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도수의 Deep Read - 제청권의 헌법정신
대법원장 제청권은 헌법상 실질권한… 재제청, 제청권 - 국회동의권 동시 무력화
대통령 형사재판 대비 ‘명픽’ 대법원 만들기… 권력분립 흔들기 삼권분립 위배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18일 서면으로 대법관을 제청하자 정부와 여당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사전조율’이 없었다며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임명권이 침해받았다”며 제청 거부 움직임을 보인 데 이어, 급기야 대통령이 29일 재제청을 요구했다.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는, 자신의 형사재판에 대비한 ‘코트 패킹’을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국회 동의권까지 뭉갠 행위로 보인다.
◇ 제청권의 헌법정신
오늘날 모든 권력은 법 아래에 있다.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입헌 법치주의는 정치인에게 법대로 정치할 것을 엄중히 명한다. 내란·쿠데타·탄핵이라고 선언하려면, 무슨 헌법과 무슨 법률을 위반했는지 논증해야 한다. 그래야 주권자 국민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감정적 정치 언어로 국민을 현혹하는 건 반헌법적 태도다.
헌법에서의 제청권이란 어떤 기관이 안건을 제안해 다른 기관의 권한 행사를 청구하는 권한이다. 제청권은 문맥에 따라 다양한 법적 의미를 갖는다. 현재 쟁점이 된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대비할 때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무총리의 ‘헌법적 지위’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기관이다.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제청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국정을 보좌하고 행정 각부의 장이 될 사람을 천거하는 행위다. 반면 대법원장은 행정부와 대등하게 권력을 분립하는 사법부의 수장이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건, 대법원을 구성하는 권한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과정이다.
즉 국무총리의 제청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지만, 대법원장의 제청은 사법권 독립을 구현하는 것이다. 1987년 체제의 헌법이 대법관 임명에 ‘국회 동의’ 절차를 추가로 명시한 건, 대법원장 제청권이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대법관 임명권의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대통령의 국무위원 임명권은 국무위원을 언제든 해임할 수 있는 정부 수반으로의 실질적 권한이지만, 대법관 임명권은 국가원수로의 형식적 권한일 뿐이다.
◇ ‘재제청’의 위헌성
대통령이 제청을 반려하거나, 재제청을 요구하거나, 국회동의안 송부를 거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모두 반헌법적 발상이다.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은 국가원수가 갖는 형식적 권한이며,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국회의 동의권에 따라야 할 정치적 책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이 대법관 임명절차를 거부하거나 지연하면, 거기에서 생기는 정치적 책임은 모두 대통령의 몫이 된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두 사람의 대법관 후보 중 한 명에 대해서만 국회 동의를 위해 이송했고 나머지 한 명은 재제청을 요구했다. 대통령이 제청 거부와 재제청을 반복한다면 대법관 후보자를 차례로 소거시키면서 결국 대통령 마음에 맞는 대법관을 선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는 헌법상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가 제청됐을 때 이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임명 거부뿐이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은 재제청을 선택함으로써 대통령은 제청권과 동의권을 모두 뭉갰다. 대통령의 이 같은 선택은 본인이 원하는 ‘명픽’ 대법관이 아니면 제청을 계속 반려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본인 형사재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할 대법관으로 대법원을 채우는 ‘코트 패킹’의 의도를 내보인 것이라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여권이 대법원장의 사전조율 없는 제청을 헌법 위반인 것처럼 공격했지만, 제청권에 부여된 헌법정신을 생각한다면 과거 사전조율 관행이 오히려 위헌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조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이 권력분립 헌법정신을 바로잡은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관행은 법 규범이 아니다. 강제할 수 없고, 강제해서도 안 된다. 헌법정신에 위반되는 관행이라면 마땅히 고쳐야 하는 게 관행이다.
◇ 권력분립과 사법부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가 최고권력을 부여하지만, 그가 권력을 이용해서 독재자로 변질되는 것은 용인하지 않는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권력을 준 이유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는 데 있지, 대통령 자신이나 그들 세력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분립은 우리 헌법이 독재 방지를 위해 세운 최우선 원칙이다. 특히 사법권 독립은 삼권분립 민주주의의 보루다. 다수파 여당을 매개로 국회와 대통령이 연계할 경우 입법과 행정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게 되는데, 이때 대통령은 독재의 삿된 꿈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런 경우 국민주권을 꿋꿋하게 방어할 마지막 책무는 오롯이 사법부의 몫이 된다. 사법권 독립은 단순한 재판의 독립을 넘어, 국민주권 수호의 역할까지 확대된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무너져서는 안 되는 헌법적 소명이다. 사법부의 상징인 대법원장이 정치의 중심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권력분립 원칙이 흔들린다는 신호이자, 독재의 위험성이 현실화한다는 징표다.
조 대법원장은 이미 완성된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법왜곡죄 등 이른바 권력의 ‘코트 패킹’을 위한 사법개혁 3법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정치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법왜곡죄 고발의 대상이고, 탄핵 위협에 시달리고, ‘법원행정처 폐지’ 협박에 마음을 졸이는 형국이다. 대통령과의 사전조율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란 공범’ ‘사법 쿠데타’ ‘탄핵 대상’ ‘퇴학을 구걸하는 불량학생’ 등 악질 비난을 뒤집어쓰고 있다.
하지만 조 대법원장이 지금 겪는 고난은 역설적으로 정치로부터 소외된 주권자가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지금 주권자는 반헌법적인 행태로 삼권분립을 흔드는 정치세력에 가스라이팅 당하기를 거부하면서 입헌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주권 DNA를 깨치는 중이다.
◇ 헌법정신으로 돌아가기
헌법정신으로 보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은 실질적 권한이고 대통령의 임명권은 국가원수로의 형식적 권한이다. 역대 대법원장들이 대통령과 사전조율한 관행이 오히려 위헌적이다. 이재명 정권의 행태는 이 정신에 역행한다.
법무법인 황앤씨 대표변호사, 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 용어 설명
국무총리의 ‘헌법적 지위’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행정부 2인자로,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 대통령에게 종속되지 않는 독립된 헌법기관의 지위를 가짐.
‘코트 패킹’은 권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위해 법원 구성을 바꾸는 것. 1937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 ‘위헌’ 판결을 내린 대법원의 구성을 바꾸려 대법관 증원을 추진한 데서 유래.
■ 세줄 요약
제청권의 헌법정신: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지만,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은 사법권 독립을 구현하기 위한 것. 따라서 국무총리의 제청권은 형식적 권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실질적 권한.
‘재제청’의 위헌성: 대통령의 제청 반려, 재제청 요구, 국회동의안 송부 거부는 모두 反헌법적 발상. 재제청 요구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며, 대법원장 제청권과 국회 동의권을 모두 뭉개는 것.
권력분립과 사법부: 역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 전에 대통령과 ‘사전조율’했던 관행이 오히려 위헌적. 조 대법원장은 재판소원제, 대법관 증원법, 법왜곡죄 등 이른바 권력의 ‘코트 패킹’ 행태 속에서 고군분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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