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821조 원으로 확정했다. 올해보다 12.8%(93조 원)를 늘린, 증가율과 증액 규모 모두 역대 최대인 ‘초팽창 예산’이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법인세와 소득세가 크게 늘어 국세 수입 584조 원을 포함한 총수입이 880조 원을 넘을 것이란 낙관적 전망이 바탕에 있다. 여기에 초과 세수 160조 원을 재원으로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해 지출을 계속 늘린다는 구상도 담겼다. 적극적 재정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 자체는 경청할 만하다. 하지만 재정을 바라보는 원칙에서 냉정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일시적 세수에 항구적 지출을 얹는 구조다. 반도체 특수는 경기순환의 산물이지 우리 경제의 항상소득이 아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국세 수입이 연평균 13.4% 늘고 지출은 8.4% 증가한다고 예측했으나, 산업 환경이 조금만 뒤바뀌어도 줄어든 세수가 불어난 씀씀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1년 전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국세 수입 예측치는 390조 원이었다. 1년 만에 세수 예측이 이렇게 달라졌는데 5년 후 예측이 맞을 것으로 장담할 수 없다.

미래대응기금이라는 이름은 재정 저수지를 표방하지만, 한 번 만들어진 지출 창구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경계해야 한다. 재정과 통화의 엇박자에 대한 전문가들의 경고 또한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 지출은 총수요를 자극해 물가와 금리를 다시 밀어 올릴 수 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정부가 불과 1년 전 세수 결손 앞에서 지출 증가율을 5%대로 묶겠다던 약속을 스스로 뒤집고 8.4%로 목표를 수정한 것은, 재정 운용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흔들 뿐만 아니라 지출계획에 구속력이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국회가 구속력을 붙여야 한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다음 2가지를 집중 논의해야 한다.

첫째, 미래대응기금의 적립과 인출 규칙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 이동평균 등의 방법으로 기준 세수를 미리 정의하고, 기금의 인출은 실제 세수가 그 기준 세수를 밑돌 때만 허용하면 된다. 기금의 성패는 적립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에 달렸다. 예산을 쓰는 쪽이 그 기준까지 정하면 기금은 이름만 남는다. 규칙과 국회 보고 의무가 없는 기금이라면 승인을 미루는 편이 낫다. 둘째, 사업을 경상지출과 일회성 지출로 나눠 심의해야 한다. 일시적 세수는 부채 상환이나 일몰이 분명한 투자에 배정하고, 항구적 이전지출은 항구 재원이 확인된 만큼만 승인하는 것이 순서다. 국세와 자동 연동된 교육교부금을 55년 만에 손본 것은 이 원리에 부합한다.

예산은 표심(票心)이 아니라 생산성과 미래세대의 부담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세입 전망이 빗나갔을 때 부담을 지는 쪽은 예산을 짠 정부가 아니라 미래의 납세자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심의 과정에서 생산성이 낮은 선심성 사업부터 과감히 걷어내고, 늘어난 세수의 일부는 채무 감축과 재정 여력 비축에 돌려야 한다. 국가채무가 올 연말 1413조 원에서 1년 뒤면 1520조 원이나 될 것으로 전망되는 지금, 정부 예산안의 거품을 냉정하게 걷어내는 일이야말로 국회에 주어진 가장 무거운 책무다. 이 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