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尹, 정치를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05-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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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논설위원

文정부 5년 사회 극단적 분열
국민 신뢰 확보가 유일한 해법
자신에게 추상같이 엄격해야

國政서 겸손·균형감 유지하되
목적 불분명한 협치 명분으로
민주주의 파괴 범죄 용납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이 시작됐다. 출발 여건은 최악이다. 경제적으로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의 경고등이 켜졌다. 북한 김정은은 새로운 핵실험까지 예고하고 있다.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여의도를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만만치 않다. 문 전 대통령의 반성 없는 자화자찬과 민주당의 검수완박법 강행 처리는 공정과 상식, 민주주의와 국가 정체성을 파괴한 지난 5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 심판을 받은 대선 후보 이재명과 전임 당 대표 송영길이 2개월 만에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것은 대선 불복을 넘어 협치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 이들은 퇴출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할 생각도 없지만 변할 능력도 없다.

이런 상황을 알고도 대선 출마를 선택한 것은 윤 대통령 자신이다. 5년간 보장된 권한만큼 책임도 오롯이 윤 대통령의 몫이다. 해법은 외길이다.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국민의 지지로 민주당을 압박해 국정 운영을 정상화하고 그 성과로 2년 후 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험난한 길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우리 사회는 극단적으로 분열됐다. 이념과 세대, 지역과 성별의 벽은 웬만한 처방으로는 치유불능이다. 막판까지 40%대를 유지한 문 전 대통령 지지율과 0.73%P에 그친 대선 득표율 격차는 고착화할 수 있다. 명분과 성과에 상관없이 지지를 바꾸지 않을 국민이 80%대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분열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신뢰를 얻어야 한다. 첫 번째 길은 자신에 대한 추상같은 엄격함이다. 인사와 정책 결정, 비리 의혹 등 국정 전반에 대해 ‘법률적으로 문제없다’ ‘과거의 관행이다’는 등의 아전인수식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 내로남불은 신뢰 상실의 첩경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랬다’거나 ‘문재인 정부와 무조건 반대로 한다’는 식의 소극적·퇴행적 사고는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1기 내각과 대통령실 인선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다. 민주당이 공세를 편다고 사퇴할 필요는 없지만, 윤 대통령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국무위원은 윤 대통령의 부하이기 이전에 국민의 공복이다.

두 번째는 겸손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 참여 선언 370일 만에, 대선 출마 선언 253일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바친 세월과 고난의 무게에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꽃가마를 탄 것도 아니고 결정적 신세를 진 정치인도 없다. 굳이 꼽으라면 1등 공신은 윤핵관이 아니라 문재인, 조국, 추미애다. 그런 윤 대통령에게 정치는 만만하고 정치인은 하찮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양 김조차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을 정도로 대한민국 국정은 복잡하고 어렵다. 윤 대통령은 소신을 내세우기에 앞서 소통에 힘써야 한다. 소통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과 무관하다. 소통은 경청하는 것이다. 입장과 처지가 다른 사람의 말을 마음을 열고 듣는 것이다. 양 김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들도 봉황 문양 앞에서 바른말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 당선을 능력의 인정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세 번째는 균형 감각이다. 중도와 반대층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정 운영에서 이념과 세대, 지역과 성별에 따른 치우침을 보여선 안 된다. 기업의 활력을 북돋울 때는 노동자의 사회 안전망을 챙겨야 한다. 이대남의 병역 문제를 배려할 때는 이대녀의 구조적·관행적 차별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압축 성장을 해온 우리 사회에서 뒤처진 국민에게 능력주의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것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네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도 불분명한 협치를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법치를 농락한 범죄와 타협해선 안 된다.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이나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 등은 정상국가에선 탄핵 대상이다. 정치와 권력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끝까지 단죄해야 한다.

새 정부의 성패는 초기 100일에 결정된다지만 윤석열 정부는 서둘러선 안 된다. 꾸준히 일관되게 원칙을 지켜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정 운영은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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