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같은 힐튼 헐린다니 마음 아파… 건축유산으로 ‘부분 보존’을”[M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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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1-25 09:03
업데이트 2022-12-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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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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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8일 김종성 원로 건축가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하고 나서 힐튼호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고령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남산 서울 한양도성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그는 “개발 회사 이윤도 창출하면서 힐튼호텔 가치도 보존할 수 있는 ‘윈윈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M인터뷰 - 김종성 원로건축가

고 김우중 회장이 직접 제안
83년 남산 경사진 땅에 완공

伊 대리석 · 美 참나무 베니어
당시 국내에 없던 자재 사용

건축사적으로 의미 큰 건물
美처럼 법으로 보존했으면

대연회장 등 업무용 재건축
일부는 주거용 활용 바람직


글 · 사진 =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 건축 설계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서울 남산에 있는 ‘밀레니엄 힐튼서울’(힐튼호텔)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12월 싱가포르계 부동산 기업 CDL호텔코리아로부터 1조1000억 원에 매입한 부동산 투자 회사 이지스자산운용이 오는 12월 말 영업을 종료하고 철거한 후 신축하기 위해 인허가 과정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힐튼호텔은 1978년 설계를 시작해 1983년 완공된, 한국인이 최초 설계한 호텔로 한국 건축 산업의 걸작으로 평가받아 왔다. ‘이상을 구현한 가장 완성도 높은 건축물’ ‘건축가의 역량을 총결집한 작품’…. 힐튼호텔을 수식하는 말은 이 밖에도 많다.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힐튼호텔을 부수고 거기에 더 큰 건물을 짓는 것은 신라 범종을 녹여서 가마솥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로 건축계와 국민 일각에서 보존을 바라는 여론이 많다.

힐튼호텔은 1977년 미국 일리노이 공대(IIT)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한국 건축의 교과서’라 불리는 김종성(87) 건축가를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찾아와 서울에 호텔을 설계해 달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김 회장은 경기고 2년 선배인 김 건축가에게 호텔 설계의 전권을 위임했다. 그는 ‘근대 건축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하며 그를 직접 사사한 유일한 한국인 제자다. 6·25전쟁 후 불모지였던 한국 건축계에 서구 선진 건축기술을 전파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김 건축가는 요즘 호텔 보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최근 잠시 방한한 그를 지난 15일 만났다. 인터뷰는 그의 바쁜 일정 탓에 묵고 있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호텔 룸에서 밤 10시에 시작해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진행했다. 그는 이날 “분신과도 같은 호텔이 철거를 앞두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먼저 힐튼호텔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국민 대부분은 힐튼호텔의 건축사적인 가치를 잘 모를 겁니다. 관심도 없지요. 지은 지 40년이 돼 허무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건축물은 경사진 대지에 건설한 역동적인 건축물로 벽면이 1980년대 초 당시 국내에는 없어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나온 ‘아첼리오’라는 천연대리석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이 대리석을 사용하고 있는 건축물이 없고, 이 대리석의 가치를 아는 건축가도 거의 없죠. 시간이 오래 흘러도 보기가 좋습니다. 또 미국에서 벌목한 1.5㎜ 두께의 참나무 패널링으로 만든 베니어 등을 마감재로 사용해 한국 건축사에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힐튼호텔의 핵심 가치는 건물 가운데에 있는 높이 18m의 중앙 홀 ‘아트리움’입니다. 호텔 전체 면적의 40%에 해당하는 공간을 아트리움으로 만들었지요. 당시로는 파격적이었고, 이 호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수익을 늘리기 위해 객실을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김 회장은 나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았어요. 저로서는 공간을 좀 넉넉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용객들을 위해 제일 좋은 일이다.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는 호텔을 완공하자 힐튼인터내셔널 회장이 편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호텔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받고 울었다”고 회고했다.

김 건축가는 “호텔 건물 전체를 그대로 보존하자는 게 아니고 부분적으로 보존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와 문화재청, 건물주가 서로 잘 협의하면 상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 자신이 자유경제를 신봉하는 건축가입니다. 개발 회사 이윤도 창출하면서 힐튼호텔 가치도 보존할 수 있는 ‘윈윈정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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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윈윈 방안은 구체적으로 이렇다.

“호텔을 설계할 때 부지가 경사지고 험한 땅이어서 건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허용 용적률 600% 중 350%만 써서 지었어요. 그런데 현재는 용적률이 800%까지 허용되고, 주거 시설을 일부 허용하면 900%까지도 높일 수 있지요. 그리고 ‘아트리움’ 공간을 살려서 럭셔리한 오피스텔 또는 사무 공간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호텔 오른쪽 카지노 시설이 있는 건물과 뒤쪽 볼룸(대연회장)은 재개발해 업무시설로 건설하는 것입니다.”

김 건축가는 이를 위해 서울시가 조례를 완화하고, 문화재청도 규제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호텔 건물 바로 앞에 서울 한양도성길이 놓여 현재 관련 조례로는 고층을 짓는 데 제한이 있어 호텔을 보존하는 조건으로 개발회사 이익을 보전해 주기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했다. 말만 들어서는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현장을 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18일 서울시 고위 관계자와 힐튼호텔 보존 문제를 논의하고 나오는 그를 다시 만나 현장에 가서 직접 설명을 들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서울시 관계자와 얘기는 잘됐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림과 함께 3쪽짜리 자료를 보여주며 충분하게 설명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김 건축가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 뉴욕주의 사례를 소개했다. “뉴욕주가 1965년 ‘랜드마크 보호법’을 도입해 보존된 건물이 스승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작품인 뉴욕 시그램 빌딩”이라면서 뉴욕시에서는 1958년에 준공한 시그램 빌딩을 1989년에 랜드마크로 등록해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랜드마크 보호법을 도입해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랜드마크로 보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 문화재의 경우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나 국가등록문화재, 시·도등록문화재 등으로 지정되고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지정문화재처럼 보존·관리·수리·활용 등을 위한 경비를 보조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정문화재와는 달리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다. 해당 문화재 외관을 유지하면 내부는 소유자가 제약 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서울 새문안로 경희궁 터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있는 SK 사옥이다. 또 효성그룹과 삼호물산 사옥,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서울 올림픽공원 내 역도경기장(현 우리금융아트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등도 그의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현재는 미국 뉴욕에 거주하면서,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에 들어설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의 설계 책임자를 맡아 활동하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지금은 관여하지 않고 있다. 2019년부터 세계 각지를 돌며 포토 에세이 ‘로마네스크 건축’ 시리즈를 펴내고 있으며 내년 4월 5권째인 영국 편 출간을 앞두고 있다.

“힐튼호텔을 짓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고 한국에 왔으니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건축물이지요. 그 결정에 지금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유산이나 가치가 있는 건축유산은 그 자체만으로 관광 상품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 건축가의 소망대로 힐튼호텔 건축물도 보존하고 개발 회사 이윤도 창출할 수 있는 상생모델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성 원로건축가가 지난 15일 숙소인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호텔 룸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힐튼호텔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는 그의 바쁜 일정으로 인해 밤 10시에 시작해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진행했다.



■ 김 원로건축가는

고종 아들의 부인 의친왕비가 고모… 6·25로 폐허된 서울 보며 건축계 투신


김종성(사진) 원로 건축가는 1935년 출생했다. 그의 고모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왕비 연안 김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광산 사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관훈동 의친왕 사저인 사동궁(寺洞宮)에서 살기도 했다.

경기고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서울 을지로에 살던 집이 폭격으로 불타버렸다. 설상가상, 부친은 인민군에게 납치돼 행방불명됐다. 그해 12월 화물열차를 타고 대구로, 다시 부산으로 피란 가 고등학교에 다녔다. 1953년 서울을 수복하면서 돌아왔지만, 폐허로 변해 버렸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잿더미가 된 서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짓는’ 학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대 건축학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러나 전쟁 직후라 대학 사정이 좋지 않았다. 외국으로 가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어느 날 서점에서 ‘현대 건축의 소개’라는 책을 발견했다. 유명 건축가 작품이 여러 개 실렸는데 그중 ‘근대 건축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기둥에 보를 세우고 서까래를 얹는 한국 전통의 목조 건축 방식과 비슷했다. 그가 학장으로 있던 일리노이 공대(IIT)에 가기로 결심했다. 경무대에서 일하던 육촌 형을 통해 프란체스카 여사의 추천을 받아 한미재단에서 한 학기 장학금을 받았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해 IIT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IIT 대학원 건축학과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마쳤다. 1961년부터 10년간 미스 반 데어 로에 설계사무실에서 일하며 그를 직접 사사한 유일한 한국인 제자가 됐다.

1966년 IIT 건축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건축대 학장까지 지냈다. 1978년 대우에서 호텔 설립을 위해 만든 계열사 ‘동우건축(현 서울건축)’ 대표를 맡으면서 교수직을 그만뒀다. 현재 서울건축 명예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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