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빠진 평화공존 제안

공감대 없는 공허한 구상일 뿐

저자세로는 대북 협상 어려워

 

‘제재-북핵·ICBM’ 교환 대신

자존심과 확고한 원칙 기반한

대북 전방위 접근 전략 세워야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8·15 경축사에 이어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평화공존’을 반복했다. 북한에 대한 포용적·안정적, 책임 있는 평화공존과, 미국·중국 등 당사국 간 논의를 제안했다. 평화공존은 객관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좋은 뜻이지만, 현재 당사국들의 입장과 정책 우선순위를 보면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중장기적 비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공감대 없는 공허한 구상을 중요한 계기에 거듭해서 언급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외교 낭비다.

현 상황은, 우리가 저자세로 임할수록 북한은 더 멀리 달아나며 우리의 어떤 제안도 거부하는 형국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하려면 차라리 상호주의에 입각한 구체적인 인도적 교류 제의가 더 실효적이다. 현재로썬 핵과 미사일 능력 확대, 적대적 두 국가론, 갈수록 악화하는 대남 적대 태도 등 훨씬 중요하고 화급한 위협에 안보·군사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유엔총회 연설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가 실종된 것도 우려스럽다. 지난해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 후 발표된 팩트시트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했던 것에 비하면 명백한 후퇴다. 북한 반발을 우려한 ‘배려’라면 일은 심각하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제재가 별 효과도 없다고 한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여러 객관적 증거 외에도, 필자는 과거 제재의 고통에 대해 외부에 얘기 못 하는 솔직한 고백을 북한 최고위급 인사로부터 직접 들었던 경험이 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제재를 폄하할 순 있어도 한국 대통령이 할 얘기는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북 제재와 추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능력을 맞바꾸자는 구상이다. 다행히 국제사회의 호응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일 추진된다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묵인하고, 항시적 핵 위협에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국제사회의 외교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섣불리 단정하고 북한과 타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은 1956년부터 핵에 관심을 보였고, 1980년대 중반 이래 줄곧 핵무기 개발에 몰두해 왔으며, 핵무기 보유 집착은 3대 세습을 거치며 점점 더 확고해져 왔다. 그 과정에서 6자회담은 결과적으로 속셈을 숨기고 시간을 버는 기만과 지연 전술이었다. 거두절미 외교의 실패라기보다는 뿌리 깊은 북한의 핵 집착이 더 강해, 외교라는 단일 방안으로선 모자랐다고 봐야 한다.

이제는 단선적 시각을 벗어나 대상을 북한 전체로 확대하고, 방법론에 있어서 외교 이외의 도구도 포함한 전방위적(holistic) 접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에는 견고한 정치적 의지와 자신감 있는 외교적 담력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패배주의적 유화와 답답한 순진함 사이를 오갔던 이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은 바꿔야 한다. 비무장지대(DMZ) 내 지뢰 폭발 사건을 안전을 핑계로 소극적으로 다루다 보니 북한이 우리의 유약함을 파고들며 “남측의 자작광대극”이라는 적반하장(賊反荷杖)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는 유약한 구호는 의지와 담력을 갉아먹는 독약이다. 올해를 한반도 평화공존의 원년으로 삼자면서 허황한 퍼주기 계획을 남발한 통일부도 현실을 직시하고 대오 각성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도 한국이 동북아 안보의 약한 고리라는 누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흔들리는 자유민주주의 정체성도 바로잡아야 한다.

6·25는 남침인가 북침인가, 여순사건은 반란인가 항쟁인가,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인가 아닌가, 북한 정권은 주적(主敵)인가 아닌가, 완전한 비핵화(CVID)는 우리의 명백한 목표인가 아니면 북한이 완강히 거부하니 포기해야 하나, 적대적 두 국가 관계에 대해 평화적 두 국가 관계의 대응은 과연 옳은가, 북한에 대한 조선 호칭은 옳은가. 이런 것들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 여부가 헌법적 정체성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상대로부터 적절한 두려움과 합당한 대접을 받으려면 자존심과 확고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적의 선의에만 기대는 동상이몽적 평화, 대북 유화와 비굴한 눈치 보기로는 포악한 김정은 정권을 상대할 수 없다.

김숙 전 주유엔 대사
김숙 전 주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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