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 ‘오판과 오기’ 경제 더 망친다

  • 문화일보
  • 입력 2019-10-2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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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편집국 국차장 겸 경제산업부장

성장률 쇼크는 실물경제 반영
임기 반환점 文정부 성적 참담
“매우 건전” 연설은 비현실적

‘끓는 물 속 개구리’ 같은 상황
재정투입 동기 방향 모두 잘못
여건 탓 앞서 정책 시정이 화급


지금도 청년들은 취업난에 피눈물을 삼키고, 자영업자들은 임차료와 ‘알바’ 인건비도 부담하지 못해 줄줄이 폐업하고, 중소기업인들은 베트남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사업을 접으려 하고, 대기업들은 영업 실적 폭락에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이런데도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데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고, 매우 건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연설에서 했던 발언이다.

이미 문 대통령 임기의 반환점을 맞이하고 있지만, 경제 성적표는 참담하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0.4%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은 그런 상황을 상징한다. 급변이 없는 한 올 성장률은 1%대를 기록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1954년 통계 작성 이후 5번째 최악 기록을 세운다. 과거 정부의 평균성장률을 보면 김대중 정부(1998∼2002년) 5.3%, 노무현 정부(2003∼2007년) 4.4%, 이명박 정부(2008∼2012년) 3.2%다. 박근혜 정부(2013∼2016년)와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2017∼2018년)은 2.9%가량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여전히 대외 여건 악화 탓으로 돌린다. 11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 확실시되는 수출 부진만 보면 일리가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이 부진하면 기업의 생산·투자가 위축되고, 덩달아 소비도 줄어든다. 그래서 재정확대 주문에 일말의 타당성은 있다. 민간투자가 약화할 때 정부가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의 생산·투자 의욕이 꺾인 원인, 정책 실패에 대해선 외면한다. 불을 질러놓은 당사자가 화재 원인을 먼저 따져보자는 사람에게 ‘소방장비와 소방관 충원이 중요하다’고 윽박지르는 꼴이다. 애초 재정이 전면에 나서게 된 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부터였다. 주52시간 근로제 도입 등이 기름을 부었다. 현실을 살피지 않은 정책의 부작용으로 고용대란이 벌어지자, 정부가 한 일은 정책 수정이 아니라 나랏돈으로 땜질하는 거였다.

거기에 경기 오판(誤判)이 가세했다. 통계청은 최근 경기 순환기의 정점을 2017년 9월로 설정했다. 경기가 수축기(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투자 유인 등 경기 부양책을 써야 할 시점이었다. 갓 출범한 현 정부는 정반대로 경기 위축 정책을 폈다. 진단과 처방의 번지수가 다르면 시장 혼란이 극심해지고, 그걸 막으려는 정부는 재정 투입에 더욱 의존하는 악순환을 부른다. 결국 그렇게 됐다. 경제지표가 나올 때마다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맞섰고, 기업 규제 강도는 더 세졌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경기 침체라고 비판하면서 확장적 재정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된 주장”이라고 했는데, 그 말부터 틀렸다. 재정투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정책 실패의 현실부터 인정해야 재정확대의 처방전이 바르게 되고, 집행 효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을 외면하는 데 있다. 잠재성장률은 나라 경제의 최대성장능력이다. 한은이 지난 7월 재추정한 연평균 잠재성장률은 2019∼2020년의 경우 2.5∼2.6%로, 2001∼2005년 5.0∼5.2%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 증가세가 둔화하고, 투자도 하락 추세여서 노동과 자본 투입 기여도가 낮아진 까닭이다. 투입량을 늘려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는 얘기다. 결국, 투입 효율을 높이는 방법밖엔 없다. 노동 개혁, 기술과 제도 혁신(규제 완화)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것이 경제 체질 개선이고, 구조 개혁이다. 설령 높이지는 못해도 까먹진 말아야 하는데, 올해 성장률이 1%대로 마감할 경우 실제GDP에서 잠재GDP를 뺀 GDP갭은 상당한 마이너스(-)가 확실하다. 한마디로 심각하게 침체돼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게 문 대통령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던 경제인가.

도처에서 정책 부작용이 터져 나오는 데도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는 권력의 생리를 풀이할 경제 이론은 없다. ‘오기(傲氣)’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오기와 경제 현실이 부딪치면 백전백패다. 6년 전 “한국경제는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와 같다”던 매킨지 보고서가 소환되는 지경이다. 그 개구리가 사는 길은 ‘여기는 뜨거운 냄비가 아니다’고 수없이 되뇌는 게 아니다. 냄비 밖으로 나오려는 성찰과 반성, 절박한 자세 전환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 개구리는 ‘서서히’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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