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태생 기성복 명가… 128년째 진화중

■ Premium Life - ‘품질 우선주의’ 닥스… 토털 명품브랜드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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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변한다. 그러나 패션 브랜드가 지켜야 할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오래 입을 수 있으면서도 착용감이 좋은 옷을
만드는 것이다. 1900년대부터 전통과 권위를 내세운
명품 하우스에 맞서 등장하기 시작한 기성복(旣成服) 브랜드들은
지금까지도 이런 ‘품질 우선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지금으로부터 128년 전인 1894년,
영국인 시메온 심프슨(Simeon Simpson)은 런던
미들섹스 스트리트(Middlesex Street)에
작은 맞춤 양복점을 열었다. 양복점이 위치한 곳은
‘페티코트 레인’(Petticoat Lane)이라고도 불린 지역으로,
당시 영국에서는 패션의 중심지였다. 그는 도구 없이 손만으로
직선과 커브를 그릴 줄 아는 양복 재단사로 이곳에서 명성을 얻었다.

1894년 런던 양복점서 출발
최초‘기계화’로 기성복 확대
美대공황 속에서도 지속 성장
英왕실서‘로열 워런트’수여도

‘하우스 체크’내세워 세계 도약
국내시장엔 1983년 처음 진출
골프복·가구 등 카테고리 확장
버버리 출신 디자이너 영입도
‘에이지리스 브랜드’로 탈바꿈

더 많은 고객에게 좋은 옷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시메온 심프슨은 전 세계 최초로 맞춤형 양복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당시 주류였던 맞춤복을 뛰어넘는 품질 좋은 기성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재단한 양복은 ‘심프슨 슈트’라는 이름으로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의 명성은 금방 해외로 뻗어 나갔다.

1934년 그의 둘째 아들인 알렉산더 심프슨(Alexander Simpson)은 부친에 이어 남성복 패션사(史)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열정적인 스포츠맨이었던 그는 골프 스윙을 할 때마다 서스펜더(멜빵)가 움직임에 방해되고, 스윙 후에는 셔츠가 돌아 올라가는 불편함을 느꼈다. 알렉산더는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바지 개량에 나섰고, 허리에 고무를 댄 벨트리스 슬랙스(Beltless Slacks)를 고안해냈다. 벨트와 서스펜더를 반드시 갖춰 입어야 했던 당시로는 큰 변화였다.

그는 아버지(Daddy)에 대한 존경의 의미에 친구의 이름을 덧붙여, 이 슬랙스를 ‘닥스 톱(DAKS TOP)’이라고 이름 지었다. 패션 브랜드 ‘닥스(DAKS)’가 업계에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38년 영국 런던에 있는 닥스 제조 공장에서 재단사들이 의류를 제작하고 있다.

193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 속에서도 닥스는 오히려 새 의류 공장을 열며 영업을 확대했다. 품질 우선주의를 내세운 닥스는 1962년 엘리자베스 여왕, 1982년 찰스 왕세자 등 영국 왕실로부터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1976년 닥스가 선보인 체크 패턴은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닥스가 선보인 ‘하우스 체크’는 캐멀과 노란색 계열의 비큐나, 검정 등 세 가지 색상을 조합한 것으로 현재까지도 고급 원단을 상징하는 닥스 특유의 패턴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닥스는 1983년 LF(옛 반도패션)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에 진출, 그해 9월 서울 중구 충무로에 첫 매장을 열었다. 영국의 기성복이 국내에 소개된 첫 사례다. 정통 트래디셔널 브랜드로 자리 잡은 닥스는 LF와 함께 여성복, 골프웨어, 액세서리, 아동복, 침구, 가구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프리미엄 토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닥스는 버버리(Burberry)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뤽 구아다던(Luc Goidadin)’을 국내 신임 총괄크리에이티브디렉터(Creative Director·CD)로 영입하고 브랜드 재정비에 나섰다. 닥스에 합류한 구아다던은 세계 3대 패션스쿨인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버버리에 입사,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버버리의 최고디자인책임자(Chief Design Officer)로 활약했다. 2018년에는 영국의 럭셔리 가죽 브랜드 스마이슨(Smythson)의 CD를 맡는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닥스는 구아다던 총괄CD 아래 올해부터 새롭게 달라진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100년이 훌쩍 넘은 브랜드 고유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의류의 기능적인 부분을 혁신해 보다 젊고 도전적인 브랜드로 탈바꿈하겠다는 전략이다. 특유의 클래식한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나이 구분 없이 전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며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에이지리스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공개된 닥스의 봄·여름 시즌 컬렉션은 이런 브랜드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이번 컬렉션은 △영국적 특성(Britishness) △현대적 감성(Modernity) △클래식(Classicism) △기능성(Function) △합리적인 럭셔리(Democratic Luxury)라는 5개의 철학을 바탕으로 완성했다.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실루엣과 클래식에 재치를 더한 디테일, 과감하게 변형한 다채로운 체크 패턴, 밝고 재치 있는 색감이 특징이다.

LF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닥스의 브랜드 철학과 정체성을 알리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1994년 닥스 브랜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로열 필하모닉 초청 연주회를 진행했으며, 2006년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후원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닥스 아트 하우스’ 캠페인을 통해 2030세대 아티스트들과 소통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올 초에는 지속가능한 패션 플랫폼 ‘어플릭시(APPLIXY)’와 함께 ‘업사이클링(upcycling) 프로젝트 라인’을 선보이는 등 브랜드 철학과 맞닿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