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매년 신기록 쓰는 ‘극한 기후’
티베트·북태평양 고기압 동시에
한반도 전체 ‘이중 열돔’에 갇혀
올여름 일평균 기온 25도로 1위
거제 시간당 124㎜ 기록적 폭우
산지·남풍·뜨거운 바닷물 영향
사흘간 평년 여름 강수 90% 채워
경남 6~7월 강수량 평년의 33%
18개 모든 시·군이 가뭄 시달려
전국 농가 가축 120만마리 폐사
노지운 기자, 부산=이승륜·전남광주=김대우 기자
17일 경남 거제에 640㎜가량의 비가 쏟아지는 등 경남 해안가 지역에 ‘재난급 물폭탄’이 쏟아졌다. 폭우로 가뭄 해갈에 일부 숨통은 트였지만, 일부 지역에 국한되는 ‘송곳 폭우’로 역대급 가뭄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가뭄과 폭우가 시차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폭우 직전까지 가뭄 피해는 남부지방에 집중됐다. 장마철에도 남부에는 비다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고, 기록적인 폭염까지 겹치면서 농업용 저수지가 빠르게 바닥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전북과 경북 등에서는 밭작물과 과수 피해가 잇따랐다. 올해 여름에는 폭염으로 경남 양산이 42.5도를 찍으면서 우리나라 기상 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경신하기도 했다. 한반도에 나타나고 있는 폭우와 폭염, 가뭄의 원인은 무엇이며, 피해는 얼마나 심각한지, 향후 전망과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 10문 10답으로 짚어본다.
1. 2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폭우 쏟아진 곳은 어디인가
경남 거제와 통영에 ‘200년에 한 번’ 수준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거제에서는 17일 오전 1시 32분부터 1시간 동안 124.5㎜의 비가 퍼부어 종전 기록(2001년 7월 5일 96.5㎜)을 크게 넘어섰다. 통영에서도 오전 5시 11분부터 1시간 만에 97.4㎜(종전 1999년 86.5㎜)의 비가 내렸다. 올여름 시간당 100㎜ 이상의 비가 관측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거제의 시간당 124.5㎜ 비는 최근 극한 호우 사례 가운데 지난해 9월 군산(152.2㎜) 다음으로 높은 강수량이다. 하루로 봐도 거제의 일강수량은 600㎜를 넘겨 1972년 관측 이래 최고이자, 전국 97개 종관기상관측지점(ASOS) 역대 3위를 기록했다. 이보다 많았던 건 2002년 태풍 ‘루사’ 당시 강릉(870.5㎜)과 대관령(712.5㎜)뿐으로, 사실상 루사 이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일강수량이다. 광복절 연휴 사흘 동안 여름 석 달간 내릴 비가 한꺼번에 내렸다. 연휴 기간 비는 거제 900㎜ 안팎, 통영 700㎜를 웃돌아 평년 여름철 강수량(거제 935.1㎜·통영 728.8㎜)의 90%를 채웠다.
2. 왜 많은 비가 남해안에 집중됐나
이번 폭우는 비를 키우는 조건이 한꺼번에 겹친 ‘중첩 폭우’다. 강한 남풍(하층제트)과 지형 효과, 높은 해수면 온도라는 세 요인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다. 제13호 태풍 ‘돌핀’이 약해진 뒤 남은 저기압이 한반도 남서쪽에서 북동진하며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를 끌어올렸다. 북반구에서 저기압 주변 바람은 반시계 방향으로 불기 때문에, 저기압 동쪽에 놓인 한반도로 남풍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여기에 한반도 북동쪽에 고기압이 버티면서 저기압과의 간격이 좁아졌고, 두 기압계 사이의 기압 차가 커지자 남풍이 ‘하층제트’라 불리는 강한 바람대로 발달했다. 남해 해수면 온도가 27∼28도로 높아 이 남풍이 실어 나른 수증기의 양도 많았다. 습한 공기가 거제·통영 등 남해안 산지에 부딪혀 위로 들려 올라가면서 빠르게 식고 응결해 비구름이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게다가 동쪽 고기압이 벽처럼 막아 비구름이 동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해안에 정체하면서 좁은 지역 같은 자리에 계속 물폭탄을 퍼붓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3. 극한 호우가 내리기 직전까지 이어진 ‘역대급’ 가뭄, 얼마나 심각했나
올해 가뭄의 가장 큰 특징은 장마철에도 남부지방에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록적인 폭염도 가뭄에 큰 영향을 줬다. 지난달 전국 강수량은 220.0㎜로 평년의 72.3%였다. 특히 경남은 68.0㎜로 평년(304.7㎜)의 21.9%에 그쳐 역대 가장 적었다. 경남의 기상가뭄(평년보다 비가 적어 물 부족이 지속되는 현상) 발생일수도 7월 평균 20.7일로 전국에서 가장 길었다. 6∼7월 누적 강수량 역시 162㎜로 평년(487㎜)의 33%에 불과했다. 최근 6개월 누적 강수량도 586.7㎜로 평년의 60.3% 수준에 머물렀다. 극한 호우가 쏟아지기 직전인 14일까지도 경남 18개 전 시군이 농업용수 가뭄 단계였다.
4. 피해가 컸던 지역과 농작물은
가뭄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은 경남이었다. 지난 14일 밀양·거제·함안·의령·창녕 등 5곳이 최고 단계인 ‘심각’, 창원·진주 등 9곳이 ‘경계’ 단계였다. 가뭄 피해 농경지는 2834㏊에 이르렀다. 벼는 용수 부족으로 생육 저하와 고사 우려가 커졌고, 단감 등 과수도 수분 부족으로 열과 피해를 입었다. 성주 참외와 청송 사과를 비롯한 포도·복숭아 등 과수·밭작물 농가도 용수난을 겪었다. 이번 호우로 남해안권 6개 시군은 가뭄에서 벗어났지만, 곧바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거제에서만 벼 300㏊가 침수되는 등 도내 농경지 364㏊가 물에 잠겼다. 반면 밀양은 강수량이 130㎜, 창녕은 78.5㎜에 그쳐 정작 물이 급했던 내륙은 비가 덜 내렸다.
5. 축산 피해는 얼마나 컸나
유례없는 폭염에 닭·오리·돼지 등 가축이 잇따라 폐사한 데 이어 이번엔 축사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행정안전부 집계 결과 지난 13일 기준(누적) 전국 2382농가에서 가축 120만5474마리가 폭염 탓에 폐사해 모두 139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전남광주에서만 224농가에서 35만5415마리가 폐사해 23억3800만 원의 피해가 났다. 폐사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2만7000마리(55.6%) 늘었다. 이번 호우 피해도 상당하다. 거제 둔덕·사등면 축산농가 3곳에서는 한우 축사와 육계 시설이 침수됐다.
6. 저수율은 어디까지 떨어졌었나
연휴 직전인 14일 경남 평균 저수율은 32.2%로 평년(69.8%)의 41.4%까지 떨어졌다. 거제는 28.7%, 밀양은 22%대였고, 밀양 웅동저수지는 저수율 0%로 바닥을 드러냈다. 경남 26개 지역에서 시간제 제한급수가 시행됐고, 지난 12일에는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발령돼 전국 물탱크차 200대와 소방대원 400명이 투입됐다. 사흘간의 극한 호우로 저수율은 17일 오후 2시 기준 43.1%까지 반등했고, 거제는 73.6%로 평년의 94.1%를 회복했다. 다만 물이 채워진 자리에서 상수관로가 파손돼 거제 4177가구와 통영 한산면 630가구는 오히려 물이 끊겼다.
7. 올여름이 얼마나 더웠길래 피해가 속출했나
기상청에선 기상 관측 122년 역사를 새로 쓴 여름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남 양산은 지난 2일 낮 최고기온이 42.5도까지 치솟았다. 앞서 지난달 31일 41.4도로 2018년 8월 1일 강원 홍천의 41.0도(기후통계 97개 지점 기준)를 넘어선 데 이어, 8월 1일 41.6도, 2일 42.5도로 사흘 연속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부산도 38.8도를 기록해 1904년 근대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운 날로 남았다. 서울도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한때 40도가 넘으면서 역대급으로 더운 여름 중 하나로 기록됐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집계에서 지난 5월 15일부터 8월 12일까지 누적 온열질환자는 3394명, 추정 사망자는 31명에 달했다. 사망자만 놓고 보면 지난해 여름 전체(29명)를 이미 넘어섰다.
8. 열대야도 ‘역대 최장’ 기록 깼나
지난 6월 1일부터 8월 12일까지 전국 평균 열대야일수는 14.7일로, 1973년 이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0.3일)보다 4.4일이나 많고, 종전 1위였던 2024년(14.5일)도 넘어섰다. 일평균기온 평균 역시 25.2도로 역대 1위였다. 열대야 기준선인 25도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밤이 유독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한 번 달아오른 열기가 밤새 좀처럼 식지 않는 ‘잠 못 드는 여름’이 일상이 됐다.
실제로 지난 9일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24.5도로 내려가기 전까지 17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졌다. 지난 1일 밤 강릉에서는 최저기온이 30.2도까지 오르면서 올해 전국 첫 ‘초열대야’가 관측되기도 했다. 초열대야는 기상청 공식 기준은 아니지만, 통상 밤사이 최저기온이 30도 이상 유지되는 극심한 밤더위를 일컫는다. 열대야를 넘어 ‘초열대야’라는 신조어가 필요해진 것 자체가 올여름 밤더위의 수위를 보여 준다.
9. 역대급 폭염의 이유라는 ‘이중 열돔’이 뭐길래
이번 폭염의 근본 원인은 한반도 상공을 ‘이중으로’ 짓누른 두 고기압이다. 기상청은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을 이번 더위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상층의 티베트고기압과 중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이 대기를 위아래로 겹겹이 덮으면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지면 부근에 갇히는 ‘열돔(heat dome)’ 구조가 만들어졌다. 뜨거운 뚜껑을 두 겹으로 덮은 솥단지에 갇힌 형국이다. 이런 정체성 고기압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나는 추세다. 지형도 더위를 키웠다. 서풍이 태백·소백산맥을 넘으며 뜨겁고 건조해지는 푄 현상이 겹쳐 동해안과 영남 내륙 기온이 유독 치솟았다. 분지 지형인 데다 남부지방은 장맛비도 적어 양산·김해·창원 등 경남 곳곳이 관측 극값을 갈아치웠다.
10. 앞으로도 여름마다 극한 폭염 기록 경신하나
남해안은 이번 비로 가뭄이 해갈됐지만, 비가 덜 내린 내륙의 가뭄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가을까지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이 지난 7월 내놓은 ‘8∼10월 3개월 전망’에 따르면 8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은 60%, 9월은 50%, 10월은 50%로 나타났다. 기상청은 이 같은 확률의 의미를 ‘평년보다 높겠음’으로 풀이하고 있다. 9월 전국적인 강수량은 평년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올해 10∼12월 ‘매우 강한 엘니뇨’, 즉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이 81%에 달한다고 지난 7월 예고했다. 엘니뇨는 적도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슈퍼 엘니뇨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가을·겨울의 변동성이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초겨울은 평년보다 온화할 수 있지만, 갑작스럽게 한파가 찾아올 수 있고, 겨울 강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 엘니뇨의 영향을 예상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장기 온난화로 폭염의 기본 발생 확률은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장마 기간과 태풍, 고기압의 위치에 따라 폭염의 강도와 지속 기간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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