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째 대륙 우듬지’ 올라선 여성식물학자, 유리천장을 깨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11-18 09:19
  • 업데이트 2022-11-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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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세계테마기행’ 마다가스카르와 캐나다 편에 출연했다. 실제 여행 경험을 생생하게 되살려준 마다가스카르 편과 달리 캐나다 편은 내 경험과 사뭇 달랐다. 마다가스카르 편은 사람 눈높이에서만 촬영했는데 캐나다 편은 드론을 이용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점이 다르니 내가 본 풍경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흐름출판)를 쓴 1953년생 마거릿 D 로우먼은 식물 속에서 식물과 함께 성장하다가 식물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에게 익숙한 식물과 달리 식물학계는 낯설었다. 그는 식물학계에서 초청받지 않은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남성 과학자들은 그를 가르치거나 함께 연구하려 하지 않았다. 과학계가 여성을 대놓고 배척하던 시대였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떠올려 보시라.

유리천장을 깨야 했다. 학계에서 통하던 방식으로는 안 됐다. 스스로 배우고 혼자 연구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일반적인 식물학자보다 훨씬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여정은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점철된다. 익숙한 온대에서 낯선 열대로 연구지를 옮겼다. 새로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마침내 그는 전혀 다른 영역을 개척했다. 바로 우듬지다. 우듬지란 나무 꼭대기 줄기를 말한다. 그는 왜 굳이 우듬지에 오르려 했을까? 나무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발가락만 쳐다보면서 머리에 무슨 병이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그 의사를 신뢰하겠는가? 당장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이다.

식물학자들은 딱 그 꼴이었다. 키가 100m도 넘고 꼭대기는 구름에 걸리는 나무를 자기 키 높이에서만 관찰했다. 그러고서는 우듬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추론했다. 추론이 맞았는지는 나무를 베어낸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죽어 백골이 된 다음에 진단하는 꼴이다.

자! 이제 우듬지에 올라야 한다. 어떻게? 로우먼은 숲에 오르는 장비부터 손수 만들어야 했다. 마치 암벽을 등반하듯 나무탐험가가 되었다. 식물학자들이 걷는 숲길과 우듬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빛이 다르니 생태계 자체가 다르다. 지구 생물 중 절반 이상은 최소 30m 이상에서 살아간다. 대부분 생물학계에 보고조차 안 된 것들이다. 로우먼은 우듬지를 여덟 번째 대륙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보는 만큼 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우리 지식 체계를 바꾸었다. 시점을 바꾸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높은 산에 오르고 우주로도 올라간다. 아뿔싸! 그런데 왜 우리는 나무 위 우듬지로 올라갈 생각은 못 했는가! ‘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는 나무 생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로우먼의 탐험기록이자 유리천장을 깨는 당찬 여성의 투쟁기다. 놀라운 과학 지식은 덤이다. 나무탐험가가 아닌 우리가 우듬지에 오를 방법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로우먼’이라는 드론이 있다. 딴 세상이 열린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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