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설 예비역 육군대령이 안규백 국방부 장관께 전하는 공개서한
안규백 국방부 장관님!
대통령이 육사 출신의 과거 쿠데타 책임을 거론하며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을 서두르라고 지시한 이후, 국방부는 여전히 ‘미래전 대비’와 ‘합동성 강화’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장관님께 먼저 묻고 싶습니다. 군에서 말하는 ‘협동’, ‘합동’, ‘연합’이 무엇이며, 이 세 가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말장난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군이 어떻게 싸우고 장교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군사학의 기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협동·합동·연합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먼저 협동입니다. 육군을 예로 들면 보병·기갑·포병·공병·방공·정보·통신 등 여러 병과의 전문전력을 하나의 전투력으로 결합하는 제병협동입니다. 전차만으로 전쟁을 할 수 없고 포병만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각 병과가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강력한 전투력이 만들어집니다.
그다음은 합동입니다. 육군의 지상전력, 해군의 해양전력, 공군의 항공전력이 공동의 작전목적을 위해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합동성은 육·해·공군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 군의 서로 다른 전문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입니다.
더 나아가 연합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에서 연합작전은 곧 한미연합작전입니다. 한국군과 미군이 지휘통제·정보·감시·정찰·화력·군수 등의 능력을 결합하여 공동의 작전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결국 전투력의 출발점은 전문성입니다.
전문성 → 협동성 → 합동성 → 연합성
전문성을 토대로 협동하고, 그 능력을 합동과 연합작전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합동에 앞서 자기 군과 병과의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장관님, 사관학교를 졸업한 소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육사 졸업생은 보병·포병·기갑·공병·정보·통신 등 각 병과에서 소대장 등 초급장교 임무를 수행합니다. 해사 졸업생은 함정과 해병대 등에서 해양전의 기본을 익히고, 공사 졸업생 역시 조종·방공·관제 등 각 분야에서 항공작전의 전문성을 쌓아갑니다.
위관장교 시절은 자기 군과 병과의 전술·무기체계·장비 운용을 익히고 현장에서 숙달하기에도 벅찬 시기입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토대로 다른 병과와 협동하는 능력도 이 과정에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육군 초급장교가 자기 병과의 전술과 무기체계도 충분히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육·해·공군 합동작전의 전문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해군 장교가 함정과 해양작전을 제대로 모르면서 합동작전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공군 장교가 항공작전의 원리와 무기체계를 제대로 모르면서 무엇을 합동하겠습니까.
하물며 사관생도 단계에서 합동성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세 사관학교부터 통폐합하는 것이 과연 순서에 맞겠습니까? 합동은 전문성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전력을 결합하는 것이 합동입니다.
한반도 전쟁은 협동·합동·연합으로 싸웁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북한이 탄도·순항미사일과 장사정포, 드론, 사이버·전자전으로 우리의 지휘시설과 비행장, 항만을 공격하고 지상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온다면 어떻게 싸워야 합니까?
전방에서는 보병과 기갑이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포병이 화력전을 수행하며, 공병이 기동을 지원하고, 통신부대가 지휘통제체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협동작전입니다.
동시에 공군은 제공권을 확보하고 적 지휘시설과 증원전력을 타격해야 합니다. 해군은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고 적 잠수함과 수상전력에 대응해야 합니다. 육군의 지상작전과 해·공군의 작전이 하나의 작전목적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합동작전입니다.
여기에 미군의 정보·감시·정찰자산과 항공·해군전력, 장거리 정밀타격 및 증원전력이 결합하면 한미연합작전으로 확대됩니다.
실제 전쟁은 어느 하나만 잘한다고 이길 수 없습니다. 각 병과와 군이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이를 협동·합동·연합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강력한 전투력이 만들어집니다.
우크라이나와 이란 전쟁의 교훈을 보십시오
최근 전쟁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보병·기갑·포병에 드론·전자전·정보자산이 결합되고 있습니다. 드론이 등장했다고 포병의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AI가 발전한다고 보병이나 기갑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전장이 복잡해질수록 각 분야의 전문성은 더욱 고도화되고, 이를 얼마나 신속하고 정교하게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이란을 둘러싼 전쟁에서도 항공전력, 미사일·드론, 방공망, 정보·감시·정찰, 전자전, 장거리 정밀타격 등 전문화된 전력이 복합적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래전입니다. 미래전은 전문성이 필요 없는 전쟁이 아니라, 더 높은 전문성과 더 정교한 협동·합동·연합을 요구하는 전쟁입니다.
합동성 강화에 사관학교 통폐합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장관님께 다시 묻겠습니다. 왜 미래전과 합동성을 위해 사관학교부터 통폐합해야 합니까?
사관생도들에게 합동성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각 군의 특성과 무기체계를 이해시키고 합동작전의 기본개념과 한미연합방위체제를 교육해야 합니다. 드론·AI(인공지능)·우주·사이버·전자전•C5ISR 등 미래전 분야의 교육도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합동교육을 강화하는 것과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폐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각 사관학교를 유지하면서도 공동교과목, 상호 교환교육, 합동훈련과 공동교육을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습니다. 합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세 사관학교를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관학교에서는 임관 후 각 군의 초급장교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군별 전문성의 기초를 확실하게 다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후 위관장교 시절 병과 전문성과 협동작전 능력을 발전시키고, 영관장교로 성장하면서 합동작전 능력을 심화하며, 고급장교 단계에서 한미연합작전을 지휘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악기 하나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놓는다고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이올린·첼로·관악기 연주자가 먼저 자기 악기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듯, 육군은 지상전, 해군은 해양전, 공군은 항공·우주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전문전력들이 하나로 결합될 때 비로소 강력한 합동전력이 만들어집니다.
통폐합보다 먼저 미래전과 장교 양성체계부터 설계해야 합니다
장관님, 장교 양성체계는 정권의 임기보다 훨씬 긴 시간을 내다보고 설계해야 할 국가안보의 백년대계입니다.
사관학교 통폐합을 먼저 결정해 놓고 합동성을 그 명분으로 끌어다 쓸 일이 아닙니다.
먼저 미래 한반도 전쟁에서 우리 군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설계해야 합니다. 그 전쟁수행개념에 따라 육·해·공군에 어떤 전문성을 가진 장교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산출하고, 장교의 성장 단계별로 어떤 전문성과 역량을 교육할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에 가장 적합한 사관학교 교육체계가 무엇인지 검토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전쟁수행개념이 먼저이고, 장교 소요와 양성체계가 그다음이며, 사관학교의 조직 형태는 그 결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 순서를 거꾸로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님, 이제 ‘협동·합동·연합’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장교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도 분명할 것입니다. 사관학교에서는 전문성의 뿌리를 내리고, 군 생활을 통해 협동성을 체득하며, 지휘관으로 성장하면서 합동성과 연합성을 완성해야 합니다.
미래전이 요구하는 것은 각 군의 전문성을 희석하는 통합이 아닙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협동, 협동을 바탕으로 한 합동, 합동을 바탕으로 한 연합입니다.
장관님께서 진정 대한민국의 미래전과 전투력을 걱정하신다면, 사관학교 통폐합 추진을 멈추고 우리 군이 어떻게 싸워야 하며, 그 전쟁을 지휘할 장교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부터 다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조병설 예비역 육군대령·수필가. 前 야전군 지휘관 및 참모·육사 지휘심리학 교수
정충신 선임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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