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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긴 계란[오후여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뜻의 사자성어 이란격석(以卵擊石)은 묵자(墨子)의 ‘귀의’ 편에 나오는 말이다. 불가능하고 무모해 보이는 일을 비유적으로 할 때 하는 말이다. 예전 한 방송에서 실제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가능한지 실험을 했는데, 계란에 액체질소를 넣어 완전히 얼린 뒤 대포처럼 발사했더니 부분적으로 깨졌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기세 좋게 펼치다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계란 값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미국인들에게 계란은 필수 식품이다. 국제계란위원회 자료를 보면 미국인 1인당 연간 287개(2020년 기준)를 소비하고 있다. 지난해 퍼지기 시작한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로 달걀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지난달 달걀 12개 평균 가격이 5.09달러(약 7400원)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올랐다. 일부 지역에선 달걀 12개 값이 10달러(약 1만4500원)를 넘어섰다고 한다. 멕시코 달걀 값이 12개에 2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5배가 높다. 우리나라도 미국에 비해 약 4분의 1 가격(한 알에 218원)이다. 이러다 보니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달걀을 밀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오죽했으면 브룩 롤린스 농무부 장관이 집에서 닭을 키우라고 권장했을까.달걀 부족 사태가 심각하자 이젠 미 정부가 그린란드 문제로 갈등을 빚은 덴마크에 달걀 수출을 요청하고 나섰다. 한 미국 언론은 “미국은 이제 그린란드 이야기는 그만하고, 달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덴마크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또, 폴란드와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수출 의향을 물었다고 한다. 충남 아산시에 따르면 지난 7일 농업회사법인 계림농장은 특란 20t(1만1172판·33만5160알)을 미국 동부 조지아주로 수출하기로 했다.트럼프 대통령은 달걀 가격 안정을 위해 2조1800억 원 규모의 대책을 세우고 있는데 의회 연설에서 다른 사안과는 달리 “달걀 값은 손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에는 동맹도 예외가 없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1차 대상이고 유럽연합(EU)에 이어 우리나라로도 확산될 조짐이다. 그러나 작은 달걀 하나에서만 봐도 세계는 이제 서로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 문화일보
- 2025-03-17 11:38
습관성 허언증(虛言症)[오후여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된 게 “(검찰의) 의도에 따른 기획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했는데, 원내 제1당 대표이고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한 말로는 지나치게 과하고 가볍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 석방 다음 날인 9일 “검찰이 산수를 제대로 못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이 비상계엄 사태 후 가장 먼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체포하고 주요 종사자를 적극 수사했으며, 윤 대통령 공소장에 ‘내란 우두머리’라고 적시한 사실 등엔 애써 눈감고 근거도 없이 ‘검찰-윤 대통령 한패’라는 질 낮은 음모론을 살포한 것이다.법원이 구속 기간을 ‘일’(日) 단위로 하지 않고 ‘시간’으로 계산한 건 전례 없는 일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결정인데, 검찰이 미리 알고 기획했다는 건 억지다. 이런 망상을 진짜 믿는다면 지능을 의심해봐야 한다. 원인은 법원이 제공했는데도 공직선거법 사건 2심 선고를 앞두고 두려워 애먼 검찰만 비난하는 건 비겁하다. 특히, 민주당이 즉시항고를 하지 않았다고 심우정 검찰총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고 탄핵소추를 겁박하는 것도 기가 막힌다. 보석 허가 및 구속집행정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은 만큼 그보다 더한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도 위헌임은 자명하다.이 대표가 별다른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수준 이하의 음모론을 퍼트리는 건 처음도 아니다. 지난 5일 그는 2023년 9월 국회에서 자신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게 “당내 일부가 검찰과 짜고 한 짓”이라고 느닷없이 내부 총질을 했다. 비명계가 “폭력적 집단과 암거래하는 집단”이라고 언어폭력도 휘둘렀다. 명예훼손이 분명한 위험한 얘기를 하면서도 “증거는 없고 추측”이라고 한 것도 기가 찬다.비명계를 만나 통합과 포용을 강조하다 등에 칼을 꽂는 이중 행보가 ‘선거법 2심 유죄 선고를 대비한 사전 단속’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 대표 특유의 과장 말버릇 또는 습관적 허언 때문이라는 해석도 많다. 친야 유튜브에 나와 불체포특권 포기 대국민 약속을 깨고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한 민망한 상황을 ‘배신자를 찾기 위해 제 한 몸 던진 희생’으로 미화하려다 발생한 참사라는 게 더 그럴듯하다.
- 김세동 기자
- 2025-03-14 11:33
쌀의 역습[오후여담] 전 세계에 ‘빅맥 지수’가 있다면 일본엔 ‘카레라이스 지수’가 있다. 서민들이 즐기는 카레라이스 1인분에 들어가는 쌀, 감자, 당근, 고기 가격을 반영한 지표. 지난 5년간 쌀값이 3배 오르면서 이 지수가 396엔(약 3900원)으로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최근 두 달 사이에 무려 25%나 치솟자 일본 정부가 긴급 비축미 방출에 나섰다. 일본은 식생활 변화로 쌀 수요가 매년 10만t씩 감소해왔고, 전체 농민의 60%가 70세 이상 고령이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을 주며 전작(轉作)을 독려해 쌀 12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논에 대체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쌀 파동은 2023년 기록적인 폭염으로 벼 품질이 나빠져 1등급 쌀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현재 일본의 쌀 60㎏ 도매가격은 50만 원으로 한국(15만 원)의 세 배가 넘는다.이번 소동은 불가사의하다. 지난해 일본 쌀 수확량이 679만t으로 전년보다 18만t 늘었기 때문이다. 다만, 농협 등 집하업체의 매수량이 215만t으로 21만t이나 줄어든 게 수수께끼다. 누군가 미리 농민에게 쌀을 사서 쟁여 놓았다는 의미다. 중국 투기 자본이 매점매석한다거나 외국 관광객이 몰려와 쌀 소비가 늘었다는 등 온갖 괴담이 떠돌고 있다. 일본 정부가 비축미 21만t을 방출하는 것도 몰래 증발한 물량과 딱 맞추기 위해서다. 뒷북치기라는 비난도 나온다. ‘농민 보호’를 이유로 비축미 방출을 막다가 지난 1월에야 유통 혼란 때도 방출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쳤기 때문이다.우리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1인당 쌀 소비는 110㎏에서 55㎏으로 반 토막 났다. 정부는 벼 재배면적을 줄이느라 보조금을 뿌리고, 더불어민주당은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비싸게 매입하도록 양곡법을 고집한다. 정부는 140만t 비축미를 관리하는 데만 4500억 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한발 앞서 똑같은 정책을 폈던 일본이 ‘쌀의 역습’에 신음하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쌀 부족 대비로 정책을 대전환하면서 수출을 돌파구로 삼은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2030년까지 쌀 수출을 현재의 8배인 35만t으로 늘리고, 이를 위해 식품·외식 업체의 해외 진출을 파격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쌀 파동이 나면 즉각 수출분을 국내로 돌리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 문화일보
- 2025-03-13 11:38
천 년 사찰과 세심(洗心)[오후여담] 유교 국가인 조선은 불교를 배척했지만, 불교의 역사는 고구려·백제·신라 원삼국 시대부터 시작된다. 사실 조선도 태조를 비롯해 세조 등 불교에 심취한 왕과 왕비가 많다. 전국 곳곳에 1000년을 넘는 사찰들이 자리하는 이유다. 얼마 전 우연히 본 한 유튜브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잘 알려지지 않은 천 년 사찰 몇 곳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특히, 아껴 보려고 책(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뺐다는 낯선 사찰들에 눈길이 쏠렸다. 머리도 식힐 겸, 최근 연휴를 이용해 길을 나섰다.찾아가기를 잘했다. 이처럼 장엄하면서도 고즈넉한 보물 같은 사찰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번에 이름을 알게 된 나주 불회사는 백제 때 중국에서 온 고승 마라난타가 384년 영광 불갑사에 이어 세운 절로 흥미로웠다. 불상이 1000개라는 화순 운주사는 신비하고도 기묘했다. 길고 넓은 진입로에 즐비한 불상과 탑들은 어디에서도 못 봤던 디자인과 형태로, 경탄 그 자체였다. 화순 쌍봉사는 국내 유일의 3층짜리 대웅전이 특이했다.순천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답게, 고아하고 아늑한 옛 모습을 간직해 고창 선운사에 비견되는 감동을 줬다. 이 절은 순천 금둔사와 함께 홍매화가 유명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찾았을 때는 봉오리만 맺혀 있어 아쉬웠는데, 매곡동 참매희망센터 주변 매화나무들은 일부 꽃망울을 터트려 위안이 됐다. 불(佛)·법(法)·승(僧)을 상징하는 삼보사찰이 각각 통도사·해인사·송광사라는 사실도 이번에야 알았다. 선암사·송광사, 공주의 갑사·동학사·마곡사 등은 진입로 양쪽의 천 년 나무숲과 깊은 속까지 맑은 개천 덕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이번 탐방에서 최남단인 여수 향일암은 원효 대사가 수도했던 절로, 한 명이 지나기에도 비좁은 바위틈을 헤치고 들어가 만나는 해수관음상이 유명하다. 강화 보문사·양양 낙산사·남해 보리암과 함께 전국 4대 관음성지의 하나로, 기도가 잘 통한다고 알려져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사찰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 듬성듬성 자리 잡은 세심정(洗心亭) 같은 옛 정자와 해탈문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깨끗해진 느낌이다. 이제 속세로 돌아왔으니, 다음 탐방 때까지는 다시 열심히 일하자는 각오를 다질 수밖에….
- 문화일보
- 2025-03-12 11:34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고[오후여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번역에 진심인 작가도 없다. ‘재미있는 소설을 일본어로 옮기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번역은 하루키 월드의 단단한 한 축이 됐다. 그는 평소 창작과 번역은 뇌를 반대로 쓰는 작업이라고 했지만,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왔다. 스콧 피츠제럴드, J D 샐린저, 레이먼드 카버 등 번역 목록은 모두 하루키가 좋아하고 영향받은 작품들이다. 그가 최근 팀 오브라이언의 ‘아메리카 판타스티카(America Fantastica·2023)’를 번역, 출간했다. 오브라이언 역시 그가 줄곧 애정해온 작가이지만, 주제의식이 하루키의 최근 관심에 닿아 있다.소설은 전직 기자이자 온라인 허위정보 유포자로 전락한 주인공이 은행을 털고 은행원을 인질로 삼아 미국과 멕시코를 떠도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허언증(Mythomania)이 만연하다 못해 역병이 된 미국 사회가 드러난다.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이자 조롱이지만, 곧 우리 이야기기도 하다. 왜 이렇게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 됐나. 하루키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거짓말의 희생자인데 거짓말을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들 거짓말을 당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답답한 현실에서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강하게 말하는 쪽에 마음이 쏠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거짓말쟁이가 이긴다. 조 바이든이나 카멀라 해리스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심한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진실이 사라진 시대, 그는이제 사람들이 “모두 벽을 쌓아 성안에서 지키기 시작한 느낌”이라며 이를 ‘세계의 중세화’라고 명명했다. ‘세계화, 소수자,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무너뜨리고 거대한 벽을 쌓는 트럼피즘에 대한 비판이지만 가짜뉴스, 음모론과 극단적 분열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선택은 벽 안에 갇히거나 넘는 양자택일. 그렇다면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하루키의 예루살렘 문학상 수상 연설의 한 대목이 답이 된다. “높고 단단한 벽에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알의 편에 서겠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벽을 사이에 둔 두 세계를 그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 최현미 기자
- 2025-03-11 11:44
野 경선 룰 논쟁[오후여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박광온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모였다. 지난 총선 공천에서 ‘비명횡사’ 수모를 당한 박 전 의원이 주최한 세미나 자리였다. 개헌이 주된 논제였으나, 이날엔 조기 대선이 벌어질 경우 범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룰이 보태졌다. 박 전 의원은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로 국민과 하나 되는 과정이 돼야 한다”며 “민주당이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해선 안 된다”고 했다. 김 전 총리와 김 지사도 “탄핵의 강을 건넌 세력끼리 합의하는 것보다 귀중한 책무가 어디 있느냐”며 힘을 실었다. 4일엔 전해철 전 의원이 “동등한 조건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진정한 야권 후보”라고 했다. 그 역시 공천 탈락한 친문(친문재인)이다.오픈 프라이머리는 후보 선출 과정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제도다. 먼저 제안한 쪽은 조국혁신당이다. 야권의 모든 예비후보가 컷오프, 경선, 결선을 거쳐 단일 후보를 내자고 했다. 비명(비이재명) 후보들이 먼저 경선을 치르고, 이재명 대표와 최종전을 치르는 투 샷 방식까지 흘리고 있다. 조국 전 대표가 옥중 신세인 마당에 대선 국면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고육책인데, 친문·비명계로선 경선 룰이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 구도를 만드는 새로운 의제가 되는 셈이다. 이 대표가 지난 6일 자신의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해 ‘비명-검찰 내통’ 취지의 발언을 한 이후, 친명-비명 간 대치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친명계는 예상대로 오픈 프라이머리에 선을 긋고 있다. 이 대표가 여론조사상 유력한데 구태여 변수가 많은 경선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인 듯하다. 각 당이 당헌·당규에 따라 후보를 선출하고, 나중에 후보 단일화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이 대표가 통합 오픈 프라이머리를 수락하겠다고 하면 ‘선수가 룰까지 정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장경태 의원)이라고도 했다. 이 대표의 관심은 오직 대선 직행뿐, 개헌도 경선 룰도 블랙홀이 되는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되자 야권 내 ‘단일대오’ 목소리가 커지지만, 탄핵심판 결정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에 따라 룰 논쟁은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큰 이슈가 됐다.
- 문화일보
- 2025-03-10 11:41
트럼프의 러시아 망상[오후여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뒤로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90분간 통화를 한 뒤 노골적인 친러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다. 통화 후 마치 푸틴에게 세뇌라도 당한 듯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하지 말아야 했다”고 말했고, “러시아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침공한 러시아에 면죄부를 주면서 오히려 방어전에 나선 우크라이나를 탓하는 것이다. 큰 나라의 심기를 헤아려 미리 머리를 숙였어야 한다는 질책이라는 점에서 기막히다. 트럼프가 러시아 대변인인 양 행동하는 것에 대해선, 푸틴에게 단단히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라는 설과 함께 ‘스트롱맨의 브로맨스’라는 시각이 있다. 중·러 밀월 시대를 끝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北京) 방문을 통해 대중 관여를 적극화하면서 당시 소련 편에 섰던 중국이 개혁개방 쪽으로 선회하는 데 기여했는데, 트럼프는 반대로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내기 위해 구애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조 바이든 행정부 때 구체화했다. 2021년 바이든이 유럽 순방 중 나토(NATO) 정상회의 등을 통해 중국 고립화 전략을 구체화하면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갖고 건설적 역할을 당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22년 2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역(逆)닉슨 전략’은 파산했다. 이후 미국은 유럽연합(EU)과 공조해 초강력 대러 제재를 했다.트럼프의 역닉슨 전략은 바이든과 달리 동맹을 버리는 방식이어서 논란이 크다. 미국의 한 컨설팅사 정세 브리핑도 “푸틴과의 화해가 러시아의 대중(對中) 결별을 끌어낼 것이라는 트럼프의 인식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50여 년 전엔 중·소 분쟁 여파 등으로 관계가 미미했지만, 이제는 종신 독재자의 결속이 강해져 깨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무제한적 협력 관계’에 합의한 뒤 무역을 확대했다. 2023년부터 중국은 러시아 무역의 33%를 차지하는 나라가 됐다. ‘러·우 전쟁으로 러시아가 중국의 경제 속국이 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오판과 망상이 자유 진영의 연대만 와해시키는 셈이다.
- 문화일보
- 2025-03-07 11:41
한국 AI 인력 넘보는 中[오후여담]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여러모로 파장을 일으킨다. 저비용 고성능 AI로 세계에 충격을 주더니, 개인정보 유출 위험으로 국내에선 서비스가 중단됐다. 그렇지만 딥시크 등 중국 스타트업들은 한국 인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공식 채용 공고 없이 인맥을 통해 유능한 개발 인력을 스카우트하고 있다고 업계는 우려한다.고용노동부는 2023∼2027년 5년간 국내 AI 인력 부족이 1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산업 현장의 인력 수요는 이를 훨씬 웃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2354개 AI 기업의 인력은 5만1425명으로, 부족 인력은 8579명에 이른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도 8200여 명을 신규 채용했다고 한다.한국은 이미 이탈리아·멕시코 등과 함께 AI 인재 유출국가다. 미국 스탠퍼드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은 1만 명당 0.3명의 인재가 순유출했다. 특히, 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인력의 유출은 더욱 비상이다. 미국의 인력 전문업체(드라우프)에 따르면 한국은 AI 인력 상위 20개 국가 중 5년 차 이하 인력 비중이 49%로 가장 높은 반면, 10년 이상 인력 비중은 22%에 그친다.AI 전쟁은 미·중에 이어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이 가세하는 등 확산 일로다. 주요국마다 수백조 원을 쏟아붓는 머니 게임에, 인력 유치전까지 치열하다. 한국은 기술·자금·인력 모두 크게 뒤지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의대 쏠림에 이공계 기피가 뚜렷하고, 그나마 배출되는 졸업생 다수는 미국 등 해외로 빠져나간다.미국조차 산학 겸직 등을 통해 석학 등 고급 인력 유치에 안간힘이다. 특히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미국 등에 유학 간 학생들의 귀환을 포함, 인재 5만 명 확충을 핵심으로 한 종합계획(삼중나선형)까지 만들고 있다. 우리 정부도 ‘월드 베스트 LLM(대규모언어모델)’ 프로젝트와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톱티어 비자 신설 계획 등을 발표했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획기적인 인력 대책이 급선무다. 대학 정원부터 조정해 이공계 비중을 크게 늘리는 개편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주요 기업들이 자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독자 운영하는 기업대학도 과감하게 개방해 인력을 키워야 한다.
- 문화일보
- 2025-03-06 11:50
선관위·헌재·법원 ‘한통속’[오후여담] 헌법재판소가 2월 27일 중앙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찰이 위헌이라고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선관위에서 지난 10년간 직원 가족 특혜 채용이 878건 발생했다는 감사 결과 발표가 있던 날 헌재는 선관위가 ‘감사 성역’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이라 대통령 직속인 감사원의 직무 감사를 받으면 독립성이 침해된다는 것인데, 무리한 해석이고 현실에 눈을 감은 판단이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선거 사무에 국한해야지 채용 업무까지 감사 사각지대에 두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결정이다.헌재의 선관위 감싸기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현 재판관 8명 중 6명이 법원 판사 재직 때 지역 선관위원장을 지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2011∼2012년 진주시 선관위원장을 겸직했고, 김형두·정정미·정형식·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이 지원장 또는 지법 부장판사 시절 강릉시·공주시·평택시·제주시·음성군 선관위원장을 맡았다. 헌법 제114조에 따라 중앙선관위원은 대통령 임명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등 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호선한다고 돼 있는데, 대법관이 관례로 맡아왔다. 광역시·도 선관위원장은 지방법원장이, 시·군·구 선관위원장은 지원장 또는 지법 부장판사가 맡았다.지법원장·지원장이 지역 선관위원장을 맡는 게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선관위가 부정선거 혐의자를 고발·수사 의뢰하고 검찰이 수사해 기소하면 유무죄 판결을 내리는 해당 법원의 최고책임자가 선관위원장이다. 수사·기소 기관과 고발·재판 기관이 한몸이나 마찬가지다. 봉건시대 ‘원님재판’과 구조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명태균특검법’은 특검 추천을 대법원장에게 맡겼다. 그간 특검 추천 권한을 사실상 민주당이 가졌던 데 비해 진일보했다는데, 여전히 위헌성이 제기된다. 특검 수사 후 법원이 재판하는데, 대법원장이 법원 최고책임자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이니 ‘셀프 수사·재판’이 된다. 민주당의 검찰개혁 주장 근저에 ‘수사와 기소는 분리돼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데, 대법원장의 특검 추천은 아예 수사·기소와 재판까지 한통속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게 모순이라고 느끼지도 않는다.
- 김세동 기자
- 2025-03-05 11:36
역대급 라자루스 해킹[오후여담] 역대 최악의 강탈 사건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2003년 3월 18일 이라크 중앙은행에서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를 빼내 간 것이다. 이라크 전쟁 발발 이틀 전, 그의 차남 쿠사이가 새벽 4시에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을 거느리고 나타나 후세인의 서명이 든 서류를 제시했다. 이들은 은행 직원들이 꺼내 준 달러화와 유로화를 받은 뒤 유유히 사라졌다. 역대 2위는 독일 드레스덴의 그뤼네 게뵐베 박물관 절도 사건이다. 2019년 11월 용의자들은 변전소 화재로 정전된 틈을 타 5분 만에 도끼를 휘두르며 보석 공예품을 털어 달아났다. 1800년대 초 작센 왕국의 아우구스트 1세가 수집한 49캐럿 다이아몬드 등 줄잡아 1조 원어치가 사라졌다. 나중에 범인들은 붙잡혔으나 진귀한 보석들은 분해돼 팔려 나간 뒤였다.1990년 미국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사건도 유명하다. 경찰로 위장한 범인들은 81분 동안 라파엘, 마티스, 렘브란트의 걸작만 골라 그림 가장자리를 오려 내 갖고 갔다. 박물관은 7000억 원대의 그림들이 사라진 빈 액자를 그대로 걸어놓고 있다. 넷플릭스는 30년 뒤 이 사건을 ‘이것은 강도다 : 세계 최대 미술품 도난 사건’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북한이 2월 21일 새로운 기록을 썼다. 해킹 조직 라자루스가 세계 3위 가상자산거래소인 바이비트에서 14억6000만 달러(약 2조1000억 원)의 이더리움을 탈취했다. 이들은 거래화면을 조작해 정상적인 송금처럼 보이도록 만든 뒤 트랜잭션(거래기록) 서명을 위조해 자금을 빼돌렸다. 장물은 곧바로 개인들이 거래하는 탈중앙화거래소로 옮겨져 비트코인 등으로 바꾸는 자금 세탁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은 온라인 지갑(웜 월렛)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오프라인 지갑(콜드 월렛)을 탈취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바이비트는 즉각 현상금 사이트를 개설해 자금 추적에 들어갔다. 탈취당한 자금을 동결해 주면 5%를 현상금으로 준다. 일부 전문가는 극단적인 ‘이더리움 롤백’까지 거론한다. 블록체인 기록을 특정 시점 이전으로 되돌리면 해킹 거래를 무효화하고 도난당한 코인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의 수많은 네트워크 참여자가 롤백에 합의해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문화일보
- 2025-03-04 11:41
에코붐 세대[오후여담] 모든 세대는 제각각의 이유로 문제적이다. 에코붐(Echo Boom) 세대도 그렇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1950년대 중반∼1960년대 초 출생)의 자녀 세대로 ‘전후 출생 붐’이 2세 출생 붐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에코(메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기적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인데 이 중 1991년에서 1996년 사이에 태어난 2차 에코붐 세대가 요즘 주목받고 있다. 당시 매년 출생아 수는 70만 명대를 기록했다.2차 에코붐 세대는 풍요로운 선진국에서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지만, 사회로 나왔을 땐 불황으로 취업이 어려워진, 첫 ‘삼포세대’다. 2010년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이들을 대변하는 인물로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20대 직장인 계나가 떠오른다. 그는 경쟁에 지쳐 퇴사하고 호주로 이민을 떠난다. 그는 이렇게 토로한다.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하지만 이들은 그 속에서도 지금의 글로벌 K-컬처를 만들어낸 자신만만하고 문화적인 세대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7명 중 6명이 2차 에코붐 세대다.이들이 이번에 매우 귀한 골든타임 세대로 떠올랐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3만8300명으로 8년 연속 하락 흐름을 뒤집고 전년보다 8300명(3.6%) 증가했다. 합계출산율도 0.75명으로 9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했다. 바로 2차 에코붐 세대 덕분이다. 코로나 기간에 미뤘던 결혼과 출산이 한꺼번에 이뤄진 기저 효과도 있지만, 수적으로 다수인 이들이 본격적으로 결혼·출산 연령이 됐기 때문이다.문제는 이들 이후 1997년 출생아 수가 다시 60만 명대로 떨어진 뒤 급락을 거듭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이 골든타임인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기준 1.51명으로 우리의 두 배 이상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개인의 ‘의무’도 ‘기본’도 아닌 시대다. 결혼과 육아가 오히려 부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개인의 삶과 사회적 구조가 연결된 복잡한 문제다. 그만큼 차근차근 세밀하게 대책을 세워 추진해 나가야 한다. 골든타임을 살려야 한다.
- 최현미 기자
- 2025-02-28 11:44
‘책 정치’ 시즌[오후여담]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선 잠룡들의 ‘책 정치’가 본격화하고 있다. 단발적인 인터뷰 등으로는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인간미 등을 제대로 알릴 수 없기에 긴 호흡으로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책 출판이다. 출판사들도 인기가 있는 잠룡을 잡기 위해 경쟁이 치열한데 출판계가 워낙 침체해 있다 보니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2022년 대선을 앞두고는 단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서전 ‘조국의 시간’이 압도했다. 공식 출간 하루 만에 10만 권을 돌파했고 5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당시 조국 사태로 진영이 첨예하게 나눠 대결할 때 조 전 장관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것은 안철수 의원이 2012년 정계 입문하면서 펴낸 ‘안철수의 생각’이다. 보름 만에 50만 권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안랩’ 창업자인 안 의원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오픈 런까지 벌어져 기자들이 서점과 출판사에 대기하고 있다가 출간과 동시에 기사를 쓰기도 했다. 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클 때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담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을 내면서 인기를 끌었다. 책을 좋아하는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경남 양산에 책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책을 내지 않았다. 휴가 때면 독서 목록을 발표하던 전직 대통령과도 달랐다. 책보다는 유튜브에 빠지다 보니 12·3 비상계엄 사태도 촉발했다.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이 페이스북 등에 쓴 글을 모아 ‘정치가 왜 이래?’를 펴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자서전 발간을 준비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이재명이 꿈꾸는 대한민국’을 펴냈는데, 26일 ‘국민이 먼저입니다’는 책을 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공교롭게도 같은 출판사(메디치미디어)다. 최근 정치인이 낸 책 중에 한 전 대표의 자서전은 예약 6시간 만에 1만 권을 넘기고 오픈 런도 벌어졌다. 조 전 장관과 안 의원의 기록을 깰지 관심이다. 계엄 당일과 그 후의 기록, 그리고 자신의 정치 비전을 담았는데 구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도 시간이 지나면 버리는 것이 아닌 윈스턴 처칠의 책처럼 명저를 남길 수는 없을까.
- 문화일보
- 2025-02-27 11:42
다가오는 ‘헌법 84조’ 충돌[오후여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도 조기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면 대법원 재판이 연기된다고 주장해 논란이다. 이 대표는 26일 열린 선거법 2심 결심공판을 일주일 앞둔 지난 19일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에 당선되면 형사재판이 정지된다고 보는 게 다수 의견”이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면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엔 이렇게 노골적으로 속을 드러내지 못하는데, 이 대표는 달랐다.이 대표 주장의 근거는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에 기댄 것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소추(訴追)는 검사의 기소만을 의미한다는 주장 대 재판까지 포함한다는 확대해석으로 갈려 있다. 법제연구원의 법령용어 검색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사건의 재판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문언대로 해석하면 이 대표가 현재 받는 선거법 위반 사건을 포함해 위증교사, 대북 송금, 대장동·백현동·성남FC,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 등 8개 사건, 12개 혐의의 5개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하나라도 당선 무효형이 선고되면 대통령직도 상실한다고 봐야 한다. 반면, 소추는 기소와 공소유지까지 포함한 개념이므로 재판까지 정지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라도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 재판이 속개된다는 점엔 이의가 없다.논란은 이 대표가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재판까지 정지된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단정하면서 발생했다. 유죄가 선고된 범죄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전례가 없어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판례가 있을 리 없고, 그런 만큼 이 주제에 대한 헌법학자의 연구논문이 드문데도 이 대표가 ‘다수설’이라고 장담한 것이다.이 대표가 사실과 다르거나 별 근거가 없는데도 단정적 주장을 한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 요청으로 국회도서관이 조사한 결과 영국, 프랑스, 일본과 미국 16개 주가 허위사실 공표 후보자에게 금고나 벌금형을 선고하고 당선을 무효화하고 있다.
- 김세동 기자
- 2025-02-26 11:44
코리아 해방과 카사블랑카[오후여담] 80년 전 한반도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데에는 미국·영국·중화민국 정상의 카이로회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제2차 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1943년 11월 카이로에서 만난 세 정상이 회동 후 발표한 선언엔 ‘코리아가 적절한 절차를 거쳐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될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당시는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내걸고 전장(戰場)을 중국 및 동남아에서 미얀마, 인도로까지 확장하던 시기다. 그런 일본이 어떻게 일순간에 모든 점령지와 식민지를 내놓게 됐는지에 대해선 역사적 공백으로 남아 있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20일 서울대에서 개최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연례학술회의에서 “미·영 정상이 1943년 1월 카사블랑카에서 만나 아시아와 전쟁을 끝내는 방식으로 무조건 항복 원칙에 따른 징벌적 재조정 원칙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해방의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미·영이 전후 처리 원칙과 관련해 ‘전쟁 이전 상태로 돌린다’는 수준으로 합의했다면 제1·2차 대전에 앞서 강제병합된 한반도는 일본의 일부로 남게 되는데 무조건 항복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태평양전쟁 이전의 조약도 모두 무효가 되면서 해방의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카이로회담 10개월 전에 열린 미·영 정상의 카사블랑카회담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견지한 카사블랑카 원칙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계승됐고, 미국은 일본과 별도의 종전 협상 없이 아시아와 중국·한반도에 진주한 일본군 무장해제 작전에 돌입, 코리아가 해방된 것이다. 김 교수는 회의에서 “역사는 전(前) 과거와 과거를 함께 봐야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E H 카의 말과 거리가 있는 발언으로, 8·15해방은 현재적 시각이 아니라 그 전의 국제질서 속에서 봐야 한다는 제언이다. 아프리카 북단 모로코의 최대 도시 카사블랑카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영화로 유명하다. 2차 대전 당시 자유세계로 가려던 이들의 중간 기착지였던 그 도시에서 처칠과 루스벨트가 전후 국제질서의 근간과 코리아 해방 원칙을 만들었다니 해방 80년을 맞은 올해 새삼 카사블랑카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 문화일보
- 2025-02-25 11:36
정략적인 野 상속세 개편[오후여담] 한국의 상속세는 글로벌 룰과 동떨어진 징벌적 세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도 많은데, 최고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높으니 그렇다. 더구나 최대주주 지분 매각 땐 20% 할증이 붙어 60%까지 올라간다. 중견·중소기업 창업주·오너들은 세금이 너무 많아 가업을 물려주려 해도 할 수가 없다며 애를 태운다. 세금을 내려면 기업 규모를 절반 이하로 줄이거나, 아예 기업을 팔고 손을 떼야 할 지경이니 기가 찰 일이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이런 상속세를 개편하겠다고 나섰다. 이 대표는 “세금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게 하겠다”며 18억 원까지는 상속세를 내지 않게 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1주택 보유자를 염두에 두고 현재 일괄 공제 5억 원, 배우자 공제 5억 원인 것을 각각 8억 원과 10억 원으로 증액해 감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인 최고세율 인하는 빠졌다. 이 대표는 ‘부자 감세’라고 일축하며, 중견·중소기업의 숙원을 거듭 외면했다. 지친 중견·중소기업 사이에선 상속세를 내느니 차라리 25%의 양도소득세를 내고 중국에 팔겠다는 반발까지 나온다.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이 외국으로 넘어갈 판인데도, 네 탓 공방이나 하며 방치하는 정치권이 너무 무책임하다.야당이 부자 감세 타령을 반복하면서, 부동산 상속세만 콕 찍어 인하하려는 저의는 뻔하다. 조기 대선을 겨냥해 핵심 지역인 서울 등 수도권의 환심을 사려는 정략적 포석이다. 중도층을 공략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민주당 내 민주연구원은 최근 계엄 사태 이후의 정당 지지율 조사 동향을 분석하며 중도층 우선 공략 전략을 지도부에 보고했다는 보도다. 민주당의 실용정당 천명과 성장 강조, 논란을 빚는 이 대표의 우클릭 등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핵심이 빠진 상속세 개편은 주 52시간 근로 예외가 빠진 반도체특별법만큼이나 공허하다. 주택 상속세 감세도 형평성 논란이 따른다. 현재 1주택자도 공시가격 12억 원 이상이면 매년 재산세 외에 종합부동산세를 낸다. 한 번 내는 상속세는 1주택자라도 고가 주택은 세금을 내는 게 옳은 방향이다. 진정성 없는 환심 전략은 공감을 사지 못한다.
- 문화일보
- 2025-02-24 11:39
‘금기어 정치’ 진풍경[오후여담] 야당 의원 모임 ‘미래를 여는 의회민주주의 포럼’이 지난 19일 ‘헌법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와 관련해 큰 관심이 쏠린 행사였다. 더구나 친명계 좌장인 정 의원을 비롯해 핵심 인사가 여럿 포진한 모임이다. 하지만 교수들이 발제자로 참석했는데, 이상하게도 현장에 배포된 자료가 없었다. 의아하단 반응이 나오자 정 의원이 “사실 일부러 뺐다”고 했다. “준비했는데 탄핵 국면에서 자료가 나가면 친명들이 무슨 개헌을 추동하기 시작했다고 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개헌’이란 단어가 금기시되는 민주당의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재명 대표는 요즘 개헌 관련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국민의힘의 개헌 주장엔 ‘국면 전환용’이라고 일축해버린다. 당내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동연 경기지사 등이 개헌의 시급성을 주장해도 현실성 없는 ‘흔들기’ 정도로 흘려듣는다. 정대철 전 의원이 주도하는 헌정회는 물론 ‘7공화국을 여는 사람들’ ‘대화문화아카데미’ 등 중도·진보 단체들의 개헌 요구에도 귀를 막았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60∼70% 정도로 높지만 모르쇠다. 현행 헌법 그대로 조기 대선이 벌어지면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TV에 출연해서는 “지금 개헌을 말하면 빨간 넥타이 매신 분들(보수 세력)이 좋아한다”고 잘랐다.국민의힘에선 ‘조기 대선’이 금기어다. 주로 친윤계, 반탄(탄핵 반대)파 의원들이다. 윤석열 대통령 호위 운동에 나서고 있으니, 파면을 전제한 조기 대선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잠룡들의 대권 행보는 시동이 걸렸다. 한동훈 전 대표가 16일 “머지않아 찾아뵙겠다”며 활동 재개를 예고했다. 저서 출간도 한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지방분권 개헌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는 여당 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48명이 참석해 대선캠프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대선 출마에 “생각이 없다”더니 완연하게 기류가 바뀌었다. 19일 노동개혁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는데, 60명의 여당 의원이 모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정치’의 진풍경이다.
- 문화일보
- 2025-02-21 11:53
트럼프·시진핑 테크 전쟁[오후여담] 지난달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미 5대 빅 테크 CEO들이 트럼프 대통령 바로 뒤에 앉은 장면이 압권이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팀 쿡,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가 장관 후보자들까지 제치고 앞에 앉았다. 좁은 취임식장인데도 저커버그와 베이조스는 부인과 약혼녀까지 대동했다. 이들 기업 시가총액은 12조 달러(약 1경8000조 원), 5명의 개인 재산만 1조 달러(약 1500조 원)에 이른다. 그 기술과 자금력을 총동원해 글로벌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포석이다.한 달여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격에 나섰다. 지난 17일 ‘레드 테크(붉은 기술)’ 수장들을 불러모아 세를 과시하는 좌담회를 연 것이다.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 유니트리(휴머노이드 로봇업체)의 왕싱싱 회장, 화웨이의 런정페이 창업자, 세계 1위 전기차인 비야디(BYD)의 왕촨푸 회장, 배터리 1위인 CATL의 쩡위친 회장 등이 시 주석 연설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인공지능 딥시크를 개발해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량원펑, 5년간 시 주석 눈 밖에 났던 알리바바의 마윈까지 참석했다. 그동안 시 주석은 국진민퇴(國進民退)로 민간기업을 억압했다. 반(反)간첩법으로 외국 자본도 대거 탈출했다. 미국이 관세 전쟁을 도발해오자 시 주석이 다시 레드 테크 CEO들과 손잡은 것이다. 과거 좌담회 단골손님이던 부동산 재벌은 모두 빠졌다. 시 주석은 이날 국진민진(國進民進)으로 급변침을 선언했다. “민영 기업은 중국 경제 발전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며 앞으로 부동산보다 첨단기술 쪽으로 경제를 대(大)개조하겠다고 밝혔다. 친(親)기업 훈풍에 레드 테크들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지난 3주간 홍콩 증시에서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BYD 주가는 30%씩 폭등했다. 좌담회 이후 불길이 상하이 증시로 옮겨붙고 있다. 부동산 거품에 짓눌려온 중국 증시가 전기차, 배터리, 로봇, 인공지능 등에서 대약진을 이뤄냈다며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승패를 가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중 관세 전쟁이 양국 빅 테크들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머지않아 중국의 기술 굴기(굴起)가 실제 성공했는지도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 문화일보
- 2025-02-20 11:45
커피와 불황[오후여담] 모닝커피는 많은 한국인의 루틴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인은 1인당 1년에 평균 405잔의 커피를 마셨다. 세계 평균(105잔)의 4배에 이르고 미국(318잔)보다 많다. ‘카페인 각성’이 필요한 과다 경쟁의 ‘K-일상’ 덕분이지만 우리의 커피 사랑 역사는 꽤 오래됐다. 커피에 대한 첫 공식기록은 미국 작가 퍼시벌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다. 보빙단 서기관이었던 로웰은 1884년 1월 경기 관찰사 김홍집 집에 초대돼 저녁 식사 후 한강 변 누각에서 ‘조선에 알려지기 시작한 최신 문물’ 커피를 마셨다고 썼다.가배 혹은 가베로 불리며 고종의 애호품으로 널리 알려진 커피는 근대엔 모던걸 모던 보이의 기호품이었고, 6·25전쟁 후엔 쌀값보다 비싸도 인기였다. 1955년 쌀 한 되가 70환이던 시절, 여름이면 100환을 훌쩍 넘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커피 아키비스트(archvist)’ 진용선 작가는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에서 고려 초·중엽부터 생긴 식후에 숭늉 마시는 식문화가 1960년대 전기밥솥 등장으로 누룽지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자연스레 커피가 차지하게 됐다고 했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둘 다 탄 맛이다.100년 넘는 역사의 ‘커피 사랑’이 경기 한파에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해 불황 속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인 것이 커피였다. 한국신용데이터의 ‘2024년 4분기 소상공인 동향’에 따르면 이 시기에 외식업 중 카페 매출은 3분기보다 9.5% 급감했다. 양식(8.8%), 일식(5.5%) 등 일반 식당 매출은 3분기보다 외려 늘었다. 당연히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매출도 전 분기보다 1.8% 줄었다.국내 커피전문점 수는 2022년 기준 10만729개로 5년간 연평균 8.37% 성장해 왔다. 주요 종사자 수는 27만1794명에 이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집 건너 하나가 카페라 할 정도로 호황이었다.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도전이 가능하기에 은퇴자들의 로망이었던 카페가 이제는 살벌한 ‘생존게임’이 됐다. 얼어붙은 경기는 풀릴 기미가 없다. 대동강 얼음도 녹는다는 우수도 지나며 적어도 국회에서는 민생과 경제에 몰두해 주길 바라게 된다.
- 최현미 기자
- 2025-02-19 11:39
장외집회 착시[오후여담] 정치인에게 장외 집회의 유혹은 마약과 같다고 한다. ‘내가 가진 힘이 이 정도이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방법이 장외 집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위기에 있다가도 장외 집회가 성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역전을 노리기도 한다. 장외 집회의 원조는 1987년 직선제 헌법 개정 이후 치러진 12·16 대선 국면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연일 여의도, 보라매 공원에서 엄청난 군중을 동원해 집회를 열었다. 그땐 ‘100만 군중 집결’이라는 신문 제목이 흔하던 시절이다.100만 명이면 서울시민의 10분의 1이 모인 것인데 누가 정확하게 집계하는 것도 아니어서 ‘믿거나 말거나’ 였다. 이후 대형 집회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몇만 명 규모로 광화문, 숭례문, 서울역 앞 등지에서 계속 열렸다. 그러나 이런 집회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1987년 대선 당시 DJ와 YS의 단일화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보라매 집회의 성공을 맛본 DJ는 ‘4자 필승론’을 앞세워 단일화를 포기했다. 결국 대선에서 3위 득표로 낙선했다. 이희호 여사는 자서전 ‘동행’에서 “엄청난 군중이 운집한 것이 독이 돼 단일화의 기회만 놓치고 말았다”고 자책했다.주말마다 기독교 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하는 집회가 화제다. 지난 8일 대구 동대구역 광장 집회에 경찰 추산 5만 명의 인파가 결집한 데 이어 15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집회에도 3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광주에서 보수 성향의 단체가 연 집회에 최다 참석 인원이 1000명 정도였던 데 비하면 어마어마하다. 광주행 KTX 표가 매진될 정도였다고 하니, 타지에서 간 사람도 많았겠지만, 그 역시 의미가 없지 않다. 전한길 한국사 강사는 “비상계엄은 계몽령”이라며 윤석열 대통령 석방을 거듭 요구했다.이런 집회 성공에 국민의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좋기는 하지만 1987년 보라매 집회처럼 착시 현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19년에도 광화문에 모인 엄청난 인파를 보고 제21대 총선에서 200석 압승을 전망했지만, 결과는 103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지금은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는 진짜 민심을 파악하는 정치 세력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다.
- 문화일보
- 2025-02-18 11:47
‘여의도 신사’ 유감[오후여담] 우원식 국회의장이 최근 ‘백봉신사상’(白峰紳士賞)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박정·박홍근·이재명·전재수·정성호(더불어민주당·가나다순), 장동혁·주호영·추경호(국민의힘), 이준석(개혁신당) 의원이 ‘신사의원 베스트 10’에 뽑혔다. 이들이 이른바 ‘모범적인 국회의원’인 셈이다. 독립운동가이자 국회 부의장 등을 지낸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된 상이다. 매년 12월에 시상해오다 이번에는 해를 넘겼다.선정은 의원, 국회 사무처, 국회 출입 기자 등 600여 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기초로 이뤄진다. 최다 득표자가 대상이다. 조사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한 달간 진행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우 의장은 SNS에 “현직 국회의장으로서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국회의원이면 꼭 받고 싶은 상”이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신사’로 선정된 데 대한 반응이 아직 없다. 2023년에도 선정됐으니 2년 연속이다. 이준석 의원은 배지를 달자마자 신사가 됐다.기준이 무엇일까. “국회를 잘 알고, 속까지 들여다본 사람들의 평가가 모이는 상”(우원식)이 맞을까. 백봉정치문화연구원은 “정직성, 국가·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언어 구사, 의회민주주의 실천, 정치적 리더십, 보편적 세계관과 인류애 등 6개 분야에 대한 평가”라고 했다. 세부 항목이 더 눈길을 끈다.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와 감정을 더 중시함’ ‘자존심을 내부에 간직한 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음’ ‘원칙이 없는 처신이나 원칙에 집착하는 것을 모두 지양함’ ‘세상을 흑백논리로 보지 않고 밝음과 참됨을 추구함’ 등이다.다른 의원들은 차치하더라도, 대권을 꿈꾸는 이 대표와 이 의원은 과연 이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게 활동해왔나,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이 많을 듯하다. 이 대표는 다른 재판들도 있지만 당장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정치 행로가 걸려 있다. 이 의원은 당내에서 진흙탕 싸움의 내홍을 겪었다. 설문조사가 인기투표나 정치 영향력 평가였던 것은 아닌지. 백봉신사상 최다 수상자는 15회를 받은 정세균 전 총리다. 2011년 작고한 김근태 전 의원은 7회의 최다 연속 수상을 기록했다.
- 문화일보
- 2025-02-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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