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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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운, 무료, 심심’ 등을 한자로 쓸 수 있는 사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례로 ‘武運, 無聊, 甚深’인데 한자를 좀 아는 사람이라도 각 글자의 뜻과 유래를 자세히 새겨보지 않으면 한자를 보고도 그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단어와 이것이 포함된 표현 때문에 어휘력, 문해력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에 추가할 만한 것이 있으니 ‘취사’가 그것이다.

취사 금지. 공원이나 유원지 등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기 딱 좋은 자리에는 늘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금지’는 알겠는데 ‘취사’는 무엇일까? 군대에서 취사병이 지은 밥을 먹어본 이들은 취사의 뜻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단어를 한자 ‘炊事’로 써 놓으면 앞의 글자 ‘炊(불 땔 취)’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한자가 쓰이는 단어는 ‘취사’나 ‘자취’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쓰는 이들조차 여기에 포함된 한자의 뜻은 잘 몰랐을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큰 특징 중 하나는 조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리 과정에 쓰이는 불은 음식의 맛을 더하는 동시에 소화를 돕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불을 때다’는 곧 조리를 한다는 뜻이어서 밥이 주식인 우리는 ‘밥을 하다’의 의미로도 쓴다. 나아가 불을 이용해 각종 음식을 만드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취사’는 ‘取捨’로서 쓸 것은 쓰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 뜻의 단어다. 그러니 취사 금지는 자칫 쓰거나 버리는 것을 금지하는 뜻으로 해석될 우려도 있다. ‘취사 금지’가 ‘취식 금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취식’에 쓰인 한자는 ‘取’이니 지닌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다. 취식은 허용하나 취사는 금하는 것은 결국 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이 많은 장소나 화재의 위험이 있는 장소이니 불을 피우지 말라는 것. 단어에 쓰인 한자의 뜻도 취사선택을 잘해야 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