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시내의 시장. EPA 연합뉴스
테헤란 시내의 시장. EPA 연합뉴스

미국의 장기 제재와 전쟁 여파로 물가가 폭등한 이란에서 ‘선구매 후결제’ 서비스가 확산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자 판매자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외상 판매에 나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간) 이란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스냅페이가 테헤란 시내 곳곳에 “지금 사고 나중에 돈 내세요”라는 광고를 내걸고 후불 결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의류와 휴대전화는 물론 여행상품, 금까지 후불 구매가 가능하다. 스냅페이는 고객에게 최대 5억 리알(약 270달러) 한도에서 이자와 수수료 없이 월말 일시불 또는 4개월 분할 결제를 제공한다. 사실상 외상 거래다. 이 같은 판매 방식은 그동안 이란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리알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판매자가 대금을 나중에 받을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되지 못했고 대부분 현금이나 체크카드로 결제해 왔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후불 결제를 도입한 것은 소비 위축이 그만큼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물가는 치솟는데 전쟁으로 실업까지 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크게 떨어지자 판매자들도 매출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테헤란의 민간 금융교육기관 에콘클리닉 설립자 알리 사에드반디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국민의 구매력이 감소함에 따라 생산자와 공급자가 느끼는 절박함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실제 서민들의 소비 형태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FT에 따르면 테헤란에서는 저렴한 푸드트럭이 늘어나고 있으며 주식인 양고기 케밥 대신 값싼 간 구이로 식탁을 대신하는 가정도 많아졌다. 한 농산물 시장 상인은 “하루 방문 손님이 1200명에서 400명으로 급감해 수입이 치명적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경제 지표도 악화일로다. FT는 이란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3개월 연속 80%를 웃돌았다고 전했다. 이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 직전 한 달간 물가상승률은 130%에 달했고, 올해 봄 실업률은 9.1%를 기록했다.

이란의 경제난은 전쟁 이전부터 누적돼 왔다. 지난해 12월부터 약 한 달 동안 생활고와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전국에서 이어졌다. 최근에는 자산을 지키기 위해 사들였던 금마저 처분하는 사람이 늘고 필수 소비까지 줄어드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FT는 이를 두고 “이란 국민이 장기적인 고통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성윤정 기자
성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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