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전 주유엔 대사

 

트럼프 지시에 한미훈련 축소

동맹 신뢰는 기형적으로 약화

李대통령은 대북 포용 되풀이

 

허망한 시도를 비전인 양 포장

北의 두 국가 망상엔 부화뇌동

부탄에서 통합과 자존 배워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며칠 전 히말라야의 내륙 부탄왕국에 왔다. 출발하기 전에는 인구 80만 명의 소국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기대했었으나, 인근 네팔 대홍수의 엄청난 인명 피해도 마음 아프고, 국내의 혼란한 안보 상황이 머릿속을 맴돈다.

훈련 개시 이틀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축소 지시로 5일 만에 허겁지겁 반쪽으로 끝난 한미연합 을지자유의방패(UFS) 연습, 이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큰 결정이라며 그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조롱과 모욕이 섞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의 발표…. 이런 것들로, 그동안 지켜왔던 가치가 외면받고 동맹 간 신뢰와 국가안보 태세가 기형적으로 약해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언급 중 주한미군 규모가 3만8000명이라거나, 집권 1기 중 방위비 분담금이 50억 달러로 정해졌었다는 등 엉터리 숫자는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북한 핵무기 숫자는 무슨 속셈으로 ‘57개’라고 특정했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의 핵 역량과 핵 지위와 같은 민감한 내용을 가볍게 언급하는 것도 개탄스럽다. ‘친구는 가까이하되 적(敵)은 더 가까이하라’는 영화 ‘대부’의 은유적 대사를 뛰어넘어, 트럼프는 적을 친구로 대하고 친구는 적대시한다.

한미 연합훈련 문제는 지난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연합훈련은 돈이 많이 들고, 북한은 위협적이지 않으며, 김정은과 개인적 친분이 깊다고 했다. 트럼프 발표에 대한 미국 조야의 초당적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일찍이 헨리 키신저 박사도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dangerous)하지만, 세상으로부터 미국이 친구에게 치명적(fatal)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도 안 된다고 자성(自省)했다.

우리로서는 트럼프의 한마디에 동요되지 말고 차분하게 긴 호흡을 유지해야 한다. 동맹 간 신뢰에 불확실성이 연속되고 있지만, 트럼프 2기는 일시적 일탈의 ‘시기(時期)’는 될지언정 새로운 규칙의 ‘시대(時代)’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북한 김여정은 우리를, ‘단 한 번의 합동 군사훈련 축소에 국가안보가 통째로 흔들리는 나라’라고 조롱했다. 핵무기에 취해 자만에 빠진 북한 정권이 이런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게 만든 상황에 대해 정부는 깊은 반성을 하면서, 외교안보팀의 내분 극복과 함께 동맹과 자강의 두 바퀴를 일층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북한에 대해 포용적, 안정적, 책임 있는 평화 공존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당사국 간 논의를 제안했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은 이런 제의가 귀에 들어올 리 없겠고,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과의 만남에 더 관심이 가 있다. 이런 실현 가능성 없는 상황에서 희망 사항을 그럴듯한 수사로 비전인 양 포장하는 것은 국민 우롱이다. 과거에도 있었던 이런 접근법은, 같은 실험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무망한 시도일 뿐이다. 기본으로 돌아가, 상호주의에 입각한 인도적 교류 메시지부터 실효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현 정부는 북한 주민과 정권을 혼동해 주적 개념이 실종된 상황에서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을 과도하게 서두르고, 스스로를 미국의 페이스 메이커로 비하하며 북한의 잘못된 ‘두 국가’ 망상엔 부화뇌동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나아진 게 없고, 우크라이나의 방공무기 지원 요청에도 이리저리 눈치만 보며 엉거주춤한 상태다. 한반도의 엄정한 안보 상황은 미사여구로 덮거나 왜곡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진리를 오해해도 진리가 상처받지 않는다. 잘못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리석어질 뿐이다”라고 했다. 숱한 실패에도 반복되는 정책 오류의 어리석음이 안타깝다.

이런 생각이 부탄 관찰과 겹친다. 부탄은 물질적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의 정신적 만족과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국민총행복(GNH)을 국가 발전의 핵심 개념으로 삼는다. 도착 후 두 번 만난 46세의 국왕은 국민의 두터운 신망 속에 국가통합을 이루며 건전한 자존감 속에 대외관계에도 현명히 대처하는 친한파 지도자의 인상을 준다. 4만 달러 소득의 한국이 4000달러 소득의 부탄에 배울 점이 있음을 느낀다.

김숙 전 주유엔 대사
김숙 전 주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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