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논설위원

 

AI 속도조절론 놓고 갑론을박

미·중 정상회담서도 합의 못해

치열한 기술패권 전쟁이 원인

 

‘디지털문명’ 우위 다툼이 근원

기독교·중화제국 전략 승부수

우리 역량으로 국익 확대해야

인공지능(AI)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어 개발을 늦춰야 한다는 ‘속도 조절론’의 파장이 거세다. 감속론을 처음 제기한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의 주장을 놓고 빅테크 리더들은 갑론을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쟁을 이유로 규제에 반대했다. 대신 지난달 29일 AI 기업 CEO들과의 오찬에서 업계 자율 규제 방안을 제시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AI 사고 시 소통할 채널을 구축하기로 했지만, 안전장치 마련엔 합의하지 못했다. AI 위험 관리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합의를 못 한 것은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 때문이다. 기술 개발을 조절한다고 해놓고 뒤로 딴짓을 하면 경쟁에서 밀린다는 논리다. 아모데이조차 “중국도 자제할 것으로 믿고 개발을 늦췄다가 약속을 어기면 기술 우위를 내줄 수 있다”며 대중 수출 통제 강화를 주장했다.

미·중의 치열한 AI 경쟁을 고려하면 애초 공동 규제 발상 자체가 무리다. 양국 빅테크들의 AI 최신 모델 경쟁은 물론 엔비디아와 화웨이의 AI 칩 경쟁, 반도체 경쟁 등 전 분야에서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다. ‘AI 영토’ 싸움도 치열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월 상하이에서 러시아·브라질·인도네시아 등 29개국이 참여한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를 출범시켰다. 미국도 지난해 12월 한국·일본·호주·영국 등 24개국과 유럽연합(EU)이 가입한 AI 공급망 협력체인 ‘팍스 실리카(Pax Silica)’를 발족했다. 자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구축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미·중 AI 경쟁의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가치와 이념, 체제 경쟁과 패권 전략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역사상 최강의 제국 미국과 최장의 제국 중국 가운데 누가 ‘디지털 문명’의 표준을 세울 것인가의 싸움이기도 하다.

미국을 보면, 최대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의 창립자 피터 틸과 철학자 출신의 CEO 알렉스 카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JD 밴스 부통령이 키 플레이어다. 이들은 AI 우위를 통해 쇠락해가는 서구 문명의 위상을 복원해야 한다는 컨센서스를 갖고 있다. 카프는 저서 ‘기술공화국 선언’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이 지난 세기에 누렸던 주도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국가와 소프트웨어 산업이 분리돼선 안 된다”고 했다. 빅테크들이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정부와 똘똘 뭉쳐 디지털 패권을 유지하는 ‘국가 프로젝트’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AI로 대표되는 기술이 국가안보와 서구 문명의 우위 유지에 복무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신념이다. 실리콘밸리의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틸의 후원으로 부통령에 오른 밴스가 제48대 대통령이 된다면 역사적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3.0’ 시대가 열린다. 가톨릭으로 개종해 가족과 공동체, 영성을 중시하는 밴스는 자유민주공화정 미국을 ‘디지털 기독교 제국’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주도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로 미국에 맞선다.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신흥국)로 경제적·지정학적 영향력을 확장해 미국을 포위한다는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농촌 근거지를 통한 도시 포위 전략’으로 미국을 뛰어넘으려 한다.

이병한의 ‘테크노-차이나 탐문’에 따르면, 제조업 강국을 위한 ‘중국 제조 2025’를 완료한 중국은 2035년까지 기술 표준화를 달성하고,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테크노 슈퍼파워’가 되는 로드맵을 실행하고 있다. 이런 세계 전략을 위해 170개 국가에 디지털 디바이스를 공급하고, 대륙 간 해저 광섬유 케이블을 깔고, 위성항법 시스템 베이더우(北斗)를 세계의 수도 165개에 연결하고 있다. 디지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인류운명공동체를 명분으로 내세워 중국식 권위주의 체제를 전 세계에 이식해 중화제국을 완성하려 한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 제국 전략에 모든 국가가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미·중 공급망에 모두 연결돼 있는 우리나라에는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미·중의 전략 형세를 파악해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략적 자산인 강력한 제조 역량과 첨단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김충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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