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리스크 줄일 대책보다 ‘현금’으로 반발 덮으려는 정부

공익형직불제예산 등 늘리기로
“일회성 현금보다 시스템 필요”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적용받던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면서 보상 지원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의 개도국 지위 포기 전망이 일찌감치 나온 터라 농업계는 물론 정부도 한층 신경을 써온 상태다. 전문가들은 현금지원 같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농가가 외부 영향 등으로부터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권고했다.

25일 정부는 따르면 WTO 개도국 지위 포기가 곧장 시장개방이나 보조금 지급 중단 등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날 열린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존 협상을 통해 이미 확보한 특혜는 변동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이 장기간 중단돼 사실상 폐기 상태에 있고 향후 협상이 재개돼 타결되더라도 장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마무리 단계인 쌀 관세화 검증협상 결과도 변화가 없으며, 우리나라는 향후에도 513% 쌀 관세율을 유지할 전망이다. 이날 홍 부총리는 ‘특별’ 지원책을 별도로 발표하지 않고, 전날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농민·농업관계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을 반복했다. 정부는 내년도 농업 예산을 최대 16조1000억 원까지 대폭 확대했으며, 향후 농어촌 상생기금에 대한 기업의 출연을 활성화할 것을 강조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농민단체들은 개도국 지위 포기 대신 내년도 총예산에서 농업예산 비중을 최대 5%까지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추가적인 지원책을 언급하진 않고 이 같은 내용을 국회로 넘길 것으로 보인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돼 내년부터 시행될 공익형 직불제의 예산을 심의 과정에서 늘려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보상 지원이 이뤄지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은 2조2000억 원이지만 농해수위는 최소 2조4000억 원에서 최대 3조 원(자유한국당 안)까지 확대 편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익형 직불제에서 복지지원 성격이 강한 소농직불금 비중을 20% 이상 확대해 시장개방에 따른 농업·농촌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같은 현금지원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은 “농민들은 가격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현금 지원이 아닌 다양한 가격 리스크 완충장치를 마련해 농민들의 소득안정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