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민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개봉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문화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1974년에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라는 역사를 다루면서, 실증적 사료나 객관적 사실관계 대신 정치적 음모론과 자의적인 가설을 무리하게 전면에 내세웠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예술 창작에서 영화적 상상력은 서사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실존 인물의 생애와 국가적 상흔을 다룰 때, 창작의 자유가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창작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만큼, 충실한 역사 고증과 균형 잡힌 시각 역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개별 창작자의 일탈 차원을 넘어, 국내 상업영화 시장을 지배해 온 영화 자본의 이념적 편향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영화계가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방식은 뚜렷한 진영 논리에 포섭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역사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성찰하기보다는 선악의 이분법과 특정 정파적 이해에 부합하는 서사를 공급해 온 것이다.
거대 투자·배급사들은 대중의 감정적 분노를 자극하거나 특정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는 기획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었고, 이를 손쉬운 흥행 공식으로 소비해 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냉철한 역사 고증과 다각적인 시선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영화 자본은 대중문화의 장을 단색으로 물들이고 관객들에게 편향된 과거를 학습시켰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편향된 영화 자본의 문화 권력에 대해 2030 청년세대가 가장 거세고 즉각적인 반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성세대의 낡은 이념 대립과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미래세대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사실적 고증’과 ‘공정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고도의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이들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콘텐츠가 공개되는 즉시 국가기록원 자료, 공판 기록, 당시 언론 보도 등 1차 사료를 스스로 찾아 대조하고,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엄격하게 짚어낸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분노는 명확하다.
미래세대가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특정 자본과 진영이 자의적으로 써 내려간 ‘기획된 역사 내러티브’가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지난 역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엄밀한 고증과, 그 토대 위에 펼쳐지는 건강하고 성숙한 해석이다. 역사는 특정 집단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얼마든지 재단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며, 대중문화 역시 정파적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는 선전 수단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예술의 영역에서 역사를 다룰 때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문법은 달라야 하며, 일정한 극적 허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허용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존중과 사전 고증이다. 사실을 무너뜨린 자리에 세워진 허구는 상상력이 아니라 왜곡일 뿐이다. 한국 영화 자본과 문화 권력이 이념적 편향의 굴레에서 벗어나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최소한의 원칙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이들은 날카로운 분별력을 갖춘 미래세대 관객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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