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세계 속 우리 문화재>日 승려 손에 들어간 고려 최대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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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1995년 ‘대고려국보전’이 열린 호암갤러리를 찾은 사람들은 높은 벽에 걸린 세로 419㎝, 가로 254.2㎝의 거대한 비단 화폭에 그려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사진)를 보고 매우 놀랐다. 누가 거대한 통비단에 저토록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으며, 이 고려불화는 왜 일본에 있는 것일까?

수월관음도란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보타락가산에 머무는 관음보살을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만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물가 바위 위에 앉은 관음보살은 호화로운 금박 무늬의 붉은 치마에 몸이 훤히 비치는 얇은 비단을 걸쳤다. 한쪽 발을 늘어뜨려 반가부좌한 채 오른쪽 아래에서 자신을 우러러보는 선재동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옆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있고, 뒤쪽에는 절벽과 대나무가, 발밑에는 연꽃, 산호초 등이 장식돼 있다.

이 불화는 현재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에 소장돼 있다. 그림 중앙 하부의 묵서(墨書)에는 1391년 12월 일본 승려 료켄(良賢)이 구입해 신사에 기증했다고 쓰여 있다. 일본 과학자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에 따르면 1310년 5월 왕숙비(王淑妃)가 발원주가 돼 김우(金祐) 등 4명의 화가가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발원주 왕숙비는 1297년 충렬왕의 세 번째 비인 숙창원비(淑昌院妃)가 됐다가 1308년 충렬왕이 돌아가시자 충선왕의 후궁이 된 숙비(淑妃)이다. 이 그림은 고려 시대 궁정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고려불화 최대의 화폭, 각 모티프의 정확한 형상, 문양의 배치, 색의 조화가 거의 완벽하다고 할 만큼 완성도가 높다. 어떻게 일본 승려의 손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림이 완성된 후 오래지 않아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고려불화의 수준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조성된 이 수월관음도는 고려 왕실의 찬란하면서도 호화로웠던 불사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