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가장 먼저 구호품 보내준 재외동포… 그 헌신이 한국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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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0-21 08:54
업데이트 2022-10-2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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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장이 멕시코 이민 1세들이 사용한 에네켄 기계 앞에서 이주민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에네켄 기계는 지난 6일 개관한 한국이민사박물관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 특별전에서 국내 첫선을 보였다. 김호웅 기자



■ M 인터뷰 - 이주 한인 1세대 특별전 기획한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장

이민史, 국민성 가장 잘 반영… 하와이 등 16개 도시 찾아 연구
멕시코서 쓰던 에네켄 기계 등 한인 동포 애환 담긴 물건 공수

빈곤 탓에 해외 이주한 동포들, 끼니 걸러도 고국 위해 앞장
그들의 용서·화해 정신 본받아 우리도 다문화·다인종 포용을


인천=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

올해는 한국 이민역사가 120년이 되는 해다. 1902년 12월 22일 첫 이민 길에 나선 1세대들의 발자취를 담은 특별 전시회가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모국 도시 인천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6일 인천 월미도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개관한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전시회를 통해 불굴의 의지로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며 ‘코리아 신화’를 만들어 낸 이주 한인들의 애환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오는 11월 22일까지 47일간 열리는 이번 특별전을 기획한 김상열(55)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은 한인 이주민에 대한 ‘찬사’와 ‘포용’이 전시회의 주된 메시지라고 말문을 열었다. “모국을 위한 재외동포의 헌신적인 봉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모국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광복 후 도탄에 빠진 모국에 가장 먼저 구호 물품을 보낸 것도 그들입니다.”

김 관장은 재외동포의 ‘모국 공헌’이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고 인터뷰 시작과 말미에 거듭 강조했다. 박물관 초입에 마련된 1부 코너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세계 속 한인 모습과 그들이 모국에 이바지한 활동상을 눈에 띄게 전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 안산시와 인천 연수구에 있는 고려인과 사할린 교포 정착촌에서 이들을 돕는 봉사단체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김 관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해외 이주민 하면 그들이 동포건 아니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20년 전 우리 민족의 공식 이민이 시작된 이래 현재 193개국에 732만여 명의 재외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나라가 가난했던 탓에 하와이 사탕수수농장과 멕시코 에네켄 산지에서 노예처럼 부려졌고, 일제강점기 간도와 연해주에 강제노역과 징병으로 끌려가야 했으며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은 혹독한 근로환경을 감내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여야만 했습니다.”

김 관장은 “재외동포의 해외이주는 불안한 나라 정세와 빈곤 탓이지 그들이 먼저 고국을 등진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김 관장이 만난 재외동포 누구나 고국에 남은 형제자매와 이웃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고, 사는 땅은 달라도 자신이 한민족임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김 관장은 “과거 끼니를 거르더라도 독립운동자금 마련에 앞장선 것도, 모국의 정상국가화를 위해 재외 공관 자리를 마련해 준 것도 재외동포였다”며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을 꺼내 보였다.

대학에서 국사를 전공하고,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관·유물관리부장, 인천시 시사편찬팀장 등을 지낸 김 관장은 국내 유일한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을 세 차례 연임했고, 기회가 된다면 남은 공직생활도 이곳에 남아 이민사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민사 연구에 필요한 사료 대부분은 재외동포만이 가진 유일 자료입니다. 더욱이 재외동포들 사이에는 아직도 오래된 유습이 남아 장례를 치르면서 망자의 유품을 모두 불태워 자료수집에 애를 먹을 때가 많습니다.”

이민사만큼이나 그 나라의 국민성을 잘 보여주는 사료는 없을 것이라 말하는 김 관장은 자료 수집을 위해 이민자 가족으로 불리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박물관장을 맡아 본격적인 이민사를 연구하기 시작한 2012년부터 지금까지 김 관장은 재외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6개국 16개 도시를 수차례 오갔다. 그동안 쌓은 항공사 마일리지도 7만여㎞에 달한다.

김 관장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멕시코 이민 2세를 통해 매우 특별한 유물을 구할 수 있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박물관 한편에 전시된 녹슨 기계를 가리켰다. 1905년 멕시코 한인 이주민들이 사용하던 에네켄 기계다. 에네켄은 멕시코 산지에서 자라는 식물로, 당시 선박용 밧줄과 포대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됐다. 이번 전시회에서 국내 첫선을 보인 에네켄 기계는 당시 멕시코로 이민 갔던 한인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상징물이다.

“인천을 흔히 ‘디아스포라’의 도시라고 합니다. 수많은 재외동포가 인천을 거쳐 해외로 이주했고, 고국에 다시 돌아온 이들을 가장 먼저 반긴 곳도 인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인천은 영주 귀국한 1만여 명의 사할린 교포뿐만 아니라 7만여 명의 외국인이 상주하고 있는 글로벌 도시가 됐습니다.”

사실 김 관장은 인천이 디아스포라의 도시라 불리는 것을 못마땅해 여겼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자신들만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유대인을 일컫는 디아스포라가 해외 이주 한인을 지칭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30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때 한인사회가 보여준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이제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세계 어디서든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 몫을 다하며 융화돼 살아온 이주 한인처럼 인천도 다문화와 다인종을 포용해야 하고, 이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재외동포청’이 인천에 설립돼야 합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오는 12월 20일부터 이번 특별전을 해외 이주민이 처음 정착한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이어갈 계획이다. 세계 각지의 한인들이 보내온 사진과 영상 700여 점을 비롯해 박물관이 소장한 1만3000여 점의 이민사 관련 자료도 함께 옮겨져 전시된다.


■ “1902년, 무지개 나라로 여정 시작”… ‘120년 이민 역사’ 생생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인 이민역사 120주년을 기념한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이 전시물을 돌아보고 있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제공



‘그날의 물결…’ 전시회 - 사진·영상 등 1만3000여 점과 하와이 한인 다룬 다큐도 상영

‘1902년 12월 22일, 비나 눈은 오지 않는 영하 4.5도의 날씨였습니다. 아침 8시 동서개발회사에 집결한 121명의 이민자는 오전 10시 인천해관(세관)에서 출국심사를 마쳤습니다. 승선장에서 작은 배에 나눠 타고 월미도 해상에 정박 중인 일본우선회사의 겐카이마루호에 오른 우리 이민자들은 이민 관계자와 가족, 지인들의 전송을 받으며 오후 2시 무지개 나라로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로 첫 공식 이민을 떠났던 무명의 이민자가 남긴 기록이다. 이후 1905년 8월까지 64회에 걸쳐 7415명의 한인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 보내졌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이 한인 이민역사 120주년을 맞아 개최한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 특별전은 다양한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둔 세계 속의 한인 모습을 담았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 전시회는 5부로 구성됐다. 제1부 ‘한민족에서 세계와 이어지다’에서는 세계 속 한인사회의 모습과 모국에 이바지한 재외동포의 활동상을 보여준다. 아울러 재외동포재단의 활동과 인천에 정착한 사할린 영주 귀국자와 고려인, 역이민자들의 모습도 다루고 있다. 제2부 ‘한민족, 이민의 역사를 쓰다’에서는 구한말 다양한 사연을 안고 모국을 떠난 한인의 삶을 재조명했다. 공식이민 전에 연해주와 간도로 징집되거나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멕시코 땅에서 노예처럼 부려진 사연과 주권을 상실한 이후부터 광복 때까지 일본과 사할린 등지에서 힘겹게 살아온 한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제3부 ‘재외동포, 조국의 독립에 투자하다’에서는 민족의 주권 회복을 위해 해외로 건너간 독립운동가와 그들이 활동한 상하이(上海)임시정부의 모습, 그리고 일본에서 시작돼 국내외로 번진 독립선언과 만세운동 등이 소개된다. 목숨을 내걸고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재외동포의 활약상이 상세히 담겼다. 이어 제4부 ‘혼란 속에서도 이민은 계속되다’와 제5부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한인은 있다’에서는 광복 이후 발전한 동포사회의 모습과 함께 성장한 고국의 달라진 위상을 소개했다.

이 밖에도 전시회 기간 하와이 한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이 상영되고, 25일 차세대 한인 문화예술인을 초청한 토크 콘서트를 비롯해 재외동포단체와 연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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