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에티오피아 봉사활동 후유증으로 3주째 통원치료 중인 탤런트 박상원씨가 수염을 깎지 않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탤런트 박상원(52)씨의 사무실 벽면은 각종 사진과 포스터로 도배되다시피 해 있었다.
박씨의 연기 내력을 보여 주는 사진 외에 아프리카와 몽골 아이들, 그리고 그가 직접 찍은 사진과 카메라도 눈에 띄었다.
연예인 중 소문난 스타일리스트인 그가 수염도 깎지 않은 ‘터프’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연기 캐릭터 때문이 아니라 물리 치료 때문이란다.
이날도 병원 치료 때문에 인터뷰를 2시간 연기해야 했다.
인터뷰=정충신 문화부장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끝내고 귀국해 지난 7월11일 성남공항에서 내릴 때쯤 허리가 쑤시기에 침 한 대 맞으러 병원에 갔지요. 그 길로 입원해서 3주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월드비전 친선 홍보대사 20년째다. 박씨는 아프리카, 몽골, 인도 등 세계 각지를 누비고 다녔지만 이처럼 몸에 무리가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문 마지막 날인 7월10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150㎞가량 떨어진 빈민가인 가레 아레나 마을을 방문했다. 6·25전쟁 참전 용사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아레나 마을에서 낡은 목조 건물을 철거해 보건소와 화장실을 짓고 수돗가 정비 작업을 했지요. 3일 국빈 방문 중 1박2일간 함께 봉사활동을 한 이명박 대통령부터 팔을 걷어붙였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김대기 경제수석, 김인종 경호처장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들이 모두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박씨는 “다들 열심히 철거 작업을 하다 보니 제가 좀 무리를 했던 것 같다”며 “특히 에티오피아 삽은 우리처럼 발로 밟아 흙을 파는 식이 아니라 삽에 경사가 져 있어 온몸에 힘을 주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온 것 같다”고 겸연쩍어했다.
이번 에티오피아 방문은 이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지난달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KOICA 청소년 평화봉사단 발대식에 초청받아 주한외교사절과 청소년 자원봉사원 400명 앞에서 아프리카 자원봉사 체험기를 들려주고 단상에서 내려올 때였다. 이 대통령이 “아프리카에 봉사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 동행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청와대에서 들려준 감명 깊은 에피소드는 1996년 초 내전이 한창이던 르완다에서 겪은 일이다.
“하마터면 함께한 탤런트 김혜자 선배 등 일행이 큰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당시 르완다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동족 간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였다. 정부군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김혜자씨와 카메라맨, 사진기자, 코디네이터 등 일행이 곳곳의 월드비전 사업장을 방문하며 방공호 시설 같은 데서 잠을 잘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칠흑 같은 밤에 일행을 태운 지프 두 대가 오솔길을 통과하는데 나무 가드레일이 쳐진 곳에서 AK 소총을 든 열댓 명가량의 무장병력과 맞닥뜨렸다. 나이키 모자에 군복 바지, 상의는 트레이닝복이나 러닝 차림의 무장병력이 플래시를 비췄다. 일행은 소형카메라에 몸에 귀금속까지 지니고 있어 ‘죽었구나’ 싶었다. 모든 걸 털리거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일행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지프 앞 유리창에 써 놓은 A4용지 크기의 ‘World Vision(월드비전)’ 표시였다. 그들은 이 표시를 알아보고 손끝 하나 대지 않은 채 무사통과시켜 줬다. 박씨는 그 순간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 아프리카에 갈 때 저는 월드비전 친선대사 초창기라 심각성을 못 느끼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 무지렁이 무장군인들, 후투족·투치족·정부군 할 것 없이 ‘월드비전’이나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 마크를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월드비전 마크를 달고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보통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는 사명감과 함께 성숙한 마음을 갖게 됐지요.”
―개인적으로 월드비전 결연 아동은 얼마나 되는지요.
“콜롬비아, 몽골 등 후원 아동은 15명 정도입니다. 저는 주로 긴급 구호 현장에 많이 다녔습니다. 그리고 연예인 중에서는 북한에 상대적으로 많이 다녀온 편입니다.”
―북한 지원 사업은.
“북한에서 월드비전이 의료나 고아원 지원 사업 등을 두루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농업 기술자들의 씨감자 생산 기술 지원 사업이지요. 평양에서도 하지만 백두산 대홍단, 즉 개마고원에서 하는 씨감자 수경 재배 기술 전수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있습니다. 이것이 잘되면 북한 주민들이 기아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박씨는 “에티오피아에서 귀국한 후 우리 가족이 15명을 후원하는 아프리카 케냐를 네 식구가 함께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저 때문에 연기됐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함께 해외 봉사활동을 계획한 것은 케냐가 처음이었습니다. 3년 전쯤 네팔 학교 건립 지원 사업에 아들과 동행했었고 지난해 딸을 데리고 캄보디아에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님과 함께 간 적이 있지요. 몸이 회복되면 이달 중순쯤 온 가족이 케냐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아이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공부할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능하면 책상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게 정리해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책상에 결연 후원 아동이 보낸 편지는 두게 해요. 아프리카, 몽골 아동 등 이름 모를 후원 아동이 보내 준 편지를 액자로 간직해 항상 보게 하고 있지요.”
박씨는 “저는 연예인 하다가 우연히 월드비전 친선대사를 19년, 근육병재단 후원을 23년, 다일공동체 후원을 15년 넘게 지속해 오고 있다”며 “제 자녀들이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월드비전은 유니세프나 유엔난민기구(UNHCR) 같은 유엔 산하단체는 아니며 민간 기구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노하우가 많고 전 세계 네트워크 150개국을 거느린 6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면서 “6·25 전쟁고아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로, 우리와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61년 전 미국 교회들의 구호가 ‘지구 반대편에 코리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국민들이 전쟁으로 다 죽어 가고 있다. 전쟁고아들이 20달러면 한 달을 먹고살 수 있다’였어요. 미국 선교사 바피어스 목사와 한경직 영락교회 목사가 61년 전 시작한 미국 교회의 대표적인 교회 운동이 출발점이 됐습니다.”
박씨는 “제가 친선대사가 됐을 때는 아직 한국이 외국에 원조하는 것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면서 “그 당시 친선대사 자격으로 해외 봉사활동을 나가면 어떤 직함도 없이 그저 한 개인으로 봉사하기 위해 와 있는 외국의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우리는 대체 언제 저럴 수 있을까 하며 부러워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고 말했다.
“이번 에티오피아 방문에서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제가 만난 그들 한 명 한 명은 모두 천사였습니다. 저 역시 제가 받은 박수는 대중에게 진 빚이라는 말을 늘 기억하려 합니다. 도울 수 있는 것은 제게 행운입니다.”
박씨는 월드비전 홍보대사 초창기 ‘기아 체험 24시간’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다. 청소년들이 24시간 기아 체험을 통해 3만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이에 감명받은 시청자들이 ARS 전화로 2000원을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박씨는 초창기 이 프로그램 연출과 가수·방송국 섭외, 무대 디자인을 도맡아 했다. SBS와 케이블TV HBS 등을 통해 10년 넘게 진행해 하루 최대 40억원대 모금을 했다. 이는 아프리카 등 아동과의 평생 결연으로 이어지기도 해 15년간 모금액이 수백억원을 넘는다.
“봉사활동은 처음에는 흉내만 내더라도 하다 보면 농도가 충분히 진해집니다.”
박씨는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원조를 받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했고,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경우는 지구상에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월드비전 회원국 중에서도 기부금을 많이 내는 ‘G4’에 속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처음부터 가슴이 움직여 봉사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봉사는 흉내에서 시작됩니다. 마치 유행병처럼, 때로는 사치심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참된 의미를 깨닫는 것이 봉사이지요.”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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