즈넉하고 편안하다. 한옥 고택 방문을 열고 내다보는 늦여름 매미 소리 들리는 시골 풍경이 근사했다. 이거야말로 ‘현대판 정자’ 아닌가.

연대암의 삼지동 모전석탑. 석탑 돌벽돌 틈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어 앙코르와트 신전을 연상케 한다.
연대암의 삼지동 모전석탑. 석탑 돌벽돌 틈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어 앙코르와트 신전을 연상케 한다.

# 영양의 국보와 보물은 전부 탑

선바위가 자연의 파워 스폿이라면, 이번엔 사람이 세운 파워 스폿이다. 영양 여행에서 빼놓으면 안 되는 게 탑이다. 영양은 국보 하나에 보물 셋을 가졌는데 그게 다 탑이다. 탑이라니 ‘지루한 유산’쯤으로 여길 수 있겠다. 탑은 죄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하지만 영양의 탑은 좀 다르다.

영양에는 모전탑이 있다. 모전(模塼)이란 ‘전(塼)탑을 모방(模)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전탑은 또 뭘까. 흙벽돌로 쌓아 올린 탑을 전탑이라고 한다. 중국식 탑 건축 양식이다. 전탑을 모방했다는 건, 흙벽돌로 지은 게 아니라 벽돌 모양으로 돌을 잘라서 그걸로 탑을 쌓았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흙벽돌로 쌓은 걸 전탑, 돌벽돌로 쌓은 걸 모전탑이라 부른다는 얘기다.

모전탑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유행했다는데, 남아 있는 게 많지 않다. 전국에 현존하는 모전탑은 13기. 이 중 3기가 영양 땅에 있다. 산해리 오층모전석탑과 현리 오층모전석탑, 그리고 삼지동 모전석탑이다. 이 중 산해리의 것이 영양 유일의 국보이고, 현리 모전탑은 보물이다. 삼지동 모전탑은 지방문화재다.

영양의 모전탑은 하나같이 소박하다. 다보탑처럼 귀족적인 풍모도 아니고, 석가탑 같은 섬세함도 없다. 그런데도 그 앞에 서면 미감이 느껴진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의 팔랑거리는 가벼운 미감이 아니라, 때로는 감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단단하고 묵직한 미감이다. 경관이 마음을 움직이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여기도 앞서 말했던 ‘파워 스폿’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당연하게도 영양 모전탑의 압권은 국보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이다. 탑은 주변을 압도하거나 존재감을 뽐내며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자기 존재를 과장하지 않음으로써 그 앞에 선 이의 시선과 사유의 폭을 크게 넓힌다. 말하자면 산해리 모전탑이 보여 주는 미감의 팔 할 이상이 탑 자체가 아니라 탑이 서 있는 자리와 배경, 혹은 그곳에 깃든 이야기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산중 절집에 있는 삼지동 모전석탑은 영양의 다른 두 기 모전석탑보다 작지만 분위기는 더 근사하다. 암반에서 떨어져 굴러 내린 큰 바위를 기단 삼아 탑이 섰다. 모전탑의 벽돌 사이에 식물이 뿌리를 내려서 그런지 앙코르와트 사원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비워 놓은 주변 경관과 함께 탑을 감상해야 하는 곳이다.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비워 놓은 주변 경관과 함께 탑을 감상해야 하는 곳이다.

# 신선이 사는 곳, 마음을 씻는 곳

영양 땅에는 유독 동천(洞天)이 많다. 동천은 도교의 세계관인 ‘동천복지(洞天福地)’에서 유래한다. 지상에 사는 신선들의 세상이란 의미다. 어찌 보면 ‘파워 스폿’과 비슷한 느낌이다. 보통 경치가 아름다워 신선이 살 만한 곳을 동천이라 불렀는데, 꼭 자연 경관만 따진 건 아니었다. 뛰어난 효자가 난 고장이거나 어진 사람들이 많은 마을도 동천이라 불렀다. 동천은 자연과 인문 통틀어 최고 길지(吉地)에 붙여 주던 최고의 헌사였던 셈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영양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앉은 오지였다. 이 깊은 곳까지 들어온 선비들이 꿈꿨던 이상향을 이곳에서 찾았던 것일까. 영양에는 동천이 14개나 있었다. 한국전통조경학회에서 조사한 결과다. 절반은 기록과 구전으로만 남고, 나머지 절반은 흐릿하게나마 살아 있다.

영양에는 또 ‘마음을 씻는다’는 뜻의 세심대(洗心臺)가 동천 못잖게 많다. 석보면 원리리에도, 영양읍 상원리에도, 수비면 본신리에도 세심대가 있다. 선비들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씻고자 여기까지 찾아왔던 것일까. 그때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일부러 동천이나 세심대를 찾아갈 것까지는 없다. 영양 땅을 지나다가 문득, 예기치 않게 빼어난 자연 경관과 마주치게 될 테니 말이다.

# 자작나무 숲의 알싸한 박하 향

영양에서는 물길이 잘라 낸 석벽 벼랑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영양읍에서 31번 국도와 88번 국도를 갈아타고 수비면 소재지로 가는 길 위의 풍경이 하이라이트다. 이 구간에서 정선 동강 변의 뼝대를 연상케 하는 협곡 벼랑이 이어진다. 압권은 일월면 곡강리의 반변천을 끼고 있는 깎아지른 벼랑 척금대(滌襟臺)다. 여행안내책자에도, 관광안내도에도, 심지어 관광지 안내판에도 없는 곳. 그러나 풍광만큼은 여느 명승지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파워 스폿으로 지목하기 좋은 영양의 명소 한 곳. 수비면 죽파리에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검마산 기슭에 자작나무를 빽빽하게 심고 그 사이 2㎞ 남짓의 산책로를 놓은 곳이다. 마을 앞 도로에서 자작나무 숲 입구까지는 오르막길 4.7㎞로 제법 멀다. 일반 차는 출입할 수 없고 영양군이 운행하는 전기셔틀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자작나무 숲 풍경은 동화적이다. 숲의 정령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자작나무 숲에서 느껴지는 건 박하 향이다. 진짜 그런 냄새가 나는 건 아니지만, 차갑고 알싸한 기운과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진다는 얘기다. 달고, 신선하고, 싸하고…. 영양 여행에서의 느낌을 향기로 비유한다면 박하, 그러니까 민트 향이다. 박하라면, 파워 스폿에 딱 맞는 적절한 향기 아닌가.

■ 연못 3개 품은 ‘삼지리’

영양에는 ‘삼지리’가 있다. 삼지(三池), 곧 세 개의 연못이다. 지명처럼 이곳에는 연못이 세 개 있다. 파대지와 연지, 그리고 원당지다. 규모가 제법 크다. 가장 큰 파대지가 동서로 500m, 남북으로 150m쯤 된다. 지금 연못마다 토종 연꽃인 법수홍련이 한창이다. 연못마다 연꽃을 가까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수면 위에 덱 탐방로를 만들어 놓았다. 파대지에는 카페도 있다. 삼지리에는 삼지동 모전석탑이 있는 연대암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박경일 전임기자
박경일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4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