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SNS’를 집어들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Global Window - 소셜미디어 전쟁 된 우크라戰

젤렌스키, 결사항전 영상 올리고
시민들은 포격 사진 생생히 전달
방어벽·화염병 제조방법 공유도

진짜 정보·가짜 콘텐츠 얽히며
새 양상의 ‘전쟁의 안개’ 부작용
실질지원 없는 ‘좋아요’ 한계도

지난 2월 24일 새벽, 구글 지도 속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국경도시 벨고로드로 향하는 도로가 점차 붉은색으로 변했다. ‘교통 혼잡’ 신호인데 러시아 탱크와 군용차들이 국경을 넘어오자 우크라이나 현지 주민들이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자동차를 탄 채 몰려들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침공을 공식 선언하기도 전, 구글은 이번 전쟁의 ‘시작’을 이미 감지한 것이다.

구글 지도가 가장 처음으로 감지한 전쟁답게 이번 전쟁은 이전과 매우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SNS를 통해 전쟁의 많은 모습이 생생하게 전 세계로 전달된다는 것. 포격을 피해 지하철역에 숨어 있는 피란민들의 모습, 그 속에서 태어나는 새 생명, 어린 딸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마지막 포옹을 한 뒤 전쟁터로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 등…. 전쟁의 참상과 우크라이나인들의 항전 의지는 전 세계인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미국·스페인 전쟁이 첫 ‘미디어 전쟁’, 미국·베트남 전쟁이 첫 ‘텔레비전 전쟁’이었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24시간 뉴스채널 전성기’를 열었다면 이번 전쟁은 첫 ‘소셜미디어 전쟁’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음 날인 2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SNS에 올린 동영상. 정부 관리들과 함께 키이우에 있음을 증명하며 국민의 항전 의지를 북돋웠다. 트위터 화면 캡처

◇우크라이나 사태, SNS가 ‘무기’가 된 첫 전쟁 = 전쟁이 진행 중인데도 인터넷이 끊기지 않고 SNS로 상황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은 국가가 주도하는 인터넷망 지원 작업과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 등 덕분으로, 국민의 61%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크라이나가 실시간으로 전황을 업데이트해주는 셈이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다른 고위 인사들도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침공이 시작된 다음 날 모두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방을 궁금해할 때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신과 다른 관리들이 키이우(키예프)에 있다며 키이우 거리에서 촬영해 올린 동영상은 큰 화제가 된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 의지를 더욱 북돋웠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들은 SNS를 통해 서방에 현지 상황을 알릴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요청을 통한 러시아 제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애플의 러시아 내 제품 판매 중단을 요청했고 실제로 이후 애플은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또 시가전에 대비해 방어벽을 만들고 화염병을 제조하는 방법 등을 SNS를 통해 공유하기도 했다. 시가전 전문가인 존 스펜서 전 미 육군 소령이 시민군 가이드라인을 트위터에 올리자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를 번역해 디지털 전단을 만들어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했다. 스펜서 전 소령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일종의 새로운 전쟁 방식”이라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여성의 장갑차 운전 영상. 해당 영상은 우크라이나군이 빼앗은 러시아군의 장갑차를 운전한 것으로 유명해졌으나 실제로는 전쟁 발발 1년 전에 촬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틱톡 화면 캡처

◇SNS는 가짜뉴스 활용한 ‘전쟁의 안개’도 만들었다=SNS의 주요한 특성인 신속성과 강렬함은 실제 정보와 오보가 서로 얽히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의 안개(fog of war)’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SNS에 떠도는 수많은 우크라이나 관련 사진과 영상, 위성 이미지 중 가짜 콘텐츠가 다수 섞여 있어 이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인식의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매일 수백 개의 동영상과 사진이 올라오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가장 많은 ‘좋아요’와 ‘하트’를 얻는 소수의 것들만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한 매력적인 여성이 러시아군 장갑차를 시동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틱톡 영상이 조회수를 700만 건 넘기며 인기를 끌었는데, 해당 장갑차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물리치고 빼앗은 것이란 설명이 달렸다. 하지만 실제 해당 여성은 러시아의 자동차 정비공으로, 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 러시아에서 재미로 장갑차를 몰며 촬영한 것이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사진, 영상이 전쟁 전체의 아주 작은 일부분, 그리고 순간일 뿐이라는 점도 왜곡을 만든다. 인공위성이 촬영한 사진은 특히 이동 중인 군대의 경우 찰나의 순간만 확인 가능하며, 게다가 날씨가 흐리면 구름 사이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영상 조작 기술이 발달하는 것도 위험 요인이다. 전쟁 초반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항복을 촉구하는 조작 동영상이 퍼졌는데 해당 영상은 매우 허술하게 조작된 것이어서 바로 조작임이 탄로 났지만 인권단체 위트니스(witness)의 샘 그레고리는 “해당 영상은 바로 알아챌 수 있어 운이 좋은 것이었다. 더 정교한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을 사용할 경우 이를 제대로 판별해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지타운 대학 안보 및 신흥 기술 센터의 리타 코나예프 교수는 “자신의 편견으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진정한 위험”이라며 “모든 일을 진정으로 담아낼 수 있는 포스트나 기사, 트위트는 결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일시적 ‘카타르시스’ 아닌 실질적 지원= SNS가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에서 공부하는 흑인 학생들이 인종차별에 부딪혀 우크라이나 탈출에 어려움을 겪을 때 관련 동영상이 SNS를 통해 퍼진 후 영국의 흑인 여성 3명이 흑인 학생들의 탈출을 돕는 기금 마련 캠페인을 벌여 5만 파운드(약 8000만 원) 이상을 모금해 이들의 탈출을 도운 일도 있었다.

하지만 SNS에 넘쳐나는 전쟁 관련 콘텐츠들이 모두 유익하거나 실제 도움으로 연결되는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SNS가 전 세계인들이 느끼는 무력감에 따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빠른 해결책으로 쓰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실제 벌어지고 우크라이나의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과 무고한 민간인들이 사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 세계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SNS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전하고 러시아를 비난하는 동영상에 ‘하트’ 하나 누르고 ‘좋아요’ 하나 누르는 것으로 일말의 죄책감을 덜어내고 있는 것인데, 영국 일간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모야 로시안 매클린은 “SNS 활동으로 얻는 카타르시스는 일시적이며 덧없는 것”이라며 “절망에 빠진 우크라이나인들은 자기 만족적인 SNS 포스트가 아닌 진짜 도움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